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3. 6. 12. 00:09

슈퍼히어로물이 대세인 시대,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에 이어 슈퍼맨도 리부팅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리부팅된 이번 작품, 자신을 배척하는 존재를 어디까지 용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슈퍼맨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을 관객에게 묻고 있었다.     

 

 

크립톤 행성으로부터 날아온 외계인 클락(헨리 카빌 분)은 어려서부터 가공할 능력과 힘을 타고났지만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년배 지구인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상급생이나 건달쯤은 손가락 하나로 날려버릴 만한 가공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클락은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꾹꾹 눌러 담기만 한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과 호형호제로 지내던 클락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고향별인 크립톤 행성에서 날아온 조드(마이클 섀넌 분)와 손을 잡고 지구인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클락은 이를 복수의 기회로 삼지 않고 도리어 고향별 사람인 조드와 대립각을 이룬다. 클락을 배척하고 총부리를 겨누기를 주저하지 않는 지구인의 편이 되고 도리어 고향별 사람과 주먹을 맞교환해야만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클락의 이런 상황을 스페인의 피사로, 혹은 영화 <늑대와 춤을>로 비교하면 어떨까. 잉카 제국에게 있어 스페인에서 온 피사로는 침략자나 다름없다. 그런데 잉카 제국에는 태어나자마자 잉카인의 손에서 자라난 스페인 출신의 젊은이가 있다고 치자. 만일 그 청년이 피사로의 편에 들지 않고 침략자인 피사로를 막기 위해 잉카의 편을 든다면 그 스페인 청년은 크립톤 행성의 클락이 되는 셈 아니던가.

 

조국인 미국을 등지고 인디언 수우 부족과 한솥밥을 먹는 <늑대와 춤을>의 존 던바(케빈 코스트너 분) 역시 클락과 맥락을 같이 하는 캐릭터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뭐한 면이 있다. 무엇인가 하면 <늑대와 춤을>에서 존 던바를 연기하던 케빈 코스트너가 <맨 오브 스틸>에 출연한 것을 이런 맥락에서 관찰하면 <맨 오브 스틸>과 <늑대와 춤을> 두 영화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타자와 정체성을 같이한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고찰하노라면 한국 관객이 사족을 못 쓰는 시리즈물 <트랜스포머> 시리즈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지구인과 힘을 합치는 오토봇은 자신의 고향별을 부활시킬 절호의 기회를 지구인을 위해 날려버리고야 마니 <맨 오브 스틸>의 클락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지구인을 위해 동족과 등을 돌린다는 두 영화의 설정은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맨 오브 스틸>을 공통으로 묶어주고 있다.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의 아킬레스건은, 왜 자신을 그토록 도외시하고 적대시하는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클락이 끝까지 견지하는 반면, 고향별 사람인 조드에게 반기를 드는가에 관한 설득력은 떨어진다는 점이다. 지구인에게는 없는 초능력을 숨기고 억제하는 통제의 능력은 갖고 있되, 왜 자신을 적대시하는 지구인에 관해 온정주의적인 시선을 클락이 왜 끝까지 견지해야만 하는가에 관해서는 영화가 제시하는 설득의 기술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관객을 위한 설득의 기술이 빠진 공간에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장기인 화려한 액션만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미디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