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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3. 2. 6. 09:38

학교라는 약육강식의 정글

“됐어, 됐어. 이젠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이건 요즘 가요 가사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4년에 서태지가 발표한 ‘교실 이데아’의 가사다.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무한경쟁을 비판하는 가사다.

 

   

한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서태지가 이 노래를 발표했을 당시와 뭐가 달라졌을까. 달라진 게 있기나 할까. 1994년 당시 학생이던 이들이 학부모가 도니 지금의 학교 풍경은 이들 부모가 학생이었을 때의 모습과 달라진 있을까. 왕따는 더욱 험악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집어삼키고, 성적 지상주의는 외고나 특목고 진학을 위해 용을 쓰는 중학교 풍경으로부터, 아니 그 이전 초등학생 때부터 자라난다.

 

<학교 2013>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닭장 안에서 서로를 쪼아대는 닭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학생들의 날 선 모습을 보여준다. 오정호(곽정욱 분)와 그의 일진 친구들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건, 남경민과 길은혜가 날카로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건 정신적인 폭력에 다름 아니다. 첫 회부터 유리창을 깨고 의자가 날아다니고, 남학생의 주먹과 주먹이 교환하는 건 학교가 더 이상 학교가 아니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축소판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의 축소판이다. <학교 2013>은 학교가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한 모습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학생에게 모본을 보이지 못하는 어른들의 양태를 교사와 학부모를 통해 보여준다. 교장은 교사들로 하여금 전국 석차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성적을 올릴 것을 권유한다. 성적 지상주의에 전도된 교장에게 인성 교육은 무의미하다. 학부모의 치맛바람으로 대변되는 민기 어머니(김나운 분)와 하경의 어머니(이연경 분)는 자녀의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교사는 용도 폐기되어야 할 교사로 생각하고 교장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이런 학부모와 교장 밑에 있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얼까. 교사는 아이들이 따를 수 있는 모델이 되지 못하는, 학생에게 기계적으로 수업만 전달하는 어른으로 전락한다. 이 자리에서 인성 교육은 낄 틈이 없다. 오정호가 일진으로 반 학생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들 오정호를 샌드백으로 착각하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아니겠는가. 오정호가 학교에서 휘두르는 폭력은, 학교를 마치고 난 후 오정호의 주위에 어른거리며 오정호를 폭행하는 불량 어른들의 폭행의 축소판과 다름없다.

 

<학교 2013>은, 문제 학생의 뒤에는 문제 어른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교사가 아이에게 롤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학부모가 교사를 디스하는 현상 역시 아이들이 따를 모델이 없다는 걸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가해자도 감싸는 감동적인 우정

<학교 2013>이 그나마 다행인건 왕따와 같은 우리 교육 현실의 극단적인 어두움은 탈색한 채 학생들의 고민과 우정을 그린다는 점이다. <학교 2013>은 정글과 같은 약육강식의 삭막함만 묘사하지 않는다. 끈끈한 우정도 묘사한다. 오정호로부터 고남순(이종석 분)를 구하는 건 한정우(김창환 분)의 몫이었다. 물리적으로는 오정호에게 당하지 못하지만 고남순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우정의 발현이다.

 

극이 진행될수록 고남순의 어두운 과거는 밝혀진다. 박흥수(김우빈 분)의 다리를 망가뜨려 더 이상 축구를 하지 못하게 만든 자신의 과오를 짊어지고 빵셔틀을 자처하는 고남순의 행보는 일진 시절의 과오를 박흥수에게 용서받고자 하는 속죄의식이다. 단 하나의 꿈을 앗아간 고남순이 박흥수의 눈에는 곱게 보일 턱이 없다, 두 사람의 악연이 밝혀지고, 친구에게 용서를 갈망하고 우정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고남순의 행보는 그 어떤 로맨스보다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학교 2013>는 이밖에도 일진 삼총사 중, 맘 잡고 공부할 것을 결심하면서도 남은 두 일진 친구들과 절교하지 않는 이지훈의 우정, 남자들 못지않게 뜨거운 우정을 과시하는 송하경(박세영 분)과 이강주(효영 분)의 모습도 보여준다. 약육강식의 정글 안에서 피어난 학생들의 우정 못잖은 동지애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인재(장나라 분)를 뒤에서 응원하는 강세찬(최다니엘 분)의 모습이 그것이다.

