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劍聖 2012. 8. 28. 23:30

뮤지컬계에서 남경주라는 이름 석 자는 ‘원조 뮤지컬 배우’, 혹은 ‘1세대 뮤지컬 배우’로 통한다. 그만큼 관록 있는 배우이자, 동시에 대중에게 뮤지컬이 대중화하기 이전부터 한결같이 무대를 지켜온 배우이기에 이러한 칭호로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대배우다. 그럼에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부터 지금까지 줄곧 변하지 않는 열정 하나로 달려온 배우이다.

 

인터뷰를 통해 깨달은 것이 많았다. 한 줄의 질문에 답변하는 그의 대답은, 인생이라는 무대를 통해 깨달은 다양한 관록이 녹아 있는 답변이었다. 인터뷰어조차 감탄하게 만드는 귀중한 답변이 주옥처럼 곳곳에 녹아 있는 인터뷰였다.

 

(사진: 남경주, 악어컴퍼니)

 

뮤지컬 <라카지>는 1983년에 만들어진 공연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뮤지컬이 처음 만들어진 후 29년 만에 처음으로 관객과 만나는 공연이다. 한국 초연의 뮤지컬을 준비하는 가운데 어떤 노고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연습하는 것이 퍼즐 맞추듯이 조각조각 들어맞질 않아서 다들 고생하잖아요. 이번 연습은 다른 라이선스 공연에 비해 약간 더 힘들었어요. 원작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색했다고는 하지만, 내용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연출자가 각색을 많이 한 작품이에요.

 

배우는 이를 무대에서 소화해야 하니까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동선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 제가 고생하게 되어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소화하기 위해 애를 많이 먹었죠. 하지만 이렇게 관객 분들이 무대 위에서 호응해 주시니까 보람도 크고 성취감도 큰 거 같아요.”

 

뮤지컬 <라카지>는 아들 장미셀이 결혼으로 인연을 맺는 예비 사돈이 극우 보수주의자다. 아들이 원만한 결혼 승낙을 예비 사돈으로 받아내기 위해서는 조지-앨빈 부부가 동성애 부부라는 사실을 반드시 숨겨야만 한다. 원만한 상견례를 위해서는 남편인 조지가 아내 앨빈을 어떻게든 설득해야만 한다. <라카지> 속 조지의 어떤 모습이 남경주 배우의 어떤 모습과 닮았는지가 궁금했다.

 

“아내 앨빈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조지의 모습이, 결혼하고 제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거 같아요. 일편단심으로 아내 앨빈만 사랑하는 조지의 모습도 실생활 속의 제 모습이고요. 극 중 아들인 장미셀에 대한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은 제 사랑스러운 딸에게 느끼는 감정과 똑같이 느껴졌어요. 남경주가 조지를 맡았지만 저인지 조지인지 모를 정도로 동일시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1984년과 2005년, 2010년 세 번에 걸쳐 미국의 토니어워즈를 석권하였건만 동성애를 소재로 다룬다는 특수성 때문에 그간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던, 동성애라는 특별한 소재를 다루는 <라카지>를 준비함에 있어 어떤 애로점이 있었을까.

 

“게이 커플을 다룬 작품인지라 관객 분들이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염려스러웠어요. 하지만 제가 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어요. 왜냐하면 관객은 게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들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니까 예를 들어 고민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하려 노력하고 살아갈까 하는 모습을 관객이 보기를 원하는 것이지 게이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했던 작품들 가운데서 <라카지>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가졌던 작품은 <아이 러브 유> 이후 오랜만인 것 같아요. 당시 <아이 러브 유>는 중극장 규모의 공연이었어요. <라카지>처럼 대극장 규모의 공연에서 폭발적인 피드백은 처음이에요. 처음엔 당혹스러울 정도로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가만 보니, 주인공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서 진실되게 애를 쓰는 모습이 관객에게 재미있게 비춰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경주가 출연한 최근의 작품들은 <넥스트 투 노멀>과 <시카고>,<라카지>다. 리바이벌 레퍼토리 작품인 <시카고>를 제외하고는 두 작품 모두 한국 초연작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만일 익숙한 것에만 안주하려고만 하고 도전 정신이 없었다면 한국 초연작을 연거푸 선택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남경주는 리바이벌 레퍼토리 작품만 반복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짚었네요. 저는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결혼하고 나서 한동안, 제가 늦게 결혼을 했기 때문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아내를 위해, 아기를 위해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고 느껴서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약간이나마 늦췄죠.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좀 천천히 가자.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감격스러운 일들이 배우 생활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가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가정생활에 충실하고 싶었어요.

