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劍聖 2013. 7. 5. 14:07

이건명은 <잭더리퍼>라는 한 작품 안에서 두 주역을 맡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한 배우다. 어느 때에는 살인마 잭더리퍼를 연기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비운에 가득 찬 주인공 앤더슨 역을 맡으니 지금은 눈 감고도 두 캐릭터를 연기할 수준의 연기력에 올라와 있다. 한데 이건명에게는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매너리즘이다. 이만 하면 되겠거니 하는 안주를 스스로가 경계하고 있었다. 그만큼 치열하게 연기에 임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지영은 앞서 인터뷰한 김아선 배우와 데칼코마니를 형성하고 있었다. 김아선 배우의 동생이 김우형, 올케가 김선영이었다면, 서지영 배우의 남편은 왕용범 연출가이자 오빠는 영화배우 서태화였다. 오누이가 배우고, 남편은 뮤지컬 연출가이니 연기와 연출로 밥을 먹고 사는 부부였다.

 

이건명과 서지영 두 사람 모두 뮤지컬이 한국에서 열광받기 시작한 2000년대 이전이라는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 뮤지컬을 시작했으니 뮤지컬 1세대는 아니어도 연기 인생 이십 년이 되었거나 다 되어가는 뮤지컬 2세대 배우들이다. <잭더리퍼>를 연기하는 이건명과 서지영 배우를 성신여대에서 만나보았다.

 

- <잭더리퍼>의 원작은 체코 뮤지컬로 알고 있다. 원작을 보았는가? 원작을 보았다면 우리나라 버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지영: “영상으로 체코 뮤지컬을 관람했다. 체코 뮤지컬과는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각색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창작한 작품이라고 과언해도 좋을 정도로 다르다. 등장인물의 이름만 따왔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였다. 만일 원작의 설정을 고스란히 갖고 왔다면 지금과 같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다니엘이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여자에게 수모를 당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고민한다. 한 술 더 떠 파우스트처럼 악마도 등장한다. 이런 원작의 설정이 우리나라 감성에 먹히겠는가. 한국 연출이 체코 원작의 이런 부분을 과감히 자르고 사랑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 우리나라 버전 <잭더리퍼>가 되었다.”

 

이건명: “그럼 (엄)기준이가 고자로 나와?(웃음) 소극장용으로 <잭더리퍼> 외전으로 만들어야지.(웃음)”

 

서지영: “원작 설정을 고스란히 따왔다면 누가 하겠는가. 남자주인공 캐스팅이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 한 작품에서 주인공 다니엘과 살인마 잭 모두를 연기했다. 연기 포인트가 궁금하다.

 

이건명: “잭은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면서도 유쾌한 캐릭터다. 포스터처럼 보랏빛의 색깔을 가진다. 반면 주인공 앤더슨은 잭과는 정반대로 우울하다. 주변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회색빛의 캐릭터다. 잭은 살인을 저지르는 광기와 상인의 희열 가운데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반면 앤더슨은 찌들어있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교차한다. 비슷비슷한 캐릭터였다면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잭과 앤더슨은 연기하기 편하다. 잭과 앤더슨이 전혀 다른 캐릭터라 맡은 역할에 충실하게 연기하기만 하면 된다.”

 

- 사람이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을 동시에 직업으로 가지기가 어렵다. 그런데 두 배우는 잘 하는 일을 좋아하는 직업으로 선택했다.

 

서지영: “뮤지컬을 한 지가 올해로 20여년을 맞이한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즐거운 일은 금방 지나가지 않는가. 뮤지컬 배우 생활이 20년이지만 실제로 느끼는 체감은 20년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그만큼 뮤지컬 배우로 생활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즐거운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잘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명이를 오래도록 보아왔지만 건명이는 익숙해야 할 부분에서 익숙해지려 하지 않는다는 걸 볼 수 있다. 뮤지컬을 오래 했기에 ‘나는 이렇게 연기해도 되겠지’ 하는 익숙함을 건명이는 싫어한다.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려고 많은 애를 쓴다.

