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Review

劍聖 2013. 5. 13. 12:13

이번에 방영한 <무한도전> ‘TV 특강’ 편은 시의성과 맞물려 시청자를 역사적으로 계도한 예능으로 분석 가능하다. 이웃나라 총리는 침략의 정의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궤변으로 일관함으로 잘못된 나치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독일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요즘,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끔 만든 역사라는 정체성을 시청자에게 다시금 환기시킨 예능이 아닐 수 없다.

 

   

<무한도전> ‘TV 특강’ 초반부에 아이돌을 모아놓고 벌인 ‘거꾸로 골든벨’에서 제출된 문제들은 어른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난이도의 문제들이었다. 이는 그만큼 우리들이 우리 역사에 무심해 왔다는 반증이자 동시에 한국사를 왜 공부해야만 하는가 하는 당위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위기의식을 끌어오기 위한 도입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돌은 물론이고 무도 멤버들조차 한국사에 문외한이었으니, 아이돌에게 강의하기 전에 이들이 한국사에 정통한 명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도 멤버들의 한국사에 관한 지적 소양이 먼저 필요했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사를 공부함에 있어 강사와 교재를 통해 통달한 한국 역사라는 지식을 앵무새처럼 아이돌에게 쏟아내지만은 않았다.

 

이날 방영된 한국사 강의는 유재석과 길, 하하 세 멤버의 방영분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한국사를 강의함에 있어 단순한 지식의 나열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역사 공부를 어떻게 했는가를 복기할 때 열 중 여덟 아홉은 지루하게 회고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 안에 숨겨진 의미를 배우기보다는 단순히 태정태세문단세...처럼 시험에 나올 단편적인 지식들만 꿰어맞추었기 때문이다.

 

무도의 멤버들은 학창 시절의 지루한, 혹은 천편일률적인 강의를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건 바로 아이돌의 눈높이와 시청자의 눈높이를 기울인다는 점이다. 브루너의 교육학 이론 중에는 학습자의 수준에 맞춰 가르침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어떠한 내용이든지 가르칠 수 있다는 ‘나선형 교육과정’ 이론이 있다.

 

무도 멤버들은 브루너의 ‘나선형 교육과정’에 충실했다. 가르침을 받는 아이돌과 대다수의 시청자가 동의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수준으로 한국 역사 속 인물들의 역사를 강의한다.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 역사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어려운 한자가 섞이기 쉽다. ‘TV 특강’은 어려운 개념 및 한자어는 최대한 배제하고 학습자가 이해하기 쉬운 개념으로 강의를 풀어갔다. 쉽게 역사를 풀이한다 해서 그 강의의 깊이가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한궁의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당위성을 쉬운 강의 안에 녹이고 있었다.

 

또 하나 칭찬할 점은 학습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도하기 위한 ‘질문’을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무도 멤버들이 아이돌에게 ‘떠먹여주는’ 주입식 강의가 아니라, 아이돌이 ‘왜’라는 궁금증을 가질 수 있도록 강의한 점 역시 학습자 친화형으로 강의하기 위해 무도 멤버들이 애썼다고 평가 가능하다.

 

가령 중국의 왕이 신라 선덕여왕에게 보낸 그림 모란도를 보고 선덕여왕이 왜 화를 내었는가를 아이돌에게 묻는다는 건, 모란도 안에 숨겨진 중국 왕의 의미를 아이돌에게 먼저 가르쳐주기 이전에 호기심을 유발하게 만들어주는, 학습을 유도하기 위한 적절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원나라의 잔재가 무언가를 질문한 것 역시 학습자의 호기심을 부풀리는 효율적인 학습 방법이다.

 

무도 멤버들처럼 학습자의 호기심을 충족할 만한 명쾌한 강의 및 학습자의 호기심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질문이 우리네 국사 시간에 있었다면 역사가 따분한 과목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칭찬할 점은 강의 안에 녹아있는 ‘파토스’였다. 광개토대왕과 공민왕이 왜 뛰어난 왕일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위대한 왕의 일대기 공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역사의 수치인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고자 애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를 언급할 때 아이돌과 시청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건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아들이 사형 당하기 전 옥중의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었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열 달 동안 배 아파가며 낳은 아들이 일제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될 때 한 아들을 잃는 어머니로서의 아픔보다, 민족과 대의를 위해 죽음을 앞둔 아들이 효도하는 아들이라고 천명하는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앞에서 마음 한 편이 먹먹하지 않은 시청자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이토록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 수 잇다니. 단순히 조국 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사살한 의사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서실 위에 파토스라는 감동의 층위를 한 차례 덧입힌 감동적인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무한도전>의 가슴 먹먹한 파토스적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 주 간격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무한상사’ 편 역시 회사를 떠나는 정준하의 모습을 통해 회사의 부속품일 수밖에 없는 회사원의 쓸쓸한 자화상을 먹먹한 파토스로 연출하지 않았던가. 예능이 이렇게 가슴 먹먹할 수도 있음을 <무한도전>은 한주 간격으로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니, 어쩌면 예능에서조차 파토스가 필요한 만큼 우리 현실이 각박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마이스타 / 사진: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