 

<학교 2013>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우정으로 말미암아 용서받는 점 역시 강조한다. 과거 일진이던 이지훈은 피해자 한영우에게 과거의 잘못을 편지로 사과한다. 역시 박흥수에게 가해자인 고남순은 박흥수에게 용서받고 옛날의 우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신혜선(정연주 분)의 휴대폰을 몰래 훔친 계나리(전수진 분) 역시 신혜선에게 용서받고 우정을 회복하고, 오정호가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제적당하는 걸 바라지 않는 피해자 송하경은 담을 넘고 땡땡이를 쳐서 오정호가 제적당하지 않게끔 만든다.

 

로맨스 하나 없는 이 드라마가 타 드라마의 어설픈 로맨스보다 학생의 우정과 교사의 동지애가 뜨겁게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을’ 중의 ‘을’이 펼치는 온정주의가 일으키는 변화

이런 약육강식의 학교를 변화시키는 건 어느 기간제 교사의 애정이다. 기간제 교사는 갑을 관계에서 ‘을’인 교사다. 교사들의 관계에서는 계약직인지라, 나이가 제일 어린지라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다. 2반 학생들을 지도함에 있어서 몇몇 아이들은 그깟 시 한 편 외우는 게, 정인재의 교수학습 패턴이 맘에 들지 않아 딴죽 걸기 일쑤였다. 교장은 믈론이요 교사와 학생들에게도 허구헌 날 치이는 게 정인재다.

 

하지만 이런 미약한 정인재가 학생들과 교사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민기 어머니의 치맛바람으로 정인재는 학교에서 경질될 위기에 처하자 아이들은 집단으로 탄원서를 제출한다. 정인재가 비록 교수 학습 능력에서는 강세찬에게 뒤떨어질지 몰라도 아이들과 소통할 줄 아는 교사라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건 강세찬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정인재라는 점이다. 강세찬은 “너 이래갖고 대학교에 진학하겠니? 이 성적 갖고는 어림없다”며 상담 받는 학생의 가슴을 후벼 파는 건 기본인 시니컬한 독설가다. 이런 그가, 정인재 대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교장에게 공언한다는 건, “당신은 내가 되고 싶었던 선생님이니까요”라고 속마음을 고백하는 건 그만큼 강세찬 역시 정인재의 온정주의에 감화되었다는 걸 뜻한다.

 

  

비록 엄대웅(엄효섭 분)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강세찬처럼 족집게로 학생의 성적을 올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을’ 중의 ‘을’로 제일 약한 정인재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퇴학 위기에 처한 문제아 오정호를 자석처럼 학교에 어떻게든 남아있게 만든 것도, 김민기(최창엽 분)처럼 소통을 바라는 학생에게 소통의 경로를 열어준 것도 모두 정인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첫 제자를 지키지 못해 교단을 떠나려는 강세찬이 사직서를 찢고 결국 학교에 남는 것도 다 정인재의 온정주의 덕이 아니겠는가. “내년에 어떡하실래요?” 하는 정인재의 물음에 “정 선생님이 계시면 남아야죠”라고 답하는 강세찬의 모습은, 시니컬한 수업 기계이던 강세찬이 정인재의 온정주의에 전도된 모습이 아니던가. 온정주의의 극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를 무단결석하는 오정호를 기다리기 위해 종례를 마치지 않은 정인재와 강세찬 두 교사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깊은 감회를 자아냈다.

 

소통은 사회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부모와의 소통, 교사와의 소통을 바라지만 소통이 차단된 학교에 갇혀 있다. <학교 2013>은 가장 힘없고 미약한 젊은 교사가 교실에 온정주의를 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소통이 어떻게 교단을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우리가 로맨틱 코미디를 보며 백마 탄 왕자의 판타지를 꿈꾸는 것처럼, <학교 2013>은 소통이 멸종한 우리 학교 현실에 정인재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준 드라마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