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Review

劍聖 2013. 4. 19. 17:51

공연이 시작한 후 30분 만에 알게 되는 사건을 스포일러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까, 아님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을까. 이 작품이 초연작이 아니기에, 이야기 구조를 뮤지컬 관객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가정하면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넥스트 투 노멀>은 정상이 아닌 주부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다. 여기서 정상이 아니라 함은 약을 마치 시리얼 먹듯 자연스럽게 먹어야 안정을 찾는다는 걸 의미한다. 다이애나의 눈에는 남편과 딸에게는 도통 보이지 않는 아들이 주위에 아른거린다. 마치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엘리자벳 주위를 아른거리는 토트(죽음)처럼 <넥스트 투 노멀>에서는 아들이 어머니의 주위에 어른거린다.

 

하나 다이애나 주위에 서성이는 아들이 실은 살아 있는 아들이 아니라 18년 전에 이미 죽은 아들이라는 사실이 공연 시작 30분 만에 밝혀진다. 엄마는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고 아들의 환영과 어울리기에 정신질환 약을 달고 산다.

 

어린 시절에 죽은 아들이 눈에 어른거린다는 차원에만 머무른다면 다이애나와 딸의 고통이 가중될 턱 까닭은 없다. 하지만 남은 가족이 고통 받는 이유는 다이애나가 죽은 아들은 죽은 사람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딸의 남자친구가 집을 방문할 때 다이애나는 촛불 켠 케이크를 들고 등장한다. 누구의 생일인지 남편과 딸, 그의 남자친구가 의아할 때 다이애나는 천연스럽게 아들 게이브를 위한 케이크라고 말한다. 가족들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죽은 아들을 한시도 잊지 못하고 살아있는 사람 취급하는 다이애나의 태도 때문에 말이다.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는 다이애나 때문에 남은 가족들은 차츰 지쳐간다. 살아있는 딸은 죽은 오빠보다 관심 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남편은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내의 병수발을 뒤치다꺼리하다 지쳐만 간다. 댄과 다이애나 가정 안에서 고슴도치 딜레마가 일어난다.

 

추운 겨울에 고슴도치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날카로운 가시가 서로의 몸을 찌른다. 고슴도치는 날카로운 가시 탓에 상처를 받고 떨어지지만 추운 날씨 탓에 다시금 다가오고, 그러면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일이 반복한다.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는 아내와 엄마로 말미암아 가족이 한데 모이면 남편과 딸은 상처 받는다.

 

그렇다면 댄과 다이애나 가족은 죽은 아들의 존재를 잊어야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뮤지컬을 찾는 관객을 향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복기해보도록 하자. 이서영(이보영 분)은 가족에게 가난이라는 연좌제를 물려 준 무능한 아버지 이삼재(천호진 분)를 시댁에는 죽었다고 거짓말함으로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아버지를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고 해서 서영이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한 건 아니다. 서영이의 거짓말은 남편과 시댁에게 들통이 나고, 3년 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갈등은 서영이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사실로 급기야는 폭발하고야 만다.

 

<넥스트 투 노멀>은 오래 전 죽은 아들이 산 사람, 살아있는 가족을 갉아먹는 문제를 다루는 뮤지컬이다. 가족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가해자는 없지만 오래 전에 가족 곁을 떠나간 아들이 수학으로 비유하면 내림차순으로 다이애나로부터 비롯되어 그의 남편과 딸로 전이된다. 아들이라는 환각이 다이애나로부터 촉발되기 시작하면 그 환각이 부여하는 상처는 다이애나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남편과 딸로 내림차순과도 같이 내려온다.

 

그렇다고 <내 딸 서영이>에서 이서영이 아버지 이삼재의 존재 자체를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아들의 존재 자체를 없는 존재로 만든다면 댄과 다이애나 가정의 트라우마를 없앨 수 있을까? 이 문제는 2막에서 제시된다.

 

서영이가 실재하는 아버지를 없는 아버지로 만든다고 해서 아버지의 존재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듯, 뮤지컬에서는 다이애나가 아들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는 레테의 강을 건너는 것만이 댄과 다이애나 가정에 있어 최선의 해결책인가를 뮤지컬의 2막은 관객에게 묻는다.

 

삶을 영위한다는 건 판타지라는 대리 만족을 통해서만 충족 가능한 게 아니다. 만일 화려한 쇼잉과 감미로운 노래가 뮤지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이 뮤지컬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 힘들다. 뮤지컬이 선사하는 흥겨움과 유희라는 대리만족 대신에 <넥스트 투 노멀>은 생의 아픔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관객에게 속삭이는 뮤지컬이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떤 형식의 아픔이던 간에 살면서 다양하게 얻는 상처를 부둥켜안고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죽은 아들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최선의 답이 아니란 걸 <넥스트 투 노멀>은 제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삶에서 생기는 다양한 상처를 없는 존재로 만들 마법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에야 온전히 상처를 껴안고 인생을 지탱할 수 있음을 되새기게 만들어주는 뮤지컬이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