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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3. 1. 15. 11:36

멜로라는 장르에서 제일로 선호하는 유형의 사랑은 ‘신데렐라 이야기’다. 외모는 킹카요, 실력과 재력이라는 막강 이종 세트로 무장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순정을 바친다는 이야기는 브라운관의 여성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간혹 <유령>이나 <골든타임> 혹은 <학교 2013>처럼 사랑 이야기가 아예 탈색된 드라마가 나오기는 하지만, 사랑 자상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커플로 이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시청자의 판타지를 자극하면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요즘 드라마 가운데 나타나는 사랑의 패턴을 살펴보았다.

 

 

‘조건 보고 사랑할래요’ 된장녀의 사랑 <청담동 앨리스>

<청담동 앨리스>의 청담동 마나님 서윤주(소이현 분)가 보여주는 사랑은 전형적인 된장녀의 사랑이 무언가를 시청자에게 보여준다. 청담동 마나님이 되기 전의 서윤주는 유학 시절 차승조(박시후 분)와 사랑을 나누던 연인이었다.

 

한데 이 드라마는 알다시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드라마다. 아버지 차일남(한진희 분)과 차승조의 관계가 좋지 않은 관계이기에 그렇다. 요즘 방영분에서 한세경(문근영 분)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누그러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서윤주가 차승조를 사랑하던 시기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냉각 기류를 만들고 있던 때였다.

 

부르주아가 아닌 서윤주를 예비 며느리감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버지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때라 차승조는 특단의 결단을 내린다. 윈저공이 심슨 부인과 사랑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한 것처럼 차승조는 부르주아로서의 권리를 포기한다. 서윤주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하나 차승조의 특단의 결단 이후 남은 건 서윤주와의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등을 돌린다. 서윤주가 사랑한 건 차승조의 재력이지 차승조라는 인격과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한 게 아니다. 결국 서윤주는 신민혁(김승수 분)과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는 신민혁을 사랑한 게 아니라 신민혁의 ‘재력’을 사랑한 것과 똑같다. 서윤주는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여자가 아니라 ‘돈’과 사랑에 빠진 여자다.

 

   

윈저공과 심슨 부인의 사랑처럼 계급을 초월한 사랑 <마의>

<마의>는 사극이다. 사극에는 당연히 귀한 신분과 천한 것이 나뉘는 계급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마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열을 정하는 계급도 사랑을 나누지도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신분이 서로 바뀌어 남자는 천한 것이 되고 여자는 귀한 신분이 된 운명의 장난 속 두 남녀 백광현(조승우 분)과 강지녕(이요원 분)의 사랑은, 귀한 여자와 천한 남자의 계급을 초월한 애틋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은 숙휘공주(김소은 분)다. 숙휘공주는 드라마 초기부터, 자신이 천민과는 사랑을 나눌 수 없는 고귀한 신분이라는 걸 자각함에도 불구하고 백광현에 대한 짝사랑으로 속을 태운다. 이는 <내 딸 서영이>에서 이상우(박해진 분)를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이상우의 차가움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던 최호정(최윤영 분)의 짝사랑과 궤를 같이 하는 짝사랑이다. 숙휘공주의 짝사랑 역시 계급을 초월한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의 사랑, <내 딸 서영이>와 <드라마의 제왕>

드라마에서 사랑 지상주의를 완성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의 사랑이다. 신분이 천하거나 조건이 구린 사랑의 대상을 서윤주처럼 내팽개치지 않고 품어주고 사랑하는 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랑이야말로 시청자로 하여금 사랑의 판타지를 대리 충족하게 만든다.

 

<내 딸 서영이>의 강우재(이상윤 분)는 아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고도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랑을 보여준다. 이서영(이보영 분)은 아버지가 살아 있음에도 아버지가 타계했다고 속이고 강우재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삼 년 차 들어 강우재는 아내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다.

 

   

처음에는 아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이서영과 이혼할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비록 아내가 자신에게 진실을 속였다 할지라도 아내의 거짓말을 모른 척 하고 결혼생활을 지속할 것을 결심한다. 아내가 진실을 자신의 입으로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릴 것을 결심하는 강우재의 사랑은, 아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거짓보다 상대의 핸디캡이라도 품고 결혼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의 제왕>도 ‘사랑 지상주의’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많은 손길들의 땀과 정열을 보여주는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상대의 조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랑이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이고은(정려원 분)이 사랑하는 앤서니 김(김명민 분)은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레버씨 시신경 위축증을 앓는다.

 

마지막 방영분에서 앤서니 김은 시력 회복 치료를 위해 출국하려다가 드라마 현장의 급작스런 사고 소식을 듣고 이를 수습하는 통에 출국 비행기를 놓치고 결국에는 시력을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맹인이 된다면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를 위해 손이 갈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고은은 앤서니 김을 버리지 않고 그의 곁에 남아 팔짱을 낀다. <청담동 앨리스> 속 서윤주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이다.

 

<마의>의 숙휘공주, <내 딸 서영이>의 강우재, <드라마의 제왕>의 이고은은 사랑하는 사람의 천한 신분이나 거짓말, 앞이 보이지 않는 육체적 핸디캡이라도 품고 갈 수 있다는 ‘사랑 지상주의’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진상도 사랑할래’ 가슴 먹먹한 사랑 <보고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의 사랑 중 끝판왕은 <보고싶다>의 이수연(윤은혜 분)이다. 사실 팩트로만 따지면 이수연은 한정우(JYJ 박유천 분)를 연인이 아니라 진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어린 여자의 몸으로, 한정우를 구하기 위해 위험 속에 뛰어들다 몹쓸 일을 당하는 이수연을 놔두고 혼자 도망친 사내가 한정우 아니던가.

 

한정우도 모자라, 한정우의 아버지 한태준(한진희 분)은 살아있는 사람인 이수연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한정우는 옛 친구가 아닌 진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14년 전의 업보를 들고 복수를 해도 시원찮다. 그럼에도 이수연은 한정우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끔찍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가해자의 아들과 사랑하는 이수연의 가슴 먹먹한 사랑은 ‘복수’만이 최상의 답이 아님을 보여준다. 복수가 판을 치던 작년 드라마의 트렌드를 거스르는 이수연의 사랑이 시청자에게 가슴 먹먹하게 먹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시커멓게 응어리진 트라우마를 녹이는 것은 반드시 ‘복수’가 정답이 아니라 거꾸로 ‘사랑’이라는 걸 <보고싶다>는 보여주고 있다. 요즘 드라마의 사랑은, 된장녀 스타일의 사랑부터 된장녀 스타일과는 반대편의 위치에 자리하는, 복수 대신 사랑을 선택한 여인의 사랑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림의 사랑이 브라운관에서 선보이는 중이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