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Review

劍聖 2013. 2. 11. 12:40

오페라에서 다루는 주제 가운데서 가장 흔한 주제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이는 사랑 이야기가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관객의 공감대를 극적으로 이끌어가기에는 효율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아이다>의 원천은 오페라다. 베르디의 오페라를, 엘튼 존과 팀 라이스가 의기투합하여 현대적으로 만든 작품이 오늘 소개하는 뮤지컬 <아이다>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만 만들던 디즈니의 작품이라고 과소평가하지 마시길. 디즈니는 어른 관객에게도 주안점을 두고 뮤지컬을 만드는데 그 첫 번째 가족용 뮤지컬 작품이 바로 <아이다>다.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둔 <아이다>를 기점으로 디즈니는 아동용 작품만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저력을 가지게 되었다.

 

뮤지컬을 감상하는 동안에는 원작 오페라를 잠시 뒷전에 놓아도 좋을 정도로 귀를 황홀하게 만든다. 록과 발라드, R&B와 소울, 팝, 재즈 등 다채로운 장르의 선율 뷔페 뒤에는 엘튼 존의 손길이 자리하고 있다. 넘버를 듣고 있노라면 엘튼 존의 음악적 재능을 새삼 체감하게 만든다.

 

<아이다>는 음악만 멋들어진 뮤지컬이 아니다. 조명의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그 어느 뮤지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림자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만드는 이집트 나일강의 음영, 팔레트처럼 총천연색을 자랑하는 이집트 공주의 방, 1막의 넘버 ‘어나더 피라미드’에서 4.2초마다 바뀌는 다채로운 조명 큐 사인은 무대에서 조명의 힘이 얼마만큼 대단한가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준다.

 

<아이다>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윤회’ 사상에 빚을 진다. 라다메스와 아이다. 암네리스 세 사람이 박물관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박물관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세 사람의 인연이 옛 이집트에만 국한하는 게 아니라 현대까지 이어지는 걸 의미한다.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사랑 역시 옛 이집트에서 끝마치는 사랑이 아니라 현세에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건 윤회적 사고관에 기인한 덕이다.    

 

 

뮤지컬은 원작 오페라와 이야기 구조가 판박이처럼 똑같지 않다. 아이다의 아버지는 누비아(현대로 치면 ‘에티오피아’다)의 왕이다. 오페라에서 누비아의 왕은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이집트 군의 정보를 빼내고자 하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딸을 이용하는 정략적인 아버지로 묘사한다. 하지만 뮤지컬 속 누비아의 왕은 딸을 정략적 도구로 이용하는 아버지로 묘사하지 않는다.

 

아버지 조세르는 이집트의 실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야심가다. 아들이 이집트 왕가의 사위가 된 다음에 이집트 왕이 사라져 주기만 하면 이집트의 실권은 자신이 쥘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집트 왕을 조금씩 독살하는 이가 총독 조세르다.

 

이집트 왕 파라오의 촉망 받는 예비 사위인 잘 나가는 장군 라다메스가 포로가 된 공주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그의 약혼녀 암네리스와의 미래의 결혼을 배신하는 행위이지 동시에 아버지 조세르의 야망과도 대치된다. 아들 라다메스를 통해 이집트의 실세가 되고자 하는 아버지의 야망과는 반대로 포로와 사랑에 빠져버린 아들은 자신의 야망에 걸림돌이 되고 마니, 아들은 사랑을 위해 아버지와 대치해야만 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는다.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는 사랑을 배신당하는 비운의 캐릭터고, 아이다 역시 조국 누비아를 구해야 하는 공주지만 조국을 침략한 장군과 사랑에 빠지는 역설을 겪는다.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이들을 지배한 건 아폴론적 논리의 세계관이다. 아이다는 이집트에게 침략당한 조국 누비아를 구하기 위해 투쟁하는 여전사가 되었을 것이고, 라다메스는 암네리스와 행복한 결혼을 누렸을 것이다. 조세르는 이집트 왕가의 사위라는 아들의 후광 덕에 이집트의 실세로 떠오를 것이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 계획대로만 흘러가던 아폴론적 논리의 세계관은 사랑이라는 예측불가능한 디오니소스적 논리를 만남으로 무너지고 재조합된다. 디오니소스적 논리의 가장 큰 속성이, 이성을 중시하는 아폴론적 논리를 갈가리 찢고 해체하는 것 아니겠는가.

 

암네리스의 사랑은 무너지고, 아버지 조세르의 야망 또한 붕괴한다. 라다메스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이집트를 배신해야만 하고, 아이다 역시 조국과 사랑 앞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디오니소스적 논리의 초래는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죽음도 두렵지 않은 불멸의 사랑 뒤에는, 이렇게 예측 가능한 운명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아이다>는 보여주고 있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