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Review

劍聖 2013. 1. 13. 10:59

뮤지컬에 정통한 팬이라면 <벽을 뚫는 남자>라는 원제 대신에 <벽뚫남>이라는 축약된 제목으로 통하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가 5년 만에 관객 곁을 찾아왔다. 한국에는 2006년과 2007년 재공연에 이어 5년 만에 세 번째로 찾아오는 프랑스 뮤지컬이다.

 

   

지금 한국 무대에 올라온 뮤지컬의 국적을 살펴보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아이다>와 <오페라의 유령>, 동유럽 뮤지컬인 <황태자 루돌프>, 창작뮤지컬의 기린아 <완득이>도 모자라 프랑스 뮤지컬이 관객을 찾는 셈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넓어진 만큼, 뮤지컬의 국적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벽을 뚫는 남자>는 하이브리드 효과가 무언지를 보여주는 뮤지컬이다. 프랑스 단편문학의 대가인 마르셀 에메의 동명 소설이 <쉘브르의 우산> 및 <007> 시리즈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미셸 르그랑의 감미로운 음악과 만날 때 뮤지컬 넘버와 이야기 구조의 앙상블이라는 시너지 효과는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벽을 뚫는 남자>의 소재는 ‘초능력’이다. 평범한 소시민 듀티율이 우연히 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벌이는 일련의 해프닝은, 듀티율이 자신의 초능력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이기적인 유익에만 활용하는 ‘과시’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온정주의’와 연관된다. 유통기한이 지나 버릴 빵을 걸인에게 제공하고, 거리의 여인에게 고가의 목걸이를 준다는 건 듀티율이 자기의 초능력을 자신에게만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한 나눔의 정신이 있다는 걸 뜻한다.

 

벽을 뚫는 초능력을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사용했다면 듀티율은 한낱 좀도둑에 불과했을 테다. 하지만 듀티율은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줄 알았기에, 그는 몽마르뜨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을 수 있었다. 듀티율이 재판을 받을 때 몽마르뜨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해 듀티율을 감싸주는 건 다른 사람을 위해 물건을 나눌 줄 알았던 나눔의 마음씨 덕이다.

 

    

<벽을 뚫는 남자>의 주된 테마는 벽을 뚫는 초능력에 있지 않다. 만일 초능력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뮤지컬은 <엑스맨> 시리즈처럼 듀티율의 재능을 보여주는 초능력 열전이 되었을 테다. 뮤지컬의 테마는 ‘소통’이다. 듀티율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던 이사벨에게 과감하게 다가설 수 있던 건 벽을 뚫는 초능력 덕이다. 벽을 뚫는 초능력이 없었다면 듀티율은 이사벨에게 다가설 수도 없었을 소심남이니 말이다.

 

듀티율에게 벽을 뚫는 초능력이란, 몽마르뜨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계기이자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마을 사람들과는 물질을 나눔으로 ‘소통’하고, 짝사랑하던 여인과는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알림으로 ‘소통’을 이룬다.

 

‘소통’의 중요함을 새삼 부각시켜주는 <벽을 뚫는 남자>는 다른 이와 소통하지 못함으로 점차 불통에 빠지는 현대인의 ‘불통’ 증후군을 판타지적 감수성으로 매만져준다. 동시에 소통을 불통으로 만들어버린 현 정권과는 대조를 보여주는 뮤지컬이기도 하다.

 

    

벽을 뚫는 남자>는 주인공 듀티율이 소통을 이루는 방식을 대사가 아닌 노래로 일군다. 대사의 역할을 노래가 감당하는 ‘송 스루’ 뮤지컬이다. 넘버는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대사를 넘버로 대체한다는 건 그만큼 캐릭터와 캐릭터의 감정선을 감성으로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동시에 캐릭터 사이에 나타나는 소통의 파급력을 아름다운 감성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겠다는 의도와도 궤를 같이 한다.

 

1947년이라는 뮤지컬 속 시대적 배경은 해방 후 우리 역사와 일정 부분 오버랩한다. 나치에게 부역했던 이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세탁하고 고위직에 오른 뮤지컬 속 어느 캐릭터의 이야기는, 몇몇 친일 인사들이 친일행각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고위직에 오른 우리 역사 청산의 아픔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뮤지컬 자체가 따뜻한 파스텔 톤 하나 가득한 이야기이기에 나치에게 부역을 한 과거 행실이 들통이 나는 시퀀스의 단죄 역시 심각한 방식으로 연출되지는 않는다. 듀티율과 이사벨의 러브라인 이면에는, 이렇게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도 엿볼 수가 있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