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2. 9. 2. 21:36

이웃사람조차 믿지 못하는 세상

202호에 살던 여중생 원여선(김새론 분)이 누군가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여선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아래층 101호에 사는 류승혁(김성균 분)이다. 여선과 학원을 같이 다니는 원생들은 부모가 마중을 나온다.

 

 

하지만 여선은 이날따라 어머니의 마중을 받지 못하고 홀로 집으로 귀가하던 길이었다. 여선을 눈여겨보던 승혁은 여선을 자신의 승용차로 집까지 태워다 주고는 여선을 101호로 납치해서 무참히 살해한다. 이웃 아저씨의 손에 살해당한 것이다.

 

강풀 작가가 그린 동명 타이틀의 웹툰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웃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연쇄살인범이 이웃 주민인 여중생을 살해한다는 극 중 설정은 4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력의 영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원작이 만들어진 후 4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지난 달 30일 새벽, 전남 나주에서는 잠자던 초등학교 1학년 미성년자가 이불 채로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근처 영산대교 아래에서 어린이를 성폭행하기 위해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경찰이 성폭행범을 검거하고 보니 다른 사람도 아닌 ‘이웃사람’이었다는 경악스러운 점에 있다.

 

피해 아동의 집에서 불과 250여m 거리에 살고 있던 이웃사람은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이웃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가해자는 피해 어린이의 어머니와도 친근하게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고 하니,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표현은 이제 속담에서나 나올 법한 표현으로 전락하고 만다.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도 성폭행 같은 범죄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 심지어는 이웃사람이 저지른다는 통계가 있다. <이웃사람>처럼 가상 속 세상에서만 이웃사람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숨 쉬는 세상 자체가 ‘이웃사람’조차 못 믿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웃사람>과 같은 지어낸 이야기보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욱 경악스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공권력을 신뢰하기보다는 사적 응징이 통쾌한 시대

영화 가운데서 연쇄살인마 류승혁의 정체를 밝히는 건 경찰의 몫이 아니다. 류승혁의 ‘이웃사람’들이 류승혁의 행각을 눈치채고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피자가게 배달부 안상윤(도지한 분)은 자기가 맡은 배달만 하면 그만이지 101호 사람 류승혁이 정기적으로 피자를 주문하는가에 관해 신경 끊으면 그만이다.

 

가방가게 주인 김상영(임하룡 분)도 마찬가지다. 류승혁에게 여행용 가방만 팔면 그만이지 그에게 판 가방 모델이 범행에 사용되었는가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경비원인 표종록(천호진 분)이 목숨을 무릅쓰고 승혁의 집 안으로 과감하게 들어가서 살인 현장에서 머리카락을 확인해야 할 이유도 없잖은가. 딸을 잃은 송경희(김윤진 분) 역시 죽은 딸 또래인 유수연(김새롬 분)에게 이다지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만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오지랖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의 힘이 모인 덕에 경희는 수연의 목숨을 연쇄살인마 승혁의 손아귀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연쇄살인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상윤과 종록, 상영, 심지어는 악덕 사채업자 안혁모(마동석 분)가 하나로 힘을 합친 덕이다.

 

승혁 같은 ‘이웃사람’은 악질 범죄자이기도 하지만 ‘이웃사람’이 하나로 뭉칠 때에는 범죄를 막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여기서 승혁이라는 이웃의 악을 막는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웃이 힘을 합쳐 악을 물리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사적 응징, 즉 공권력이 악을 막는 것이 아니다. ‘이웃사람’이 악을 저지르는 ‘이웃사람’을 응징하는 구조에 눈여겨보아야 한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나 <악마를 보았다>와 같은 일련의 한국영화들은 악을 처단함에 있어 공권력의 힘을 빌려 범죄를 단죄하지 않는다. 개인이 주체가 되어 악을 직접 응징한다. <이웃사람> 역시 개인이 ‘이웃사람’이라는 집단화가 될 뿐, 사적 응징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는 현실 속 법의 응징이, 대중이 바라는 처벌의 수위보다 얕아졌음을 영화로 표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예를 들어 아동 성폭력범에 대한 우리나라 법의 수위는 다른 나라의 형량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게 사실이다.

 

인면수심의 성폭행범에게 내리는 판결의 수준이 너무나도 관대하다보니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엔 범인을 직접 응징하고자 하는 심리가 강해진다. 이건 비단 성폭행범의 추벌 수위에 관해서만 국한할 이야기는 아니다.

 

공권력이 집행하는 형량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정서와 일치하지 않을 때에 대중은 영화 속 사적 응징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하게 된다. <이웃사람>처럼 요즘 한국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사적 응징, 법 집행이 약하다면 과감하게라도 사적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심리는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는 사례라 분석할 수 있다.

리뷰 잘읽고 갑니다.
저도 지난주에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저런 마음들이 들었지만
글로 옮기는 것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답니다.
이 만화를 친구로 추천으로 올초에 읽었는데 만화가 처음 나온게
4년전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히 잘 읽고갑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요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외국처럼 징역
99년이면 좋겠어요
아님,
공개처형을 시키든지요
인면수심의 人에게 인권보호가 웬말인가요?
올리신 글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