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3. 4. 15. 14:11

정방폭포에 숨겨진 서글픈 사연을 소싯적에 진작 알았다면 필자는 정방폭포 앞에서 대학 재학 당시 기념사진을 함부로 찍지는 못했을 테다. 신혼부부 혹은 연인이 제주도를 방문한 기념으로 무심코 셔터를 눌러대는 그 정방폭포가 실은 억울하게 사살당한 제주도민의 무고한 피로 얼룩진 역사의 처참한 얼룩이라는 걸 미리만 알았어도 말이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는 제주 4.3 봉기로 말마임아 육지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역사지만 제주도민에게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상흔인 제주 민간인 학살에 관한 영상 제의다. 살육당한 제주 민초의 아픔을 필름의 힘을 빌려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 제의 말이다.

 

정방폭포는 큰넓궤 동굴에 숨어들었다가 발각되어 총살형이 이뤄진 사형 집행 장소다. 필자와 같이 제주 역사에 무지했던 육지인은 정방폭포를 제주 방문을 기념한 관광지이겠지만, 제주 현지민에게는 끔찍한 살육이 벌어진 사형 집행 장소라는 이중성의 의미를 지니는 장소가 정방폭포다.

 

할리우드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혁혁하게 그리고자 이순신 장군의 명랑해전을 재현한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인이 바라보는, 한국인의 정서로 투영되는 이순신의 일대기가 오롯이 전개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발상이다. 오페라 <나비부인>처럼 오리엔탈리즘, 혹은 서구인의 시각으로 투영된 이순신 장군이 할리우드에 의해 구현될 테니 말이다.

 

만일 <지슬>을 제주민이 아닌 육지인이 묘사했다면 할리우드가 묘사하는 이순신의 모습과 그리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제주도민에겐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진 아픔을 육지인이 온전하게 묘사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에서 외국어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막이 삽입된다는 의미는 제주의 정서를 육지인의 시각으로 치환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자 동시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특수성, 제주라는 특수성을 탈색하지 않겠다는 제주민의 의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지슬>은 이분법적 구조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감자를 의미하는 제주 방언 지슬은 생명을 연장하게 만들어주는 양식임에 분명하다. 하나 영화 속 지슬은 생명을 연장하는 양식이 아니라 죽음의 매개자라는 이중적인 의미로도 작용한다. 동굴에 숨은 양민에게 마을 아낙이 싸갖고 온 지슬은 분명 마을 사람들에게 양식이 되는, 생명을 연장해 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 지슬이 동굴 밖으로 나가서는 죽음과 맞닿는다. 군인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한 마을 아낙 순덕에게 지슬을 갖다 주다가 박 상병은 총을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할머니는 혹시 마을로 내려올 아들 내외를 위해 지슬을 부여잡가 눈을 감는다. 지슬이 동굴 밖을 빠져나가면 생을 이어주는 양식이 되는 게 아니라 죽음의 매개자로 탈바꿈한다.

 

지슬의 이중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인간 군상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이중적으로 묘사한다. 큰넓궤 동굴에 숨어들어든 제주 양민은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자 노력한다. 보이지 않는 마을 아낙 순덕을 걱정하고, 다리가 불편해 동굴로 피신하지 못한 늙은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사람이 죽네 사네 하는 마당에도 굶어죽을 위기에 빠진 키우던 돼지를 걱정하고, 총에 맞은 군인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의 숨통을 끓으려 하기보단 착한 군인으로 생각하고 군인의 상처가 빨리 낫기를 바란다. 죽음이 언제 이들을 집어삼킬지 모르는 와중에도 적인 군인에게조차 따뜻한 인간성을 견지하는 이들이 동굴에 숨어든 양민들이다.

 

반면 마을을 점령한 군인을 묘사함에 있어서는 이들을 모두 인간성을 상실한 악의 축으로 묘사하는 환원주의는 경계한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 도살자 군인이 있는가 하면, 여자 양민을 욕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흉폭한 군인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는 인간성을 지키고자 하는 양심적인 군인이 양립한다. 설사 빨갱이를 못 잡는다고, 인간 백정 상사에게 혹한에 벌거벗고 기합을 받은들 말이다.

 

양민을 학살한 과도로 아무렇지 않게 과일을 먹는 군인의 악마성은, 할머니를 칼로 찌르고 출혈과다로 죽어가게 만드는 인간성의 상실은 제주 설화인 설문대할망설화를 빌려 속죄를 거행한다. 잠시 설문대할망설화를 살펴보자. 설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은 키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할머니다. 거대한 할머니는 500명의 아들을 먹일 죽을 끓이려다 그만 솥에 빠져 삶아 죽고 만다.

 

<지슬>은 설문대할망의 최후를 설화에서 차용한다. 양민 살해에 목숨을 건 살인마 군인을 솥에 삶아죽게 만든다는 건 오멸 감독이 4.3 항쟁에서 스러진 넋을 위로하는 가상의 응징이자 동시에 진혼제의 의미를 갖게끔 만든다. 육지의 신화가 아닌 제주의 신화를 통해 동해보복의 원칙으로 갚아줌과 동시에 스러진 이들의 억울함을 상징적인 보복으로 진혼하는 의미를 갖는다. 가해자를 가상으로나마 보복함으로 말미암아 억울한 이의 넋을 달래는 진혼 제의의 의미를 갖는 영화가 <지슬>이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