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3. 3. 28. 11:34

요즘 같은 시대에 본처와 첩의 동거라니!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정하(엄정화 분), 정하는 남편 재인(황정민 분)이 연극연출가로 데뷔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는 ‘내조의 여왕’이다.

 

   

하지만 재인은 아내 정하 몰래 다른 여자와 눈이 맞는다. 재인과 눈이 맞는 여자는 나루(김효진 분). 한데 나루는 정하와도 아는 사이다. 나루는 정하와 남이 아닌, 장허의 학교 후배다. 아내의 학교 후배 나루와 눈이 맞은 재인은 나루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불귀의 댁이 되고, 나루는 뻔뻔하리만치 정하의 집으로 찾아와 선배 정하와 같이 있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재인에게 있어 현실의 탈출구는 아내 정하가 아닌 나루였다. 아내는 남편이 연극연출가로 데뷔하기 위해 물질적인 뒷바라지는 해주지만 슬럼프에 빠진 재인에게 정신적인 모티브는 마련해주지 못한다.

 

재인에게 창작욕을 이끌어주는 이는 다름 아닌 나루. 그녀가 발로 재인의 뺨을 어루만질 때에야 재인이 글을 만질 수 있지, 정하와 같이 있을 때에는 글을 붙잡는 재인의 시퀀스를 단 한 시퀀스도 찾아볼 수 없다. 나루는 선배 정하를 속이며 선배의 남편을 몰래 만나는 팜므 파탈이지만 재인에게 있어선 창작욕을 일깨워주는 모티브가 된다.

 

그렇다면 팜므 파탈 나루가 선배 앞에 뻔뻔하게 나타나 선배의 집에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건 무슨 연유일까. 그건 죽은 재인과의 불륜 관계를 선배 정하 앞에서 용서받고자 하는 심정과 더불어, 죽은 남자를 잊지 못하는 심정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나루와 재인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찍은 테이프를 나루에게 먹으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나루가 정하의 요구에 군말 없이 따른다는 건 선배 정하에게 용서받고픈 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동시에 테이프를 우걱우걱 씹으며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는 건 가학의 의미가 아닌, 사랑하던 남자와의 추억을 몸 안으로 밀어 넣어 몸의 일부로나마 간직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하에게 있어서는 ‘놓음’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재인은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이 버젓이 보인다. 그건 남편이 정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정하가 남편을 잊지 못하고 놓아주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방 안에 끌어들이는 남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더 이상 죽은 남편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죽은 남편과 바람 핀 후배 나루에 대한 증오 역시 정하가 내려놓아야 할 과제다. 죽은 남편의 애첩을 괴롭히고 학대한들 정하에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복수의 쾌감을 만끽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남편과 바람핀 후배를 용서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후배 나루를 용서하고 놓아줄 때에야 정하는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람핀 남편과 그의 애첩을 용서하고 놓아준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을 놓아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정하의 남은 과제다.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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