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Review

劍聖 2013. 6. 2. 14:58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뮤지컬계는 2-3개월의 간격을 두고 종교적인 색차가 담긴 작품들이 연이어 무대에 올라왔다. 작년 9월에는 <쌍화별곡>, 12월에는 <마리아 마리아>, 올 2월에는 <요셉 어메이징>, 4월에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수퍼스타>)가 포문을 열었다.     

 

 

크리스마스가 낀 연말에는 기독교적 색채가 담긴 <마리아 마리아> 같은 기독교적 작품이, 초파일에 근접해서는 <원효> 혹은 <쌍화별곡> 같은 불교적 작품이 나오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다. 하지만 최근 8개월 들어 석 달이 멀다 하고 불교 및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종교적인 작품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건 이전에는 좀처럼 찾기 힘든 이채로운 현상이다.

 

하지만 종교적 색채를 갖는 뮤지컬은 비종교인이 발걸음을 외면하기 쉽다. 또 하나, <수퍼스타>는 ‘신성모독’이라는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정통적인 관점으로 조망하면 유다는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아먹은, 스승을 뒤통수친 배신자의 표상으로 해석된다. 1970년대 초연 당시 기독교 단체가 이 공연을 신성을 모독하는 공연으로 보고 집단으로 시위를 벌일 정도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작품이다.

 

<수퍼스타>는 유다를 묘사함에 있어서 신의 계획을 완성하는 조력자로 묘사한다. 몇몇 가사를 살펴보면 “나의 배신이 없이는 당신(예수)의 각본은 끝난다” 혹은 “나는 당신의 희생양”이라는 유다의 노랫말은, 유다가 배신하고 싶어 배신을 한 게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 배신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모든 것은 정해진 하늘의 계시일 뿐, (유다) 넌 바꿀 수 없어”라는 예수의 대사 역시 신의 각본대로 움직이는 유다를 묘사한다. 이는 결정론적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유다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예수를 판 것이 아니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한 신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다.     

 

 

그렇다면 유다의 운명은 애초부터 예수를 팔아먹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을 위해 신에게 사용되는 도구가 유다라는 이야기다. 이를 뒷받침하는 가사는 “잫 했다 유다, 불쌍한 유다”다. 예수를 팔아먹은 배신자를 잘 했다고 칭송한다는 건 전통적인 해석과는 정반대의 연출임에 틀림없다.

 

보수적인 가치관의 관람객이 본다면 배신자를 신의 조력자로 그리는 이 뮤지컬이 마뜩찮게 느낄 수도 있다. 목 매달고 자살한 유다가 다시 나타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조롱하는 장면 역시 불편하게 느낄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해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열린 관객이라면 유다를 바라봄에 있어 기존의 관점인 배신자라는 아이콘 외에 다른 캐릭터로 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뮤지컬이 <수퍼스타>다. 유다를 해석하는 기존의 관점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저항의 정신’은 연출에만 있는 건 아니다. 뮤지컬이 극을 풀어가는 음악의 정신 역시 연출에 나타나는 저항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수퍼스타>의 별명은 ‘록 오페라’다. 송스루 형식으로 대사 없이 넘버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되 음악의 많은 부분이 록에 빚진다. 록은 순응하는 음악이 아니다. 저항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가치관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저항의 정신이 배어있는 장르가 록이다.

 

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건 <수퍼스타>가 연출만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형식에 있어서도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는 걸 뜻한다. 내면적인 의미의 연출과 외형적인 표현의 방식 모두 순응의 방식이 아니라 저항을 기치로 삼는 표현과 연출의 이중주가 이뤄지는 뮤지컬로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수퍼스타>는 연출하기에 따라 파격적인 시도가 이루어지는 공연으로도 유명하다. 하나의 발레가 안무가의 해석에 따라 희극이 되기도 하지만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 것처럼 <수퍼스타> 역시 연출이 누구냐에 따라 죽은 예수가 부활하는 장면이 삽입되기도 한다. 이번에 공연하는 <수퍼스타>는 전통적인 연출 방식에 따라 진행하는 오리지널을 따르는 공연으로 파격적인 해석은 자제된 공연이다.

 

<마리아 마리아>도 마찬가지지만 극 중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보다도 비중이 큰 인물로 묘사된다. <수퍼스타>는 뮤지컬 배우가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니다. 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성량의 소모가 보통 내공이 아니고서는 소화하기 힘들어서다. 록으로 뮤지컬을 풀어간다는 건 목이 쉬 상하기 쉽다는 의미와도 같다.

 

때문에 <수퍼스타>를 노래하는 뮤지컬 배우는 자기의 성량을 100% 발휘하지 않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100% 성량으로 노래했다가는 자칫하면 목이 쉬어 다음 공연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높은 공연이다. 하지만 예수를 연기하는 마이클 리는 예외였다. 목을 아끼지 않고 록을 소화할 뿐만 아니라 가창력은 관객에게 전율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헤드윅>도 그렇지만 록을 좋아하는 뮤지컬 관객에겐 교과서와 같은 공연이다. 하지만 국영문 혼용체, 2막 들어 한글과 영문이 마구 섞인 사람 이름을 노래 안에 마구 나열한 연출은 이 공연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12 제자의 이름을 아는 관객이 아니라면 알아듣기 힘들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