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2. 8. 3. 16:35

자신이 지켜야 할 안전을 스스로가 지키는 집단을 ‘자경단’이라고 일컫는다. 배트맨의 정체성은 고담 시를 수호하는 자경단이다. 배트맨 스스로가 법보다 초월적인 존재가 됨으로 말미암아 고담 시의 치안을 유지하는 자경단 말이다. 고담 시의 억만장자 자경단 배트맨은 악으로부터 고담 시민을 지키되 ‘살인은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여긴다.

 

 

악을 방지하는 배트맨이 악을 끌어모으는 자석이 되는 아이러니

한데 배트맨의 이야기 가운데에는 한 가지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배트맨은 선을 수호하기 위해 자경단을 스스로 자처한다. 그런데 배트맨이라는 자경단은 고담 시의 범죄자를 자극한다. 일반 경찰로는 성이 차지 않던, 아니 경찰은 감조차 되지 않는 악당은 배트맨으로 말미암아 자극을 받는다. 베인이나 조커가 다른 도시가 아닌 고담 시에서만 유독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바로 고담시에‘만’ 배트맨이라는 자경단이 있어서다. 배트맨이라는 존재 자체가 범죄를 유발하는 자극이 되는 아이러니다.

 

링으로 비유하면 배트맨은 챔피언, 악당은 챔피언에 도전하는 도전자가 되는 셈이다. 고담 시의 범죄자는 배트맨을 바라보면서 배트맨을 도전해야만 하는 상대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도발한다. 배트맨이 존재하는 한 악당은 끊임없이 고담 시를 위협할 것이다.

 

기존의 법체계가 감당하지 못하는 악을 막기 위해 태동한 배트맨이라는 자경단이 도리어 악을 불러들이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조커라는 악당이 잠잠해지자 베인이 난동을 부린다는 건,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고담 시로 범죄자를 끌어들이는 자석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아이러니를 의미한다.

 

범죄자의 범죄를 도발하는 배트맨의 아이러니는 세계의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세계의 경찰을 자초하는 미국의 자아상과 오버랩한다. 탈레반 혹은 알 카에다와 같은 급진 세력으로부터 중동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 하에 미국은 이들 국가의 치안을 도맡는다. 그럼에도 미군이 주둔한다는 사실만으로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의 결집을 유도하는 미국의 아이러니는 배트맨의 아이러니와 맞아떨어진다.

 

 

한국은 되레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아이러니가 악을 박멸하기 위해 자경단을 자처하건만 배트맨이라는 존재 자체가 악을 끌어들인다는 아이러니라면 또 다른 아이러니가 있지 않을까? 한국의 아이러니는 미국과는 반대의 아이러니다. 즉,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지만 미국에 저항하는 세력을 결집시키고 끌어 모은다는 아이러니라면, 한국의 아이러니는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을 필요로 한다는 아이러니다.

 

한 사례로 요즘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흉흉한 사건 가운데 하나인 통영女 초등생 피살사건처럼, 딸을 가진 부모라면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아동 성범죄자의 법 집행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자. 아동 성범죄의 피의자가 경찰에 체포 되더라도 절반 가까운 피의자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것에 그치고 만다. 어린 아이의 몸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영혼마저 영영 얼룩지게 만드는 파렴치범에게 집행유예와 같은 관대한 판결을 확산시킨다면 누가 법을 신뢰하고 법의 공정성에 반가와 하겠는가?

 

얼마 전 종영한 <추적자>가 상반기 드라마계에 큰 이슈몰이를 했던 것도 우리 사회가 그만큼 법 집행에 대해,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컸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추적자>의 주인공 백홍석이 법을 초월하여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 시청자가 가빠르게 감정이입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이 만연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동시에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을 필요로 원할 만큼 법의 신뢰성이, 혹은 법의 공정함이 ‘함량 미달’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배트맨의 아이러니는 한국과 미국에게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