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3. 1. 4. 08:51

이건 순전히 발상의 차이다. <아바타>가 놀라우리만치 3D 영상 혁명을 가져다 준 이후, 3D라는 영상 혁명의 놀라움을 우리나라와 독일이 접근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우리나라 영화는 3D를 3년 전 모 영화를 통해 여배우의 노출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여자의 육체가 3D라는 입체적 시각 구현 방식과 어디 들어맞던가.

 

 

3D라는 신기술을, 여자의 나신이나 찍어댐으로 말초신경 자극에만 활용하는 한심한 발상만 하고 있었으니 개봉 당시 평단은 혹평하고 관객은 등을 돌림으로 영화가 망하는 불상사를 겪지 않았던가.

 

하지만 <잊혀진 꿈의 동굴>을 찍은 독일은 3D를 활용하는 방식이 달랐다. 3D를 에로나 나신을 찍어대는 테크놀로지로 활용한 게 아니라 고대 문화유산 ‘쇼베 동굴 벽화’를 3D로 촬영한 것이다. 문화 예술을 접근하되 평면적인 2D의 접근이 아니라 3D라는 입체감 구현으로 고대 예술을 시각적으로 복원하고 싶었던 접근 방식이다.

 

쇼베 동굴 벽화는 라스코 동굴 벽화보다 약 두 배 정도 오래된 그림이다. 거금을 주고도 보지 못하는 그림이 쇼베 동굴 벽화다. 백화현상이 생겨 혹여 벽화가 상할까봐 프랑스 정부가 봉쇄한 장소기에, 일반인은 물론이고 극소수의 학자만 볼 수 있는 쇼베 동굴 벽화를 3D의 힘을 빌려 스크린으로 재현한다. 관객은 입장료만 지불하면 그 어떤 거금을 내고도 보지 못하는 3만 2천 년 전의 고대 예술을 프랑스로 날아가지 않고도, 거금을 들이지 않고도 관람할 수 있다.

 

 

<잊혀진 꿈의 동굴> 속 쇼베 동굴의 벽화를 그린 이를 보면 옛 선인들도 오늘날의 현대인 못잖은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물의 다리는 네 개다. 하지만 어떤 동물의 다리는 여덟 개나 된다.

 

그린 이가 동물의 다리를 잘못 센 것이 아니라 다리가 움직이는 잔상을 표현하기 위해, 동물의 다리가 움직이는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덧칠한 것 마냥 다리를 여러 개로 그린 것이다. 코뿔소의 머리가 여러 개처럼 보이는 벽화 역시 코뿔소의 역동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화가의 창의적인 표현 방식이리라.

 

동굴 곰의 뼛조각과 함께 300여점의 벽화들을 보노라면 지금은 멸종하고 찾아볼 수 없는 멸종 동물의 흔적을 그림으로나마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동굴 벽화 속에는 갈기가 없는 사자의 그림이 있다. 암사자를 그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쇼베 동굴의 화가는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수컷임을 상징하는 음낭까지 묘사한다.

 

 

갈기 없는 숫사자가, 지금은 멸종되고 볼 수 없는 동굴 사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들소의 머리와 여자의 몸을 가진 벽화 속 그림은,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로스처럼 반인반우(반은 사람이고 반은 소)라는 신화적 상상력이 단지 그리스만이 고유한 발상지가 아님을 보여준다.

 

3만 2천 년 전의 미적 아름다움을 3D로 담고자 했던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상에서 우리가 힌트를 얻는다면, 우리 역시 3D를 여자의 나신이나 담아대는 원초적 발상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를 3D로 담을 수 있을 게다. 울산의 암구대 반각화나 석굴암을 3D로 정교하게 담아낼 수만 있다면 우리 역시 <잊혀진 꿈의 동굴> 부럽지 않은 문화유산을 스크린으로 영화 팬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중요한 건 발상의 차이다. 3D라는 그릇을 가지고 한심하게 여자의 나신이나 담고 있을지, 아니면 문화유산을 담을지 하는 문제는 3D라는 그릇을 요강으로 만드느냐 신선로 그릇으로 만드느냐 하는 문제와도 같다.

 

(미디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