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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3. 4. 10. 10:48

대개의 경우 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이 위기에 빠질 때 자녀를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다른 경우, 자녀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잃을 때에도 죽은 자녀를 위해 복수를 하는 주체 역시 아버지다.

  

  

<괴물>에서 딸 현서(고아성 분)이 한강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납치당하자 발 벗고 맨 처음 나서는 이는 아버지 강두(송강호 분)다. 영화 <엣지 오브 다크니스>의 크레이븐(멜 깁슨 분), 드라마 <추적자>의 백홍석(손현주 분)은 후자의 경우다. 죽은 딸의 복수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아버지의 복수극이다.

 

그런데 요즘은 거꾸로 위기에 빠지는 주체가 자녀가 아니라 아버지로 묘사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종연한 드라마 <내딸 서영이>만 보아도 그렇다. 이삼재(천호진 분)가 도박에 손을 댄 후 그가 진 도박 빚은 이삼재만의 몫이 아니었다. 이서영(이보영 분)이 학교를 휴학하고 남동생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만든 건 아버지가 진 빚이 드리운 그림자 탓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무능함이 자녀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위기에 빠지는 아버지는 개봉영화 <런닝맨>에서도 드러난다. <런닝맨>은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처럼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 의혹을 뒤집어쓰고 경찰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는 아버지 차종우(신하균 분)의 이야기다. 콜 전문 기사로 일하다가 뒷좌석의 고객이 칼에 찔린 채 죽었다. CCTV의 상황만으로 보면 차종우는 영락없는 살인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차종우가 고객을 살해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뒷좌석의 고객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통상의 영화라면 주인공 차종우가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사건을 해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차종우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이는 해커 도식(오정세 분)이나 형사 상기(김상호 분)이 아니다. 아들 기혁(이민호 분)이다.

 

<런닝맨>은 기혁을 고등학생 버전 셜록 홈즈의 수준으로 묘사한다. 기혁의 추리 실력은 기자 선영(조은지 분)의 머리 회전 뺨칠 정도로 기민하다. 아마 아들이 아니라면 아마도 차종우는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벗는 것이 좀처럼 어렵거나 살인범의 마수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아버지 차종우를 구하는 건 아들의 몫이다. 기존의 공식, 아버지가 자녀를 구하는 공식을 뒤집는 역발상이 <런닝맨> 속에 드러난다.

 

 

또 하나,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역시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건 아버지 스스로가 아니다. 딸이다. 사채 빚을 진 아버지 서경욱(강신일 분)가 조폭에게 물리적인 위협을 당하자 아버지의 사채 빚과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서경욱의 딸 서미도(신세경 분)는 아버지를 위협하는 대부업계 2인자 한태상(송승헌 분)에게 스스로 ‘심청’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의 제물을 자처한 것처럼, 서미도는 한태상에게 “나의 인생은 오늘부로 끝났다. 나를 사면 어때?”라는 제안을 한다. 아버지의 부채를 갚기 위해 딸이 자발적으로 스폰 제의를 한다. 결과로만 보면 딸 서미도의 제안은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던 한태상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지만, 동기로만 보면 아버지의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딸의 극약 처방으로 바라볼 수 있다.

 

<괴물>처럼 아버지가 자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아들이나 딸이 구하는 영화와 드라마 속 현상은 최근 경제 위기로 어깨가 축 늘어진 요즘 아버지의 위기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아버지의 가부장제가 탈색한 자리에는, 거꾸로 자녀가 아버지를 구하는 현상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