 

여배우라면 누구나 젊을 때에는 예쁘고 청순한 역할을 많이 맡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면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젊었을 때만 생각하고 이십 대의 캐스팅에만 연연하면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이 역할은 할 수 있어’ 하는 욕심에 사로잡힌다. 저는 이런 유혹을 잘 넘긴 것 같다.

 

이런 유명한 말이 있다. ‘작은 배우는 있지만 작은 배역은 없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한다. 분량에 상관없이 무대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하고, 행복한 제 모습을 좋아해주시는 관객이 있으니까 뮤지컬 배우를 선택한 것에 대한 행복을 느낀다. 무대에 서는 이십년 동안 단 한 번도 ‘이 일 그만둘 거야’라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건명: “간혹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하는 질문인데, (서)지영 누나나 제가 처음 뮤지컬 배우를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에는 이런 질문과 답을 한다.

 

‘젊은이, 뭐 하는 친구인가’ ‘뮤지컬 배우입니다’라고 답하면 ‘힘들지?’라고 위로를 하던 때다. 당시에는 백이면 백 이런 대답이 돌아오던 때였다. ‘그래도 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라는 말을 할 때 ‘그래도’라는 단서가 붙는 직업이 뮤지컬 배우였다.

 

많은 사람들이 각광하지 않았고, 부모님도 무대 배우가 된다는 걸 반기는 시대가 아니었다. 앞으로 힘들게 살아갈 것이 눈앞에 뻔히 보이니까. 불도저처럼 묵묵하게 이 길을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뮤지컬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뮤지컬 붐 덕에 나이키를 신고 싶으면 나이키를 살 돈이 생기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삶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 왜 이런 수입이 들어오지?’ ‘왜 이건명을 인터뷰하려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행복하면서도 당혹스럽다.”

 

    

- 뮤지컬에 데뷔한 계기가 궁금하다.

 

서지영: “뮤지컬과는 전혀 상관없는 독어독문과를 졸업했고, 당시에는 뮤지컬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남경주 선생님이 뮤지컬 1세대로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뮤지컬 배우가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서 연극 단체를 들어갔다. 전단 돌리고, 포스터 붙이고, 아동극부터 출발한 게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한 일이지만 지금 보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령, 아동극은 배우가 노래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떠든다. 그래서 쉴 새 없이 노래를 할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당시 아동극을 한 게 발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극단에서 활동하면서도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다가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전단 한 장이 인생을 바꿨다. ‘뮤지컬 아카데미 모집’이라는 공고였는데 아뿔싸! 모집 날자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 모집 날자는 지났지만 무작정 전화를 하고는 찾아가서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아카데미에서 만난 이가 뮤지컬 배우 서범석이다.(웃음) 그리고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들 가운데서 현직에서 지금도 활동하는 배우가 저랑 (서)범석이 둘 뿐이다. 아카데미에서 연기와 춤, 노래를 배우면서 뮤지컬에 대한 눈을 뜰 수 있었다.”

 

- 뮤지컬 팬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다. 팬들에게 감사한 순간이 있다면? 혹은 기억나는 팬이 있다면.

 

이건명: “팬들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투란도트> 갈라 뮤지컬 콘서트가 있었다. 그런데 공연을 하루 앞두고는 무대 세트가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터졌다. 당장 내일 공연해야 하는데 답이 보이질 않아서 개인 트위터에 ‘공연을 환불하실 분들은 환불하세요’라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올렸다. 공연 당일 배우들은 아무런 무대 장치가 없는 가운데서 <투란도트>를 연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싸늘할 줄 알았던 관객 반응이 뜨거움으로 다가왔다. 연기한 배우가 눈물을 흘릴 만큼,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릴 만큼 열화와 같은 박수를 쳐주었다. 당시 말도 완 되는 상황의 공연을 말이 되게 만들어주는 힘은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팬 여러분의 사랑 덕이다.”

