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Review

劍聖 2012. 12. 1. 18:15

<인당수 사랑가>는 뮤지컬의 ‘키메라’다. 키메라는 사자의 머리와 뱀의 꼬리, 양의 가슴으로 이뤄진 혼성 생물이다. 마찬가지로 <인당수 사랑가>는 우리 고전인 ‘춘향전’과 ‘심청전’을 합성한 뮤지컬이다.

 

(사진: CenS)

 

퓨전, 혹은 하이브리드 효과는 <리걸리 블론드(혹은 금발이 너무해)>처럼 뮤지컬 안에 발레가 결합하거나 혹은 오페라 안에 발레를 믹스하는 것처럼 장르와 장르의 혼합뿐만 아니라 하나의 장르 안에서도 이야기와 이야기를 섞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인당수 사랑가>는 하이브리드 효과만 있는 뮤지컬이 아니다. 무대 규모에 있어서도 ‘진화’한다. 맨 처음 소극장용 뮤지컬로 출발한 <인당수 사랑가>는 십 년 후인 지금에 와서는 중극장용 뮤지컬로 탈바꿈한다. 소극장 뮤지컬이 십 년의 세월 동안 중극장 뮤지컬로 진화한 셈이다.

 

‘춘향전’ 속 성춘향은 기생 월매의 딸이지 봉사 심학규의 딸이 아니다. 하지만 <인당수 사랑가> 속 춘향은 월매의 딸이 아닌 심학규, 심 봉사의 딸이 된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춘향의 성은 ‘성’ 씨가 아닌 ‘심’ 씨가 된다. 즉 ‘심춘향’이 되는 셈이다. 춘향은 이몽룡과 연애만 하는 낭랑 십팔 세의 로맨스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아버지 심 봉사의 수발도 들어야 하기에 그렇다. 연애도 하면서 아버지도 모셔야 한다.

 

하지만 ‘춘향전’ 가운데서 춘향을 연모하는 것이 어디 이몽룡뿐이던가. 이몽룡의 연적을 손꼽으라. 할 때 변학도, 변 사또를 빼놓으면 섭섭할 터. 변학도는 심춘향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버지 심봉사를 옥에 가두는 악행을 저지르는 악당임에 분명하다. 심춘향이 변학도의 후처가 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옥살이는 쭉 이어질 것이라는 협박을 하며 말이다.

 

하지만 변학도는 마냥 악당 캐릭터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일편단심 이몽룡에게만 빠져있는 춘향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변학도가 던지는 대사는 여성 관객의 마음을 구구절절하게 흔들어놓는다.

 

(사진: CenS)

 

“사랑의 약속이라는 건 말이다, 사랑을 할 때만 약속이니라. 젊은 사내가 몸이 뜨거울 때 내뱉은 약속이라는 건 그 몸도 마음도 식어지면 그저 돌아보기도 민망한 헛말일 뿐이지”

 

이쯤 되면 변학도는 그저 심춘향의 풋풋한 몸만 탐하는 ‘나쁜 놈’이 아니라 춘향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하여 심금을 울리는 말로 애를 쓰는 ‘나쁜 남자’, 꽃중년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변학도라는 나쁜 남자 캐릭터가 이다지도 로맨틱하다보니 몇몇 관객은 ‘변학도 홀릭’에 퐁당 빠질 지경에 이른다.

 

<인당수 사랑가>에서 특기할 점은 남자 캐릭터 중 ‘나쁜 남자’의 역할이 변학도 하나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변학도는 춘향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죄 없는 심 봉사를 일부러 옥에 가둠으로 나쁜 남자가 된다.

 

하나 심 봉사 역시 나쁜 남자에서 자유롭진 않는다. 심 봉사 자신이 옥에 갇힌 잉여의 몸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딸을 이용한다. 춘향이 변 사또의 후처가 된다면 아비는 옥에서 풀려나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으니 변 사또의 후처가 되어달라고 아비는 딸에게 간청한다. 딸을 희생해서라도 차디 찬 옥살이를 면하기 위해 후처가 되라고 간청하는 심학규의 태도는 변학규의 악행과는 별개인 또 다른 나쁜 남자의 전형이라고 분석 가능하다.

 

한양으로 올라간 지 한창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춘향에게 변변한 연락 한 번 보내지 않는 이몽룡도 어찌 보면 나쁜 남자. 사랑하는 여자의 애간장만 태우지 한양에 올라간 이후로는 춘향에게 얼굴을 드러내긴 커녕 소식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음으로 춘향의 애간장을 애태우게만 만든다. 춘향의 주위에 있는 남자들, 사랑하는 남자인 이몽룡과 그의 연적인 변학도, 심지어는 춘향의 아버지인 심학규마저도 나쁜 남자가 된다.

 

(사진: CenS)

 

이런 관점으로 보면 춘향의 주위 남자 중 나쁜 남자가 되지 않는 캐릭터는 단 한 명이다. 이몽룡의 몸종인 방자다. 단 하나의 사랑을 기다리다 못해 피가 마르는 춘향을 애처롭게 바라보되 끝까지 변심은 하지 않는 남자다. 춘향이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연적인 변학도의 무리한 요구로 극이 무거워질 만하면 무대 위에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삼총사> 혹은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같은 공연은 1년에 연달이 두 번 접할 수 있는 공연이다. 한데 이들 공연을 같은 해에 접하더라도 눈썰미가 예리한 관객은 연출이나 배우의 동선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하물며 십 년이라는 관록을 덧입은 <인당수 사랑가> 같은 공연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소극장에서 중극장이라는 무대의 크기도 그렇지만 연출도 진화하고 있다. 확실히 <인당수 사랑가>는 바로 직전 공연인 5년 전, 초연 당시인 10년 전에 비해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창작뮤지컬이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