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Review

劍聖 2013. 5. 20. 18:44

SBS 예능에는 다른 채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 가지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건 바로 ‘힐링’이다. <땡큐> 및 <힐링캠프>는 ‘히링’을 모토로 만들어진 예능과 치유가 결합도니 하이브리드 예능이다. 그중 <땡큐>는 힐링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가장 충실한 예능으로, 김세진과 데니스 홍의 잔잔한 울림은, 예능이 이렇게도 힐링에 가까울 수 있는가를 시청자에게 잔잔한 어조로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아픔을 참는 법을 먼저 알아야

장애인 수영선수 ‘로봇다리’ 김세진 군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겪은 선천적 장애우다. 장애우에 대한 시선이 예전보다는 순화되었다 하더라도 장애에 대한 편견을 완전하게 버리지 못한지라, 김세진의 어머니는 어릴 적 김세진을 키울 때 ‘욕 훈련’도 받았다는 가슴 아픈 고백을 담담하게 토로한다.

 

어릴 적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예뻐’와 ‘병신’이라는 말을 함께 들으며 자랐다는 세진의 고백은,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이 담긴 장애우에 대한 독설을 심적으로 견뎌야만 하는 마음 단련법이 아닐 수 없다.

 

세진 군의 고백은 힐링에 대한 다른 차원을 생각하게끔 만들어준 계기다. 이어령 박사는 ‘삶은 아픔’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살아가면서 참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하는데, 요즘의 힐링은 참는 법을 먼저 가르쳐주기보다는 아픈 걸 덜어내려는 데 급급한 차원의 힐링이라는 지적이다.

 

병균이 침입하면 백혈구와 같은 면역 세력을 키울 생각을 해야 하는데 면역 체계를 키우기도 전에 병원균을 격리하는 조치만 갖는다면 그 몸은 면역력을 키울 힘이 자연스레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세진이가 어려서부터 독설에 익숙해야만 했다는 건 그의 신체적 결함으로 말미암은 세인의 편견 어린 독설을 이기게 만들어주기 위한 ‘독설에 대한 면역’이었다.

 

김세진이 어려서부터 받은 독설의 면역은 그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쁜 말에 상처받는 것을 치유받는 힐링 이전에 독설을 독설로 받아들이지 않는 김세진의 독설 단련은, 아픈 것만 덜어내려 하는 요즘의 힐링 세태에 새로운 일깨움을 전달해주기에 충분한 고백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그리고 용서

또 하나의 잔잔한 울림은 데니스 홍의 고백이었다. 데니스 홍은 김세진의 로봇 다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온 세계적인 로봇 공학자다. 한없이 밝게만 보인 데니스 홍은 극 후반부 들어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한다. 조승희가 저지른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다.

 

당시 데니스 홍이 강의를 맡은 날이 아니라 총격 사건에 휘말리지 않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구사일생의 증언보다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던 건 동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비애와 총격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인 조승희에게도 추모비가 건립되었다는 고백이었다.

 

데니스 홍을 충격에 빠뜨린 건 그가 강의하던 강의실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난 게 다가 아니었다. 경찰 조사를 위해 사건 현장의 사진을 보아야만 했는데 그가 평소에 알고 있던 학생들이 잠든 듯 평화로이 누워 있는 사진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교수의 주위에서 강의를 듣고 사담을 나누던 학생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데니스 홍의 증언은, 우리가 살면서 차마 생각하기도 싫은 죽음이라는 현실이 그 어느 누구에게도 불시에 찾아올 수 있음을 각성하게 만들어준 고백이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가 떠오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한데 데니스 홍의 고백은 메멘토 모리가 다가 아니었다.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32명인데 추모비의 개수는 33개란다. 숫자에 착오가 있나 해서 헤아려보았더니 마지막에 총격 사건의 당사자 조승희를 추모하는 추모비까지 건립되었기 때문에 33개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친한 동료와 제자의 목숨을 앗아간 가해자까지 추모비를 건립하다니!

 

하지만 가해자 조승희 역시 버지니아의 학생이었고 희생자였기에 너 역시 용서한다는 편지 내용은 <땡큐> 멤버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음과 동시에 용서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동료와 제자를 앗아간 원수까지 용서할 수 있는 용서의 정신은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동료와 제자를 분노가 조승희 앞에 놓인 편지 한 통으로 어떻게 누그러질 수 있었는가 하는 데니스 홍의 답변은 끝내 들을 수 없었지만 시청자에게 먹먹한 울림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니 힘든 죽음에 대한 환기와 용서를 소환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반면 옥에 티도 있었다. 전현무가 힐링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무슨 역할을 하엿는가에 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오마이스타/ 사진: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