 

- 남편과 오빠가 연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서지영: “집안에서 서태화 오빠를 성악 유학을 보냈더니 한국으로 돌아와서 옆집에 살던 곽경택 감독님과 친구를 맺더라. 오빠가 하라는 성악은 안 하고 곽 감독님 졸업 작품을 도와준다고 하더니 눈 깜짝할 새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오빠는 영화, 저는 뮤지컬을 하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유학가기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오빠가 제 공연을 관람할 때 고마운 점은 단 한 번도 지적을 하지 않는다. 성악을 전공했으니 성악의 귀로 듣기에 무언가 지적할 부분이 있을 법한데도 (서)태화 오빠는 절대로 지적하지 않는다. ‘잘 했다’ 단 한 마디만 해준다. 오빠에게 굉장한 고마움을 느낀다.

 

남편과 결혼한지는 6년째 접어든다. 결혼 후 2-3년이 힘들었다. 제가 뮤지컬계에 먼저 발을 디뎠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연출가다 보니 ‘연출이니까 (서)지영이가 출연하는 거 아냐?’ ‘남편이 연출하는 작품만 하면 되겠네?’ 이런 오해를 많이 받았다.

 

그동안 많은 연출가와 호흡을 맞췄지만 남편과는 호흡이 정말 잘 맞는다. 작품과 캐릭터를 보는 관점이 너무 닮았다. 제 연기 스타일이 또 남편의 눈에 만족하기에 캐스팅이 되는 건데 외부에서 볼 때에는 부부라서 캐스팅이 되는 걸로 보여 속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선배 언니가 “지영아, 너는 다른 데 오디션 보고 들어가도 될 걸 뭣 하러 그런 말들을 들어가며 굳이 남편과 작업하니? 따로 작업해‘ 이런 조억을 하면 저는 ’언니, 남편하고 작업할 때가 제일 행복해‘라고 이야기한다. 남편 또한 내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해’라고 이야기한다.

 

남편과 저는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전과 같은 잡음도 들리지 않는다. 남에게 오해 받을 만한 부분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소신대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오해와 누명이 벗겨지더라. 남편과 같은 연출가를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남편이 존경스럽다.(웃음)”

 

- 뮤지컬 시장이 활성화되었음에도 요즘의 공연계는 얼어붙은 게 사실이다. 뮤지컬 데뷔를 꿈꾸는 지망생이나 뮤지컬 초년생에게 요즘처럼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면.

 

이건명: “동생들을 만나다 보면 화를 전혀 낼 줄 모르는 동생이 있다.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데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동생도 있다. 사랑을 해보지 않아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별을 노래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이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동생도 있다. 실제로 이별을 하지 않아서다.

 

뮤지컬 배우를 꿈꾼다면 모든 감정을 자신 안에 넣을 줄 알아야 한다. 가령 이별의 노래를 부를 때면 가슴 속에 품어있던 이별의 감정을 꺼내어 노래할 줄 알아야 한다. 화를 낼 줄 몰랐던 이라면 화를 내야 하는 장면에서 화가 아닌 짜증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십 대에 처음부터 주연을 맡는 것보다는 마흔 넘어 성공하는 (류)승룡이 형 같은 배우가 품 안에 갖고 있는 연기적인 재산이 많다고 본다. 만약 지금 힘들다면 지금은 비록 아플지언정 힘든 걸 하나도 버리지 말고 가슴 속에 모두 품어 간직해야 한다.

 

공연이라는 건 두 시간 안에 인생의 모든 걸 압축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일상적인 것이라고는 없다. 언제나 극적인 감정의 요소로 채워가야만 하는 작업이다. 아이돌을 바란다면 이십 대에 성공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배우를 바란다면 순간에 집중하고 순간의 감정을 하나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배우로서 장수하는 현명한 길이다.”

 

(사진: 엠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