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llet Review

劍聖 2012. 7. 17. 17:16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아는 익숙한 서사다. 이 때문에 관람을 주저한 것도 사실이었다. 과연 ‘새로울 것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내 선입견은 잘못 되었다. 분명 새로운 것이 있었다.

 

 

발레를 감상하기 전에 보도자료를 한 번 살펴보았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케네스 맥밀란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른 버전과의 차이점을, 줄리엣을 당시의 관습을 따르는 전통적인 여성이 아니라 자기주체성이 강한 여성으로 묘사한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이에 필자는 관전 포인트를 줄리엣에 두었다. 줄리엣의 자기주체성을 중점적으로 관찰했다는 이야기다.

 

1막과 2막에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줄리엣의 자기주체성을 찾기 어려웠다. 1막에서는 ‘소녀’에서 ‘여인’으로 영글어가는 줄리엣에 방점을 맞춘 듯 보였다. 유모가 줄리엣의 가슴에 손을 대자 화들짝 놀라며 암전으로 마무리하는 장면은, 줄리엣이 이제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여인’으로 성숙했음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보도자료에서 명시된, 줄리엣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지점은 1막과 2막이 아닌 3막에서였다. 3막에서 줄리엣은 정략결혼을 하게 될 위험에 빠진다. 우리네 옛 규수들이 신랑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시집가야 했던 것처럼 줄리엣은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는 패리스 백작과 결혼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보통의 규수라면 아버지의 뜻에 고분고분 따르겠지만 줄리엣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아버지가 계획하는 정략결혼을 거부한다. 이는 줄리엣이 아버지, 혹은 약혼자 패리스 백작이 있는 곳으로부터 정반대로 빠르게 뒷걸음질 치는 ‘파 드 부레’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아버지의 정략결혼이라는 중력에 맞서서, 줄리엣은 빠른 스텝으로 뒷걸음하는 ‘파 드 부레’를 친다.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로부터,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패리스 백작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하나 더 첨언하면, 3막이 시작할 때 줄리엣이 첫날밤을 지낸 후 이제 갓 결혼한 사랑하는 남편인 로미오와 ‘파드되’를 출 때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정서적 교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사랑으로 하나 되는 느낌을 갖게끔 하는 ‘파드되’다. 로미오와의 ‘파드되’를 통해서는 줄리엣의 사랑의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줄리엣이 로미오와 함께 하는 ‘파드되’와, 패리스 백작과 함께 하는 ‘파드되’는 전혀 다르다. 뻣뻣한 막대기가 춤추는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파드되’를 춘다. 이유는 간단하다. 줄리엣이 약혼남인 패리스 백작을 사랑하지 않아서이다. 정략결혼은 아버지의 뜻이지, 내가 아버지의 정략결혼에 동조하지는 않겠다는 몸짓으로의 반항이 패리스 백작과의 부자연스러운 ‘파드되’다.

 

줄리엣의 자기주체성은 3막에서 그만의 주체성을 아낌없이 무대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아버지와 약혼남으로부터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하는 ‘파 드 부레’, 사랑하는 로미오와 상반되는 패리스와의 부자연스러운 ‘파드되’는 케네스 맥밀란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보여주는 줄리엣의 자기주체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진: 유니버설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