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劍聖 2013. 7. 5. 13:22

말은 인격이자 동시에 지적인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인터뷰를 함에 있어서도 배우가 어떤 어휘를 어느 정도 밀도 있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인터뷰가 맛깔나게 살아나기도 하고 반대로 무미건조한 인터뷰가 되기도 한다. 남경주의 경우는 전자에 속한다. 작년 <라카지>를 인터뷰할 때도 느낀 바지만 잘 정돈된 언어 구사 및 풍부한 표현력이란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다다르지 못하는 경지다.

 

     

남경주는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배우였다. 인터뷰를 하기 바로 직전에도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을 읽으며 왔을 정도로 다독가였다. 지성이 연기와 접목하는 뮤지컬 1세대 배우 남경주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났다.

 

- 바로 전작인 <넥스트 투 노멀>을 공연할 때에는 감정의 소모가 많았을 것 같다. 이번에 공연하는 <브로드웨이 42번가>를 공연할 때에는 반대로 전작에서 소진된 감정이나 열정을 채울 것 같다.

 

“정확하게 보았다. <넥스트 투 노멀>을 공연할 때에는, 만일 뮤지컬 속 상황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실제로 닥칠 때 어려운 난관을 받아들이고 견딘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감정이 많이 소모되었던 게 사실이다. 한 작품을 마치고 나면 그 작품의 정서에서 잘 빠져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넥스트 투 노멀>을 연기할 때에는 쉽게 공연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작품 속의 어느 부분이 늘 삶 속에 겹쳐있다고나 할까.

 

당시에는 그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생활 가운데 공연의 감정이 어느 정도 남아있으면 깊이 있는 감정 표현을 하기 쉬울 때가 있다. 마치 마라톤 할 때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처럼, 연기할 때 쉽게 감정을 끄집어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실생활에 무대 위 감정이 남아있던 같다.

 

반대로 <브로드웨이 42번가> 같은 작품을 할 때에는 늘 활력이 넘친다. 작품이 갖는 전체적인 이야기나 마지막에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 덕에 늘 공연이 끝날 때마다 충전 받는 느낌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넥스트 투 노멀>과는 반대로 공연이 끝나면 모든 걸 잊고 개인 생활에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다.”

 

- 지금 연기하는 줄리안 마쉬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고 있나.

 

“미음 속에 누구나 따뜻한 면은 있지만 상황이 줄리안을 받쳐주지 못한다. 대공황인데다가 마음에 맞는 제작자를 찾지도 못한다. 수백 명의 스텝과 배우를 먹여 살려야 하고 자신의 명성도 걸려있으니 주위 사람들을 배려할 입장이 아니다. 만일 다른 사람을 배려했다가 틈이 생기기라고 하면 줄리안과 관련된 수많은 이들에게 책임이 가기에 따뜻한 속정을 배려할 수 없는 인물이다.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 배우의 연기와 개성, 성품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제가 줄리안 마쉬를 연기할 때 따뜻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을 연출가에게 받았다. 실제 성격이 연기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 점을 감안해서 무대에서는 공연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야망으로 가득 찬 인물로 연기하고 있다.”

 

- 대개의 앙상블은 노래와 춤만 연기하면 되지만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앙상블은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탭댄스다. 탭댄스가 나오는 숱한 뮤지컬을 많이 접했겠지만 이번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앙상블이 선사하는 탭댄스는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가장 칭찬해야 할 부분이 탭댄스다. 5월 공연을 위해 작년 12얼부터 탭댄스 연습에 들어갔다. 탭은 춤이 아니라 리듬이다. 탭으로 리듬을 표현하려면 뛰어야 한다. 누군가의 탭댄스가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건 탭에 무게가 실리느냐 안 실리느냐의 문제다. 리듬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강약을 정확하게 짚어야 탭댄스의 묘미가 살아난다.

