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3. 2. 11. 12:32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말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최해갑(김윤석 분)이 그런 경우다. 감독 최해갑(김윤석 분)의 아이콘은 체 게바라다. 저항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를 자신의 아바타로 생각한다. 전기료를 납입할 때 끼워팔기처럼 붙어있는 TV 수신료가 못마땅해 TV를 내던져 산산조각 내버리고, 국민연금을 내기 싫어 “나 국민 안 해”라고 국민연금 납부를 거부하는 아나키스트가 최해갑이다.

 

 

 

개구리를 삶는 방법은 물을 천천히 가열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단번에 끓는 물로 가열하면 개구리는 뛰어올라 더운 물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아주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는 물이 끓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다가 삶아 죽고 만다고 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물이 끓는 줄도 모르고 앉아있는 개구리처럼 우리 역시 국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일련의 조항들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지 않던가. 그 조항 가운데에는, TV를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TV 수신료를 내야만 하는 불합리도 상존한다.

 

기존에 우리가 모르고 자연스럽게 동일시한 국가의 불합리를 태클로 받아들이고 맞받아치는 최해갑의 똘기 충만한 행동은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불러일으킨다. TV를 부수고 국민연급 납부를 거부하는, 국가의 의무를 거부하는 최해갑의 일탈을 통해 관객은 새삼 우리가 모르는 와중에 국가의 개입에 그간 우리가 얼마나 무감각하였는가를 체현한다.

 

다시 최해갑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가족을 이끌고 고향 섬에 들어가 최해갑 버전의 안빈낙도를 꿈꾸다가 다른 버전의 태클을 당한다. 섬을 날로 먹으려는 국회위원의 야심은, 최해갑이 도시에 있을 때의 국가의 간섭과는 비교되지 않는 강력한 태클이다.

 

최해갑이 거주하는 집 자체가 최해갑에게 합법적인 사유지가 아니라 불법 점유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해갑의 보금자리는 개발 지상주의를 앞세운 국회위원의 탐욕 앞에 정복당하기 일보 직전에 다다른다. 최해갑은 국가의 간섭이라는 여우를 피하려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개발 지상주의에 전도된 탐욕이라는 호랑이의 위협 앞에 보금자리가 날아갈 위기에 직면한다.

 

 

국회위원의 탐욕과 맞서는 최해갑의 투쟁기는 용산 참사의 상황을 떠오르게 만든다. 동시에 개발 지상주의라는 탐욕 앞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아나키스트 최해갑의 투쟁기는 ‘언더독’을 상기하게끔 만든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섬을 통째로 삼키려 하는 개발 지상주의에 맞서는 최해갑과 그의 아내 안봉희(오연수 분)의 투쟁은 가족을 위한 보금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수십 년째 고향에 거주하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꼴통 아나키스트의 애틋한 투쟁기로 읽을 수 있다. 가족을 위한 투쟁이 마을을 지키기 위한 광의의 투쟁으로 확장하는 지점이다.

 

동시에 문어의 촉수처럼 탐욕에 눈 먼 국회위원의 야심을 막을 최해갑의 서사를 언더도그마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해갑이 약자이기 때문에 감정이입하는 게 아니라, 강자가 불합리하기에 개발 이기주의에 맞서는 아나키스트의 투쟁기가 관객의 감정을 이입케 만드는 언더도그마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영화다.

 

(오마이스타)

좋은 포스팅~ 다른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몸 건강하세요^^
야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