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2. 7. 17. 17:21

한국형 재난영화 <연가시>는 여러 층위로 분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컴컴한 스크린 가운데서 즉석으로 분석 가능한 층위를 극장 문을 나와 즉석에서 따져보아도 적어도 세 가지 관점 이상으로는 분석이 가능한 영화다. 영화 개봉 후에는 통상의 리뷰가 기사로서의 신선함을 다소 상실하기에, 이번 텍스트에서는 ‘아버지’라는 층위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아직 어느 매체에서도, <연가시>를 아버지라는 층위로 분석한 기사는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재혁(김명민)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다. 모두가 다 알다시피, 영업사원은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출근하기 전 이부자리에 모두 내려놓고 출근해야 한다. 간이고 쓸개고 내줄 듯 상대를 구워삶지 않는 한, 지문이 닳도록 처신해야만 계약을 딸 수 있어서다.

 

약품의 지속적인 구매를 위해서는 항상 김원장(송영창)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김원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재혁은 김원장의 가족들에게 ‘시다바리’를 한다. 영업직이라는 직업 특성 때문이다. 놀이동산에서 김원장의 가족들이 즐겁게 놀이기구를 즐길 때 재혁은 이들 가족의 짐을 들고 기다려야 한다. 때론 사진도 찍어주며 말이다.

 

그런데 재혁의 친아들이 놀이동산에 데리고 가달라고 하면 핀잔을 준다.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김원장의 가정에서는 재혁이 놀이동산으로 봉사하지만, 정작 재혁 자신의 친아들에게는 놀이동산에서 놀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는 재혁이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직무 유기’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재혁이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 부분은 아들이, 딸이 연가시에 감염되면서부터다. 연가시에 감염되기 이전에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즉시 수행하기 보다는 귀찮아하는 직무 유기의 행태를 띠지만, 가족의 생사가 달린 문제가 발생하면서부터는 재혁이 아버지의 역할에 충실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가족주의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지점은 연가시라는 재난이 들이닥치면서부터다.

 

 

한데 재혁의 아버지 역할 수행은 그가 ‘유사 아버지’의 역할을 맡으면서 친아들을 향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위기를 맞는다. 재혁이 유사 아버지가 된다는 건 어렵사리 구한 치료제 윈다졸을, 연가시로 죽어가는 다른 아이에게 세 알을 건네주는 지점으로부터 발생한다. 백만 원을 지불하고 구한 윈다졸은 감염자 전체를 구할 수는 없는, 재혁의 일가족만 구할 수 있는 소소한 분량이다.

 

그런데 재혁은 귀중한 윈다졸을, 죽어가는 다른 아이가 눈에 밟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아이 엄마에게 선뜻 윈다졸 세 알을 건네다가 다른 감염자의 가족들에게 들통 나서 아들과 딸, 부인에게 줄 윈다졸을 잃고 만다. 친아들과 딸에게 먹여야 할 윈다졸을, 다른 아이‘도’ 구하겠다는 ‘유사 아버지’ 역할을 하다가 그만 아버지의 역할,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만다.

 

재혁이 아버지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건 그가 다른 가족에 충실할 때 발생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지만 재난이 닥쳐서야 아버지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연가시라는 재난이 가정주의로 재혁을 돌아서도록 만드는 촉매가 된다.

 

더불어 어설픈 온정주의로 재혁이 다른 아이의 생명까지 구하고자 하는 ‘유사 아버지’가 될 때 친아들과 딸, 그리고 부인의 목숨은 위태로워지고 마는 역설은, 아버지 재혁이 유사 아버지로서 잠시 눈길을 돌릴 때 가족을 구할 수 있는 타이밍은 놓치고 마는 설익은 온정주의가 빚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