㉿ Movie Review

劍聖 2012. 7. 9. 13:01

현대 사회에 공식적인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장벽, 혹은 계급은 엄연히 존재한다. 현대사회의 계급은 돈의 있고 없음으로 구분된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니,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돈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절대로 돈을 싫어하지 않는다.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돈은 귀신도 연자방아를 돌리게 한다.” ‘멜라민 분유’니, ‘납 꽃게’니 하는, 음식 갖고 장난치는 중국 특유의 해프닝도 모두 돈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 아니던가.

 

<로스트 인 베이징>은 중국 사회 가운데 만연한 배금주의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영화다. 아내 핑궈(판빙빙)는 발 마사지 업소의 사장인 린동(양가휘)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아내가 상폭행 당하는 장면을 핑궈의 남편인 안쿤(통다웨이)이 목격하고, 핑궈는 임신을 한다. 핑궈의 아이는 남편 안쿤의 아이인지, 린동의 아이인지 모른다.

 

그런데 안쿤은 린동에게 노골적으로 다가간다. 이 아이가 당신의 아이라면 10만 위안을 내놓으라고 말이다. 아이가 없던 린동은 안쿤의 이 노골적인 제안을 받아들이고 핑궈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이길 내심 바란다.

 

이쯤 되면 강수연이 주연했던 영화와 기시감을 느끼지 않는가. 바로 <씨받이>다. 임신한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핑궈는 아이를 지우고자 한다. 하나 남편 안쿤은 아이를 지우려는 핑궈의 행동에 반대한다. 아이가 핑궈의 배 속에 무사히 있어야 린동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린동에게 받을 돈 앞에서 아내의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안쿤은 자신의 아내를 린동의 씨받이로 전락시킨다. 핑궈가 <씨받이>의 옥녀(강수연)와 오버랩 되는 건 아내가 가진 아이가 린동의 아이이기를 바라마지 않는 안쿤의 작태 때문이다. 만일 아내를 성폭행한 린동이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나을 게 없는 가난뱅이였다면 안쿤은 서슴없이 아이를 지우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린동은 아내의 고용주다. 더군다나 부자다. 반드시 아이를 무사히 낳아서 돈을 뜯어내야만 한다.

 

 

핑궈는 배금주의의 논리에 의해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울 자유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남편 안쿤의 배금주의적 가치관에 의해 자신의 육체 하나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아내가 되고 만다. 배금주의에 침탈당하는 건 자신의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는 아내만이 아니다.

 

핑궈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린동의 아이라는 사실만 밝혀진다면 10만 위안의 가치를 가진다. 돈 때문에 여자는 자신의 육체조차 자신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이제 태어날 아기는 생명의 존엄성을 부여받기 이전에 안쿤에게 주어질 ‘어음’이나 다름없다.

 

남자들의 현금 거래에 의해 여자는 육체의 자율권을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곧 태어나게 되는 아이는 거금이 되고 마는 배금주의의 악몽이 중국에서만 꾸는 악몽이면 좋으련만, 배금주의의 악몽은 이미 우리네 현실 가운데서도 깊숙하게 침투해 들어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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