 

어느 정도 가정이 안정되고 아이도 자라면서, 머물러만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이 싫어 ‘다시 한 번 용기를 가져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그래서 <넥스트 투 노멀>과 <라카지>라는 새로운 두 작품에 도전을 했는데, 역시 확실한 작품보다는 불확실한 작품에 도전을 했을 때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도전인 거 같아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작품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자신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이 고이면 언젠가는 썩는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뮤지컬 연기에 있어서도 그는 물이 고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새로운 작품에,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는 건 부담이 컸다. 그래서 그는 때를 기다렸다. 새로운 연기에 도전해야 할 ‘때’를 말이다. 배우 남경주는 익숙함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되 가정이 안정될 때를 기다렸던, 참다운 ‘때’를 아는 배우였다.

 

아들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뮤지컬 속 조지-앨빈 부부도 아들인 장미셀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들의 원만한 상견례를 위해 애쓴다. 남경주도 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와이프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일었을까.

 

“당연히 있죠. 아이가 떼를 쓸 때 내가 볼 땐 괜찮을 거 같은데 와이프는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왜 그러냐, 내가 옆에서 지켜볼 테니까 허락해라. 만약에 위험하면 내가 막아줄 테니 아이의 요구대로 해 주자’ 하는 경우도 종종 있죠.”

 

그는 올해를 통틀어서가 아닌, 올 상반기만 <라카지>와 <시카고> 두 작품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시즌에서 다른 시즌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 동시에 말이다. 이렇게 뮤지컬 사랑에 푹 빠진 그가 재충전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저는 바쁠 때 더 많은 일들을 하는 것 같아요. 쉴 때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쉬지만 바쁠 때에 오히려 책도 더 많이 읽게 되어요. 쉴 때보다 바쁠 때에 시간 쪼개어 운동하러 다니고 다른 일도 좀 더 하고... 제 성격이 원래 그런 거 같아요. 일이 있을 때 저 자신을 좀 더 타이트하게 조여서 에너지를 만드는, 말하자면 스스로 발전하게끔 만드는 ‘자가발전’ 스타일이죠. 그리고 쉴 때는 제 안의 에너지를 완전히 방전 시키고요.

 

아내가 저를 볼 때 ‘남편이 지금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일을 안 하고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생각할 정도로 티를 내지 않는 편이에요. 오늘만 하더라도 아침 6시 50분에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내려가서 어린이 캠프 강연을 소화하고 올라와서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오늘 저녁에 공연이 있음에도 제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인다는 걸 믿질 않아요. 이렇게 바쁘게 살면서 어떻게 공연을 할 수 있냐고요.

 

하지만 저는 저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요. 일을 할 때에만 몰입을 하지, 벌어지지 않은 일들이나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아요. 물론 준비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요. 미리 준비를 해서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걱정이 되지 않게끔 만들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연습실에서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무대 위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처럼, 저를 구속시켜야 할 때에는 확실하게 저 자신을 구속시켜요. 하지만 무대에 오를 때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풀어두는 편이예요. 오늘만 하더라도, 조금 있으면 무대에 오르지만 긴장보다는 기대가 더 커요. 어떤 일들이 무대에서 벌어질까 하는 즐거움이 더 크게 다가오죠.”

 

남경주는 일을 하되 일을 ‘즐길 줄 아는’ 배우였다. 그는 바쁜 일정 가운데서 일에 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일 가운데서 에너지를 얻고, 그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숙시켜 나갈 줄 아는 배우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은 연습실 안에 내려놓고, 무대 위에는 ‘기쁨’을 한 아름 안고 갈 줄 아는 배우였다.

