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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2. 10. 12. 14:11

서양에서는 헬레나라는 미인 한 명 때문에 그리스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진다. 중국은 달기라는 미인 한 명으로 말미암아 은 왕조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한국의 미인 가운데서 수로부인을 빼놓는다면 이 얼마나 섭섭한 일일까.

 

 

어느 정도로 대단한 미인인가 하면 수로부인이 지나가는 곳마다 용이 탐을 내고 귀신이 납치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이 아닌 초자연적 존재들마저 수로부인의 미모에 홀리고 마니, 신들을 달래는 노래인 ‘구지가’를 불러 납치당한 수로를 돌려달라고 달래야 할 지경이다. 이 정도면 수로의 미모가 헬레나나 달기 못지않다는 걸 알 수 있지 않는가.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인 <꽃이다>는 절벽에 핀 꽃을 노인에게 하사받는 ‘수로부인 설화’와 ‘역사적 사실’을 결합하여 만든 팩션이다. 성덕왕 당시 변방 쪽 성채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수로부인 설화와 조우하는 셈.

 

<꽃이다>에서 특기할 점은 역사적 사실을 연극이 조망함에 있어, 성덕왕 당시의 성채 건설을 왕의 치적이라는 ‘지배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을 국가가 징발한 후의 민초들의 피폐한 삶에 포커스를 맞추는 ‘피지배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성벽 축조를 위해 남자들을 죄다 징발하면 남은 아낙네들의 힘만으로 한 해 농사를 짓는다는 건 여간한 무리가 따르는 게 아니다. 왕에게 있어 성채 건설은 하나의 치세로 남겠지만, 이를 위해 노동력을 빼앗긴 여인들의 삶은 왕의 치적과는 반대로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마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연극은 놓치지 않고 있다.

 

 

<꽃이다>에서 성벽 축조를 위해 신라라는 국가 메커니즘이 징발한 남자 2000명을 돌려달라고 여인들이 순정공을 향해 농성을 벌인다는 건, 국가라는 수탈의 메커니즘 혹은 치적 위주의 메커니즘 앞에서 마냥 희생당하기를 거부하고 생존을 보상해 달라는 ‘피지배자의 관점’을 연극이 중요시한다는 걸 의미한다.

 

국가의 메커니즘 앞에 마냥 희생당하는 민초의 고달픔이 아니라, 국가의 수탈 메커니즘 앞에 생존권을 위해 항거할 줄 아는 아낙들의 투쟁기가 연극 가운데에 녹아 있는 셈이다.

 

반면 <꽃이다>를 수로부인 설화라는 ‘삼국유사’의 측면으로 보면 연극 속 수로부인은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캐릭터로 분석 가능하다. 그간 숱한 남정네들로부터 아름답다는 칭송을 밥보다도 많이 먹었을 수로에게 제일 중요한 건,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민중의 논리나 이들을 달래기 위해 고도의 정치술을 구가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의 용에게 제물로 바쳐질 때 마을의 제일 예쁜 아가씨를 대신하여 수로가 제물이 되기를 자청한다는 건 ‘구지가’와는 정반대의 논리라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구지가’는 초자연적 존재에게 납치당한 수로를 돌려달라는 애원의 노래다. 하지만 <꽃이다> 속의 수로부인은 ‘구지가’와는 반대로 자신이 제물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왜일까. 마을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가 바다 용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아서다. 마을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욕망의 대상이 될 바에는 차라리 수로 자신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기에 바다용의 제물이 될 것을 자청한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이 조우하는 연극 <꽃이다>를 ‘역사적 사실’이라는 프리즘으로 조망하면 지배자의 논리보다는 피지배자에게 보다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꽃이다>를 ‘삼국유사’의 관점으로 보면 수로부인이 바다 용의 제물이 되기를 자청하는, ‘구지가’의 시선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운 반면 수로부인은 욕망의 대상을 자처함으로 타인의 시선을 즐긴다.

 

(사진: 국립극단. 오마이스타에 송고한 기사 )

글 잘읽었습니다.
가을 풍경이 정말 멋진 계절이예요~
그런데 방심하면 기온차가 심해서 감기걸려요~
주말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