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Review

劍聖 2013. 4. 15. 14:22

이 드라마의 설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당장 직장에서 써먹었다간 고약한 상사 길들이기는커녕 당장 보따리 싸고 직장에서 나와야 하거나 아니면 직장 상사에게 미운 털 톡톡히 박히는 신세가 될 게 분명하다.

 

 

<직장의 신>에 등장하는 미스김(김혜수 분)은 분명 계약직이다. 그런데 당당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똑같이 계약직으로 입사한 정주리(정유미 분)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정주리는 자기 자신이 ‘을’인 걸 아는 계약직 사원이다. 불합리할 정도로 많은 업무를 맡아도 불평 한 마디 못하고 집까지 업무를 들고 와서는 새벽 다섯 시까지 처리한다.

 

반면 미스김은 계약직이라는 을의 위치를 역전한다.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형 계약직이다. 타이핑 속도는 눈썹이 휘날리게 처리하며, 자재 관리도 어지럽게 놓여진 건 허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기 권리는 똑 소리 나게 챙긴다. 옆의 여직원 정주리가 일이 산더미라도 6시엔 자리에서 일어나 칼퇴근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 사무실이 정주리가 잃어버린 usb를 찾기 위해 아수라장이 되어도 미스김은 usb 회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만 처리한다. 직장 동료와의 의리는 미스김에겐 우선순위가 아니다.

 

미스김보다 상사인 장규직(오지호 분)과 무정한(이희준 분)이 미스김에게 업무 처리를 시키더라도 눈치 보며 시키거나 자신이 내린 업무를 거절당하는 사태까지 겪어야 한다. 심지어는 정주리가 잃어버린 usb를 찾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헤집다가도 점심시간에 근무하는 건 계약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가 수당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회사라는 먹이사슬로 볼 때 미스김이라는 계약직이 정규직 직원을 길들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을이 갑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도리어 갑이 을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직장의 신>은 판타지다. 현실 세계 가운데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을’인 계약직이 ‘갑’인 직장 상사를 길들이는 판타지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현실 속 갑과 을의 직장 피라미드를 무시하고 갑이 을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설정으로 출발한다. 이는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스김이라는 슈퍼 을이 펼치는 직장 판타지다. 현실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갑과 을의 위치를, 드라마 속 미스김이라는 슈퍼 을을 통해 지위가 역전되는 판타지로 말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현실에서 쌓인 울분, 혹은 현실에서 만족할 수 없는 대리만족을 미스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충족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계약직이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던가?

 

자기의 권리를 주창하는 목소리를 냈다간, 혹은 상사의 부당한 근무 조건에 항의했다가는 정규직 계약은커녕 보따리 싸야할 것이 분명한 비정규직의 불합리를 미스김이라는 판타지적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직장의 신>은 현실을 투영하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불합리를 대리만족하게끔 만드는 판타지 드라마다. 깁과 을의 역전 구조를 통해서 말이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