 

남경주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배우로 뮤지컬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최상의 ‘결과’를 중요시하기보다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는가를 중요시하는 ‘과정 중심론자’다. ‘과정’을 중요시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십 대라는 나이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 뮤지컬 배우라는 걸 발견하던 나이대예요. 뮤지컬을 하면서 재미가 있으니까 ‘내 적성에 잘 맞는구나’ 하고 천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뮤지컬에 대해 알고 싶으니까 무조건 뮤지컬 연습과 공부를 했었어요. 이십 대 때에도 저 자신이 인식은 못했지만 과정 자체가 즐거웠지, 무얼 바라보고 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이십 대 때에는 대중에게 뮤지컬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때예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의 꿈이 있었어요. 나중에 사람들의 입에서 남경주라는 이름 석 자가 오르내릴 때 ’아 이 사람이 뮤지컬 배우구나‘라는 정도만 알았으면 좋겠다 하는 소박한 꿈 말이에요.

 

이십 대 때의 꿈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 결혼한 후에는 꿈이 변했어요. ’좋은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건 곧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는 것이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보아요.

 

내가 배우로서 어떤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하는 걸 살펴볼 때, 내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알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보아요. 가족들에게 이런 과정 중심의 삶을 알려주고, 이런 방식으로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보아요. 이러한 과정 중심의 삶은 제가 책을 통해 알게 되기도 했지만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에요.

 

하지만 과정을 즐긴다고 해서 무작정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운동선수가 경기를 즐길 줄 알려면 기술도 필요하고, 경기 운용 능력도 필요하고, 체력도 필요한 것처럼 다양한 능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는 인생도 마찬가지고 배우라는 직업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배우라면 기본적인 스킬부터 시작해서 본인만의 예술 철학, 다양한 표현 방식들을 모두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해요. 인간이 되기 위한 고민은 중요하다고 보아요. 어떤 것이 행복한 삶이고, 인간다운 삶인가를 고민하면서 제가 좋은 배우로, 좋은 아빠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배우 남경주는 가족을 중요시하는 가장이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전에, 먼저 딸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자는 남경주의 철학을 확장해서 본다면 그의 삶 자체가 딸에게, 가족에게 멘토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함을 지니기에 그렇다. 말로 가르치기 이전에 삶을 통해 가족에게, 딸에게 모델이 되고자 하는 그의 가족 중심의 철학은 배우로서의 개인 철학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음을 볼 수 있다.

 

“줄리어스 시저의 ‘승리의 길’을 좋아해요. ‘승리는 신념에서 비롯되고, 신념은 지식에서 비롯되며, 지식은 훈련에서 비롯된다. 훈련이 부족하면 지식이 부족하고, 지식이 부족하면 신념을 이룰 수 없고, 신념이 부족하면 승리를 이룰 수 없다.

 

제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머리로만 곰곰이 생각을 해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운동을 하거나, 악기를 만진다던가, 아니면 연습실에서 음악을 틀고 몸을 푼다든지,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책에서 얻는 지식과는 달리 시저가 이야기했던 ‘신념’을 얻을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더군요.

 

사람은 ‘업 앤 다운’(Up & Down)의 부침이 있잖아요. 신념을 가진다면 사람이 아무리 어두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을 하겠죠. 하지만 신념이 없다면 주저앉고 말 거예요. 인생은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랜 세월이 필요한데, 오랜 세월을 견디기 위해서는 신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념을 필요로 하기 위해서는 아까 좋은 아빠, 좋은 배우를 이야기했을 때처럼 지켜야 할 기본적인 바탕 위에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제가 볼 때엔 기본이 흔들리면 아무리 애를 써도 공허한 움직임 밖에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줄리어스 시저를 언급하면서까지 그가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이 점이 아닐까 싶었다. 생의 파도를 넘기 위해서는 신념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신념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기가 튼튼해야만 한다. 기본기가 튼튼하지 않다면 결코 신념을 가질 수 없음을 배우 남경주는 강조한다. 기본이 있어야 신념을 가질 수 잇고, 신념이 있어야 생의 승리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라카지>만이 가지는 매력 포인트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보통 사람과는 달리) 일반적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게이의 이야기지만, 사랑이 있으면 희생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희로애락이 모두 작품 안에 담겨 있어요. 그래서 게이를 소재로 해서 ‘게이 이야기니까 이상할 거야’라는 편견 이전에, 내 주위에도 충분히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편안하게 관람해 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이들이 난관을 어떻게, 지혜롭게 잘 이겨나가는가를 눈여겨본다면 관객 분들이 보다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