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Review

劍聖 2013. 1. 9. 11:01

미장아빔이자 극중극 속 땀과 정열의 대가

<드라마의 제왕>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면 좋을까. “<드라마의 제왕>은 **다”라는 정의를 내리고자 하면 <드라마의 제왕>은 ‘호수 위의 백조’라 할 수 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는 그 우아한 자태와는 달리, 호수면 아래를 보면 자맥질을 쉬지 않고 하는 백조의 물갈퀴를 살펴볼 수 있다. 만일 백조가 자맥질을 멈추면 호수 위 우아한 백조의 몸뚱이라는 더 이상 호수 위를 떠다닐 수 없을 것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한 편의 드라마를 감상한다는 건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를 관조하는 것과 똑같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는 울분을 삼키기도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행복한 주인공의 결말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거나 카타르시스를 제공받는다. 하지만 드라마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다르다.

 

하루하루, 아니 한 시간 혹은 일 분 일초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바삐 돌아간다. PPL을 교묘하게 배치하느냐 마느냐, 대본과 배우, 제작자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복잡한 실타래, 현장에서의 살벌한 주도권 쟁탈전이라는 드라마 제작진의 현장에서의 고충은 그야말로 호수 밑바닥에서 쉼 없이 헤엄쳐야 하는 백조의 물갈퀴를 연상케 만든다.

 

<드라마의 제왕>은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위해 스텝과 배우, 제작진이 어떤 고충을 갖고 만드는가에 관한 ‘미장아빔’이자 극중극이다. 한 편의 드라마를 위해 흘린 정열과 땀의 대가를 시청자에게 간접 체험하게끔 만드는 드라마가 <드라마의 제왕>의 힘이다.

 

앤서니 김 아니면 어떡할 뻔 했니?

<드라마의 제왕>의 세계는 극중극의 세계이자 동시에 ‘갑과 을의 세계’다. <골든타임>에서 갑의 지위를 가진 이들이 병원 과장 혹은 의사였다면 을은 병아리 레지던트, 혹은 의사의 처분만 기다리는 환자로 구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의 제왕>의 세계관은 갑과 을이 나뉘는 세계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갑은 당연히 배우의 몫이다.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에 비해 을의 몫은 스태프가 담당한다. 툭하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체력 소모를 당하기 일쑤인 이들 스태프에게 돌아가는 몫은 노동의 대가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골든타임>과 마찬가지로 갑과 을의 세계관,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여기에서 하나 더, <드라마의 제왕>은 슈퍼맨을 필요로 한다. 미드에 정통한 시청자라면 슈퍼맨이 등장하는 미드를 잘 알 것이다. <24>다. 매 에피소드를 한 시간 안에 응축하여 담아내는 <24>는 키퍼 서덜랜드가 연기하는 잭 바우어라는 캐릭터가 없이는 사태를 능숙하게 해결할 수 없다.

 

<24>와 마찬가지로 <드라마의 제왕> 속 스토리는 앤서니 김(김명민 분)을 빼놓으면 도무지 이야기 전개가 되지 않는다. <드라마의 제왕>은 다양한 사건, 사고로 앤서니 김의 발목을 매번 태클 잡는다. 그 때마다 앤서니 김은 <24>의 잭 바우어 마냥 매 회마다 사태를 진정시키고 수습한다.

 

마지막 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칫 성민아(오지은 분)가 촬영장에 나타나지 못해 방송에 큰 차질을 빚을 뻔했지만 앤서니 김의 능수능란한 현장 지휘로 드라마 결방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면한다. <드라마의 제왕>은 매 회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박감으로 시청자의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몰입감을 제공한다.

 

결국은 이상주의자의 승리

하지만 <드라마의 제왕>이 <24>처럼 긴박감만 제공하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학교 2013>과 닮은 구석이 있는 드라마다. <학교 2013>은 이상주의자 정인재(장나라 분)과 현실주의자인 교장( 임정수박해미 분)와 가치관 충돌을 일으키는 드라마다. <드라마의 제왕> 역시 이 부분에서만큼은 <학교 2013>과 다르지 않다.

 

    

현실주의자는 앤서니 김이다. 성공과 야망에 전도된 앤서니 김은 초반부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앤서니 김은 서서히 ‘교화’되기 시작한다. 앤서니 김을 교화하는 이는 다름 아닌 이고은(정려원 분)이다. 드라마는 시청률 이상의 무엇이 있고, 드라마를 통해 꿈과 이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자가 이고은 작가다.

 

앤서니 김과 이고은이라는 매칭은, 처음에는 물과 기름과도 같았다. 가치관이 서로 다른 두 남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관철하기 위해 서로 으르렁거리고 대립한다. 하지만 드라마‘가화성이라고, 앤서니 김과 이고은은 서로에게 ’수렴‘하기 시작한다. 피 터지게 싸우던 두 남녀가 더 이상 가치관 상충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융합하기 시작한다.

    

서부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법론인, 무법자가 아내나 애인에게 교화하는 메시지마냥 앤서니 김은 자신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온갖 수단의 합리화를 버리기 시작한다. 앤서니 김의 이러한 변화는 이고은으로부터 촉발하기 시작한다. 이고은이 아니라면 앤서니 김은 마지막 방영분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야망가로 남았을 테니 말이다.

 

앤서니 김이 이고은을 닮아 이상주의자로 변했다는 걸 알게 되는 지점은, 드라마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시력과 맞바꾼 그의 정열이 나타나는 마지막 회 방영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드라마를 향한 앤서니 김의 정열은, 비록 시력은 잃었지만 드라마 결방이라는 최악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동시에, 드라마 한 편을 위해서라면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는 앤서니 김의 정열은 그간 방영분을 통해 쌓아온 앤서니 김의 카리스마와 맞물려 시청자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대립, 그리고 돈과 야망만을 쫓던 남자가 이상과 노력을 믿은 여자를 만나 개과천선하는 <드라마의 제왕>의 앤서니 김과 이고은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기존 드라마의 공식에 다른 층위 한 겹을 덧입히기에 충분했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