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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2. 9. 2. 21:04

로마 신화 가운데에는 야누스라는 신이 있다. 대중에겐 얼굴이 두 개 있는 신으로 잘 알려진 신이다. <다섯 손가락>에서 채영랑(채시라 분)은 로마 신화 속 야누스를 연상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남편 유만세(조민기 분)가 살아있을 때에 채영랑은, 속으로는 남편과 갈등을 겪을지언정 시어머니인 민반월(나문희 분)에게는 깍듯한 며느리이자 친아들인 유인하에게는 온갖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유만세가 데려온 배 다른 아들 유지호에게는 남편 몰래 갖가지 술수를 쓰며 견제를 한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정체성이 극과 극으로 달라지는 캐릭터다.

 

화재 사고로 유만세가 세상을 뜬 후로부터 14년이 지난 후에도 채영랑의 정체성은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다.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머어니 민반월을 극진히 모신다. 민반월이 치매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며느리 채영랑은 시머어니를 향한 깍듯한 예의범절을 잃지 않고 모시고 있다.

 

반대로 친정어머니인 나계화(차화연 분)에게는 경계의 눈초리를 멈추지 않는다. 나계화는 친정어미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채영랑의 재산을 요모조모 탐을 내는 인물이다. 이런 그녀를 딸인 채영랑이 반길 리가 없다. 채영랑이 나계화를 경계하는 건, 나계화가 친어머니가 아닌 의붓어머니라는 사실도 그렇지만 나계화가 채영랑의 약점을 잡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렇다.

 

채영랑은 시머어니와 친정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만 다른 게 아니다. 배다른 아들 유지호(주지훈 분)를 향해 그녀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누가 보면 채영랑은 친아들인 유인하(지창욱 분)보다 유지호를 더 사랑하는 줄로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채영랑의 진짜 속내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궁극적으로 채영랑이 노리는 것은 남편이 유지호에게 물려준 부성악기의 경영권이다. 지금 유지호가 가지고 있는 부성악기의 주식은, 원래대로라면 채영랑과 유인하가 누려야 할 권리지만 이 권리를 남편이 마음대로 유지호에게 물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지호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채영랑은 웃는 얼굴 뒤에서 칼을 가는 것이다. 유지호에게는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지만 뒤로는 친아들 유인하가 부성악기의 주식과 경영권을 부여잡기를 바란다. 웃는 얼굴 뒤에는 배 다른 아들의 뒷통수를 칠 궁리를 하지만, 정작 친아들은 이런 속내를 알아주지 않고 냉랭하기만 해서 답답할 뿐이다.

 

14년이 지난 이후, 유인하가 성인이 되어서야 채영랑은 화재 사건 당시에 유지호를 구한 이유를 비로소 밝힌다. 그리고는 유지호에게 미국으로 가지 말고 한국에 남아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한다. 14년 만에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 유인하는 어머니와 힘을 합쳐 유지호를 견제할 것을 다짐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다섯 손가락> 속 채영랑은 이 속담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다. 친아들 유지호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배다른 아들 유지호의 등에 비수를 꽂을 준비가 된 무서운 여자다. 하지만 채영랑은 그 비수를 웃음으로 위장하고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웃음 뒤에 숨겨진 채영랑의 야누스 같은 원래의 얼굴을 유지호가 알아챌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사진: SBS NeTV 화면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