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Review

劍聖 2013. 5. 3. 10:30

‘처음에는 웃음으로 시작하지만 막판에는 진한 페이소스로 직장인의 애환을 담아냈다’ 이번에 방영된 <무한도전>을 한 마디로 압축한 표현이다. <무한도전> 8주년 특집 편으로 방영된 ‘무한상사’ 편의 시작은 여느 시트콤처럼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무한상사에서 웃음이 탈색하는 지점은 직장인의 저승사자인 사내 정리해고라는 칼바람이 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MBC) 

    

사장실을 방문한 유재석은 사무실 직원 중 한 명을 정리 해고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야 한다. 처음에는 유재석의 농으로만 받아들이던 직원들은 유재석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유재석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채고 자신만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를 유재석과 직원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화기애애하던 사무실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누군가를 정리하지 않으면 내가 정리해고 당해야만 하는 직장의 비애로부터 비롯한다. 누군가가 나가야 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직원들의 월급을 자진 삭감하자는 주장은 박명수를 필두로 하는 직원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누군가가 희생되어 직정을 나갈지언정, 내 월급에는 결코 손댈 수 없다는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사태다. 남의 희생을 막기 위해 나의 적은 희생을 담보로는 삼지 않겠다는 이기주의 말이다.

 

그리고는 뮤지컬 패러디가 시작한다. 가요에 관심 있는 이였다면 장기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었지만 필자처럼 뮤지컬에 관심 많은 팬이라면 홍광호의 얼굴을 반갑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뮤지컬 <그날들>이 관객에게 호평 받는 것처럼 김광석 열풍이 불고 있다. 이번에 출연한 홍광호 역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열창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한도전>의 뮤지컬 패러디는 <레미제라블>의 넘버 ‘원 데이 모어’(One Day More)를 패러디한 무도 멤버들과 앙상블 50명의 합창에서 정점을 찍는다.

    

 

(MBC) 

 

“나도 승진 좀 해보자”, 혹은 “일자리 없어지면 애 엄마 얼굴 어떻게 보나”, “대출이 산더미인데”를 노래하는 무도 멤버들의 합창은 단지 예능이 시청자로 하여금 현실의 아픔을 잊기 위해 웃음이라는 마취제를 제공하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노래였다. 반대로 현실 속 직장의 애환을 뮤지컬 넘버로 승화하는 현실 각성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누군가를 정리해야 하는 유재석의 심정 역시 심히 불편했다. “내일이면 결정의 날, 내가 그만 둘까”라는 유재석의 하소연 섞인 넘버는 누군가에게 해고 통지를 내려야만 하는 상사의 심적 괴로움을 뼈아프게 토로하는 노래였다. 해고 대상자를 골라야 하는 비애를 담은 유재석의 노래는, 아무리 부장이라 하더라도 그 역시 양심의 고통으로 자책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인간임을 보여주는 괴로움을 토로한다.

 

현실의 아픔을 톡 쏘는 화룡점정은 <레미제라블> 뮤지컬 넘버의 패러디, 혹은 이스터 에그처럼 뮤지컬 배우 홍광호의 카메오 찾기가 다가 아니었다. 소가 도살장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껏 여물을 먹이는 소 주인의 심정처럼, 유재석은 점심시간에 다른 직원들 말고 정준하만 따로 불러내어 초밥집에 데리고 간다. 유재석의 속사정을 모르는 정준하는 자신이 곧 도살장에 들어갈 것을 예상하지 못한 소마냥 초밥으로 하염없이 배를 채운다. 자신의 한 시간 뒤를 모르는 웃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정준하를 정리 해고하는 무한상사의 비정함은 예능 안에 현실의 비정함을 끌어들였다. 기존의 무도 컨셉이던 무한긍정의 웃음 제공과는 반대로 현실의 비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마 직장인이라면 정리해고 당하고 종이상자에 개인 비품을 가지고 퇴사하는 정준하의 무거운 어깨에 공감 백배하고 감정이입 했을 것이 틀림없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80년대에나 통하던 개념이지 신자유주의 아래 들어서서는, 아니 그 이전부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이번 <무한도전>은 신자유주의 이후 들어선 정리해고 문제를 처음에는 웃음으로, 나중에는 페이소스 넘치는 비장미로 소화한다.

    

 

 (KBS) 

그런데 <무도>는 요즘 월화 드라마의 강자 <직장의 신>과 궤를 같이 한다. <직장의 신>은 정규직으로 대변하는 캐릭터 장규직(오지호 분)과 비정규직의 대표 주자 미스김(김혜수 분)의 코믹한 대립으로 매 회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직장의 신>이 이번 8주년 특집 무한상사 편과 겹치는 부분은 ‘소모품’이라는 관점이다. <직장의 신>에서 미스김을 비롯한 비정규직이라는 회사 내 약자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아니 계약 연장에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다. 하지만 정규직이라고 만족할 수는 없다. 무한상사 속 정준하처럼 언제 사증을 반납해야 하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은 성골과 진골이라는 계급을 넘어서 회사라는 시스템이 필요로 할 때에만 이용되는 소모품이 된다. 계약 연장 걱정 없는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회사에 무능한 인간으로 판명나면 정준하처럼 십 년 넘게 회사에 충성했어도 단칼에 잘리는 소모품 말이다.

 

<직장의 신>의 마지막 즈음해서 나오는 정유미의 대사 중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멘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회사라는 시스템의 소모품임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소중한 존재인 줄 알지만 알고 보면 하찮은 전구에 불과하다”는 아픈 멘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시스템을 위해 일할 가치가 있을 때에야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지, 시스템을 위해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을 때에는 언제든지 팽 당할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뼈 아픈 진리를 정유미는 자기 독백으로 읊조리고 있다.

 

빵빵 터지는 <직장의 신>과,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날려주는 디톡스 예능 <무한도전>, 대한민국 예능과 드라마 가운데서 이렇게 웃픈 시추에이션은 일찍이 없었다. 단지 웃기는 것이 다가 아니라 웃음 가운데서 우리가 잊고 있던 아픈 곳을 환기시켜 주는 웃픈 예능과 드라마 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경제적 계급을 떠나 우리 모두는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결국에는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걸 <직장의 신>과 <무한도전> 8주년 특집 무한상사 편은 웃프게 보여주고 있었다.

 

(오마이스타)

정말...무한도전이나 직장의 신에서 비춰지는 현실이 마음에 와닿네요 ㅠㅠ 잘보고갑니다~
씨발새꺄
씨발새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