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Review

劍聖 2013. 6. 18. 16:35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달은 달의 전부를 보는 게 아니다. 하룻밤이 지나면 미처 보지 못한 달의 다른 부분까지 볼 것 같지만 오리는 지구에 있는 한 평생 달의 한 쪽 얼굴밖에는 볼 수 없다. 달이 지구를 따라 돌 때 자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의 다른 얼굴을 우주에서 보는 것처럼 11회 방영분은 맨날 한쪽 얼굴만 보여주던 캐릭터들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는 회차였다.    

 

 

파리 하나 잡지 못할 것처럼 소심해보이는 신입 정규직 사원 계경우(조권 분)가 알고 보니 해병대 출신이었다는 건 캐릭터 안에 감춰진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서막에 불과했다. 장규직(오지호 분)이 금빛나(전혜진 분)를 떠나보낸 이유가 사실은 아버지의 자살로 말미암은 집안의 몰락 때문이었다.

 

정주리(정유미 분) 또한 이별의 상처가 있는 캐릭터다. 첫 회에서 남부러울 것 없을 정도로 다정한 키스를 나누다가 지금 정주리 주위에 남자가 없는 이유가 밝혀졌다. 정주리는 라면을 먹다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이유는 다른 여자가 생겨서란다. 세 남녀의 이별이 어떤 사연으로 말미암았는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스김(김혜수 분)의 다리에 있는 흉터는 대한은행 화재사건 당시 미스김을 아껴주던 계장을 화마 가운데서 구하려다 입은 화상 자국이었고, 흉터를 감추기 위해 미스김은 매일 정장 바지를 입어야 했다. 반면 무정한(이희준 분)은 대한은행 비정규직의 시위를 진압해야 하는 전경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서사의 진행에 있어 옥의 티가 없는 건 아니다. 사실 미스김의 종아리를 장규직과 무정한이 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장규직과 무정한이 자주 가는 클럽에서 미스김은 살사댄스를 춘다. 살사댄스는 바지를 입고 추는 춤이 아니다. 바지만 입고 다니는 미스김의 다리가 정말로 궁금했다면 클럽에서 살사댄스를 출 때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같은 플롯의 구멍보다 캐릭터의 사연이다. 미스김과 다른 직원에게 한없이 천사 같이 구는 착한남자 무정한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위진압을 해야만 하는 ‘가해자’의 자리에 서야 하는 반면, ‘을’의 지위에 있던 미스김은 화재 현장에서 존경하던 직장 상사를 잃고 화마의 상처를 입는다. 그 엣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지금은 직장 상사와 비정규직이라는 갑과 을의 위치에서 다시금 만나는 지점을 시청자는 목도할 수 있었다.

 

특이한 건, 항상 미스김에게 호의를 보여온 무정한이 미스김의 화상을 보고는 미스김의 과거를 캐는 셜록 홈즈로 분한다는 점이다. 미스김의 맨 다리를 보기 위해 엿볼 궁리를 하던 장규직을 내쫓는가 하면 미스김이 자주 가는 클럽에서 미스김의 과거를 캐묻고는 스마트폰으로 대한은행 화재 사건을 검색한다. 미스김의 과거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캐릭터가 무정한이라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다.

 

과거의 사연을 드라마가 폭로함으로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의 연민은 강화되었다. 비정규직에겐 냉혈한 같아 보이는 장규직의 아버지가 자살해서 생계를 긍긍해야만 했다는 아픈 사연은 장규직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나쁜 남자에게 버림받은 정주리의 사연 역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키스를 할 때엔 자신이 크리스마스 트리 마냥 세상의 주인공인 듯했던 정주리가 이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빛내주기 위한 전구 하나 뿐이었다는 자신의 초라한 정체성이 실은 남자로부터 실연당한 아픈 과거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여기에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건 무정한이 미스김의 과거를 알아챌 때 과거 전경 출신이라는 자신의 옛 정체성과 어떤 파열음을 낼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다. 본의는 아니지만 명령에 따라 시위를 진압했어야 하던 무정한의 과거가 미스김의 비루했던 비정규직의 과거와 만날 때, 특히 미스김이 무정한의 과거를 만에 하나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가 주목된다.

 

몇몇 캐릭터의 과거는 시청자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반면에, 무정한과 미스김 두 사람의 과거가 서로에게 밝혀지는 날에는 어떤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킬지가 관심사가 되는 방영분이었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