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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2. 7. 18. 20:22

'당랑거철'이라는 표현이 있다. 곤충의 세계에서 사마귀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포함하는 곤충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마귀가 뛰어난 포식자라 하더라도 수레바퀴 앞에서는 피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마귀는 수레바퀴를 피하지 않는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사마귀와 수레바퀴는 레벨 자체가 다른 게다.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상대와 맞서는 게 바로 당랑거철이다.

 

 

백홍석(손현주 분)은 드라마가 시작하면서부터 '당랑거철'의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이 PK준(이용우 분)에 의해 여러 번 깔려죽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죽은 딸이 원조교제에 마약까지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쓴다. 알고 보니 PK준이 몸통이 아니었다. 유력한 대권 후보인 강동윤(김상중 분)의 아내인 서지수(김성령 분)가 진범이었던 것이다. 백홍석과 강동윤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은 백홍석의 수사를 방해했다. 수사가 원활히 진행될 만하면 발이 묶이거나 쫓기기 일쑤다. 백홍석에게 감정이입하는 시청자들은 강동윤과 신혜라(장신영)의 교묘한 함정에 백홍석이 빠져들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기 일쑤였다.


시청자들이 백홍석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억울한 딸의 사연을 만천하에 알리고픈 아버지의 애틋함, 지금은 강동윤이라는 악에게 침탈당하지만 종국에는 정의가 승리하리라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시청자의 바람은 15회에 들어서서 꽃을 피기 시작한다. 대선 당일 동영상 공개의 여파로 승승장구하던 강동윤이 낙선하는 것은 물론이요, 살인 교사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백홍석이 맞았던 또 하나의 수레바퀴, '법의 현실'

마지막 회에 들어서서는 강동윤과 신혜라의 악행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종국에는 이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정의의 절정을 경험케 된다. 시청자는 끝까지 진실을 밝힌 백홍석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딸의 억울함을 풀어준 부성애에 감동케 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며 마냥 박수만 칠 수 있었을까. 김동윤과 백홍석이 법의 심판을 받는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온갖 권모술수로 백홍석이 밝히려 한 진실을 가리고자 했던 강동윤은 살인교사죄로 8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형을 마치고 출소하면 장인인 서회장(박근형)이 제공하는 많은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강동윤이 가리고자 했던 진실을 만천하에 알린, 딸의 억울함을 풀어준 백홍석은 PK준의 살인죄와 도주죄,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법정모욕죄가 적용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는다. 악의 축인 강동윤보다도 두 배 더 많은 형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백홍석은 수레바퀴와 싸워야만 했던 사마귀다. 강동윤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앞에서는 진실 규명은 커녕 딸의 죽음을 온 세상에 알릴 방도조차 변변치 못했지만 최정우(류승수 분)와 황반장(강신일 분), 조형사(박효주 분), 박용식(조재윤 분) 등의 도움 덕에 강동윤이라는 수레바퀴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마침내는 딸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백홍석이 몰랐던 또 하나의 수레바퀴가 있었다. 바로 '법의 현실'이다. 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강동윤을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울 수는 있었지만, 진실을 규명한 백홍석에도 강윤보다 두 배 더 오래 감방에서 지내야 한다는 법의 잣대는 엄격했다. 백홍석에게 선고된 가혹한 형량은 시청자로 하여금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는, 정의가 마침내는 이겼다는 카타르시스에 도취하기에 앞서 카타르시스를 일부 박탈당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초래했다.

 

얼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현대판 '화낭년'으로 매도된 딸의 명예를 복권하기 위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는 백홍석은 한국판 '다이하드' 형사였다. 물리적, 사회적, 시스템적인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악의 축인 강동윤을 법의 심판대로 세운다는 건 이 드라마의 판타지다. 현실에선 일어나기 힘든 판타지적 요소가 부성애와 조우함으로 카타르시스가 제공될 수 있는 게다.

 

 

영화 <매트릭스> 속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동시에 준 드라마

하지만 진실 규명이라는 판타지에 찬물을 끼얹는 건 법의 현실이었다. 법의 엄격한 잣대가 적용됨으로 범법자보다 더 오래 형을 살아야만 한다는 건, '정의는 언젠가는 이긴다'는 드라마의 판타지도 어찌할 수 없는 차가운 속살을 보여주는 게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판타지와 법의 차가운 현실이 공존했던 드라마가 바로 <추적자>다. 해피엔딩인 듯하면서도 씁쓸함을 자아내는 <추적자> 마지막회는 이 드라마가 권선징악을 선호하는 시청자의 기호인 판타즘적 카타르시스에 부합하는 듯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반드시 정의가 이기지는 않는다는, 현실의 차가운 얼굴을 드러내는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매트릭스>의 네오로 보면 <추적자>는 빨간약과 파란약을 동시에 시청자에게 먹인 셈이다.

 

백홍석이 선고받은 높은 형량은 백홍석의 부성애가 승리하는 드라마적 카타르시스에만 도취하지 말고 현실의 칼날 앞에 경계를 늦추지 말고 살아가라는 현실 의식 고취와도 관련 깊어 보인다. 우리가 지금 몸 담고 있는 현실이, 정의 구현을 외치는 드라마가 종영했음에도 온전히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하도록 팍팍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사진: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