 

탭댄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연습한 만큼 탭댄스의 리듬이 정확하다. 이번 앙상블의 탭댄스의 실력은 역대 <브로드웨이 42번가> 공연 중 가장 출중하다. 많은 관객도 이번 앙상블의 탭댄스 실력에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탭댄스를 감상하기는 두 번 다시 힘들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다.”    

 

 

- 형님인 남경읍 배우를 더 뮤지컬 어워즈 무대에서 볼 수 있어 반가웠다. 근황이 궁금하다.

 

“얼마 전 명동예술극장의 <라오지앙후 최막심>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연극에 임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며 연극을 사랑하는 형님의 모습, 무대에서 쌓아올린 지구력을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형님과 함께 부른 노래 ‘트라이 투 멤버’는 비록 구닥다리 노래지만 저희에겐 의미가 있는 노래다.

 

1985년에 형님과 처음 주인공을 맡아 공연할 당시의 노래가 뮤지컬 어워즈에서 불렀던 노래다. 방송과 영화에 나오고 있지만(기자 주-최근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및 영화 <런닝맨>에 출연한다) 늘 뮤지컬 무대를 그리워한다.”

 

- 형님처럼 영화에도 욕심나지 않는가.

 

“영화를 고사하는 건 아니지만 내년 하반기까지 무대 스케줄이 꽉 찬 상태다. 그동안 영화 섭외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 언젠가는 좋은 영화 작품을 만나지 않겠는가.”

 

- 작품을 선택하는 철학이 궁금하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은 검증 받은 작품이자 좋은 작품이다. 간혹 좋은 작품이 흥행에 좋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작품성이 좋아도 흥행에 참패하는 경우도 있고, 시대상을 너무 앞서가서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검증 받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공감을 느낄 수 있거나,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머리로 이해되는 작품을 선정하는 편이다.”

 

- 뮤지컬 1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2000년대 들어 뮤지컬 붐이 일기 전에는 척박한 뮤지컬 풍토를 겪어본 배우다. 1980-90년대 당시 뮤지컬이 활성화되기 전의 척박함을 극복할 힘은 무엇이었나.

 

“두 가지 힘이었다. 첫 번째는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에 즐겁게 뮤지컬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붐이 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 선진국의 사례를 분석해보니 경제적 수준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뮤지컬 산업이 발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성이 근면 성실하다보니 한국의 경제력도 나아질 것이라 보고 문화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질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다.

 

당시 뮤지컬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버티게 만든 힘 하나를 더 언급하자면 당시 뮤지컬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길이었기에, 불확실했기에, 낯선 길이었기에 제가 이 길을 계속 걷는다면 뮤지컬의 선구자가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 대학 동창들을 만날 때 뮤지컬에 대해 꿈꾸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뮤지컬계에서 성공해서 스포츠카를 끌고 나타날 것이라고 자랑한 적이 있다. 지금 그 동창들을 만나면 ‘네가 대학생 때 이야기하던 대로 삶이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1980년에는 뮤지컬계가 더욱 척박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작품 활동하느라 엄청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관전 포인트를 설명하면.

 

“<브로드웨이 42번가>처럼 앙상블과 배우가 밀도 있게 관객에게 다가서는 작품은 오랜만이다. 요즘 뮤지컬계 풍토 가운데에는 뮤지컬을 관람함에 있어 팬이 좋아하는 스타가 출연하는 뮤지컬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정말로 스타를 사랑한다면 <브로드웨이 42번가> 같은 공연을 보고 비교해서 어떤 공연이 좋은 공연인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공연이 무엇인가를 느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교를 통해 정말로 사랑하는 스타가 연기를 잘 할 때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쳐 주고,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날카로운 비판도 할 수 있는 팬덤 문화가 형성되면 어떨까 싶다. 탭댄스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앙상블이 5개월 동안 공들여 연습실에서 땀 흘린 순수한 에너지를 많은 분들이 무대에서 경험하길 바란다.”

 

(오마이스타/사진: 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