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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2. 8. 20. 11:27

요즘 출판계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는 ‘힐링’ 코드다. 상처받은 자아를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치유 받아야 할지 몰라 아파하는 독자를 위한 힐링 코드는, 그만큼 우리네 사회가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심적 위안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코드이다.

 

 

한데 힐링 코드는 출판계에서만 뜨거운 감자로 회자되는 건 아니다. 햇님의 심술이 너울거리는 한여름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힐링’은 지금 공연계도 강타하고 있다. 바로 <여섯 주 여섯 번의 댄스레슨>(이하 <댄스레슨>)이다. 평일 낮에도 발 디딜 틈이 없는 공연이다.

 

표면적으로는 춤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나, 이 연극이 배우가 선보이는 댄스 테크닉을 현란하게 선보이는 수순에 머물렀다면 <댄싱 위드 더 스타>를 무대 위로 올린 것에 다름 아니었을 테다. 그리고 댄스의 테크니컬로만 따진다면 고두심의 댄스 실력보단 최여진이나 효연의 댄스 실력이 한 수도 아닌, 두 세 수 위일 것이다.

 

하나 <댄스레슨>은 댄스의 테크니션을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다. 삶의 ‘생채기’를 적나라하리만치 건드린다. 릴리와 마이클의 아픈 곳, 혹은 숨기고 싶은 곳을 집요하리만치 건드리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역설적으로 힐링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연극 속 캐릭터는 아픈 생채기가 훤하게 드러나건만 관객은 그 생채기를 보며 심적 생채기, 혹은 트라우마를 이길 힘을 얻는다.

 

릴리와 마이클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다. 마이클에게 있어 가면은 ‘게이’라는 정체성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다. 릴리에게 심한 말을 하다가 릴리의 항의로 파면 당할 위기에 처하자 마이클은 수의사 아내를 들먹인다. 하지만 마이클의 수의사 아내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마이클이 지어낸 인물이다. 더군다나 마이클은 이성애자가 아니다. 여자 아내가 있을 턱이 없다.

 

그렇다면 릴리는? 남편이 있는 ‘척’ 위장하는 가면을 쓰고 있다. 마이클이 댄스레슨을 할 때마다 남편은 해변가를 산책하거나 하는 식으로 항상 집에 없다. 하지만 릴리에게는 자그마한 ‘반전’이 있다. 남편이 ‘있는’ 게 아니라 ‘있었다는’ 사실이다. 남편 없는 여자의 처지를 두고 뒤에서 수근댈까봐 릴리는 마이클에게 남편이 있는 ‘척’하며 댄스레슨을 받아왔다.

 

마이클과 릴리는 번갈아가며 상대방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긴다. 이들이 뒤집어쓰는 가면은 하나 둘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가 모르는 가면이 있다. 마이클과 릴리는 서로의 가면‘들’을 2막이 끝날 때까지 벗긴다.

 

 

마 이클과 릴리는 자신의 실체를 상대가 알면 약점으로 꼬투리 잡힐 수 있는 가면을 벗기되 비열한 방식으로 가면을 벗기지 않는다. 상대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약점 하나 확보요!’ 하는 식의, 약점 잡기 방식의 가면 벗기기가 아니라 상대의 가면을 벗김으로 상대의 진짜 모습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상대의 진실을 하나씩 알아가는 ‘가면 벗기기’다.

 

가면을 벗긴 상대의 진면목을 통해 상대를 보다 이해할 수 있고 그 가운데서 ‘힐링’이 일어난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없어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던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소울메이트가 되고 힐링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관객은 연극 캐릭터의 가면을 벗기는 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힐링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관객이 릴리 혹은 마이클과 정서적으로 감정이입하면서부터 관객은 릴리의 이야기 혹은 마이클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자신이 뒤집어쓰던 가면이 무언가를 깨닫고 이를 서서히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로 말미암아 힐링이 발생한다. 힐링은 상대에게 그간 자신이 내려놓지 못한 그 무언가의 마음의 응어리를 토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던가. 관객이 누군가에게 내려놓고 싶은 마음 속 가면을 벗기는 연극이 <댄스레슨>이다.

 

<댄스레슨>은 또 하나를 묻는다. 당신이 가면을 벗을 만한, 당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릴리 혹은 마이클 같은 소울메이트가 당신에게 있느냐고 조용하게 속삭이며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