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Review

劍聖 2013. 7. 22. 10:52

잘 생긴 남자는 뭐든지 완벽할 것이라는 환상이 따르기 쉽다. 그런데 완벽해 보이는 남자가 의외로 허당일 때, 관객은 기대하지 않았던 허당이라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스칼렛 핌퍼넬>의 박건형이 바로 이런 사례다. 박건형이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 스칼렛 핌퍼넬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말미암아 단두대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놓인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정의의 사도다.

    

요즘의 히어로물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조로>의 원조가 되는 캐릭터가 스칼렛 핌퍼넬이다. 그런데 기존의 영웅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존의 히어로라면 영웅의 가면을 쓰지 않더라도 일상 생활에서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스칼렛 핌퍼넬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이 스칼렛 핌퍼넬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허당이라는 가면을 쓰고 허당인 척 연기하는 삶을 산다.

 

일상생활에서도 허당 기질을 발휘하니 미남 박건형에게 구멍이 보이기 시작한다. 완벽해 보이는 조각 같은 외모가 의외의 허당 기를 발휘하니 관객은 박건형의 허당 연기를 보면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한다. 악역인 쇼블랑을 향해 ‘소불알’이라고 맞받아치고 하녀들과 농담 따먹기 하는 걸 매우 즐거워한다. 약간은 코맹맹이 소리로 간드러지게 발성하는 박건형의 퍼시 연기는 단언컨대 박건형의 무대 연기 가운데서 최고의 웃음을 선사한다.

 

프랑스에서 사람들을 구할 때만 영웅이라는 정체성의 가면을 쓰는 게 아니라 실생활에 있어서도 낮에는 한량 귀족인 척하는 퍼시라는 가면을 쓰고 살기에 인생 자체가 가면인 셈이다. 24시간 가면을 쓰고 사는 스칼렛 핌퍼넬의 삶은 배우자인 마그리트에게도 가면을 벗지 못한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도 자신이 스칼렛 핌퍼넬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건 배우자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칼렛 핌퍼넬과 가까운 사람 두 명이 기요틴에 희생당하는데, 사형당한 지인을 아는 사람이라고는 스칼렛 핌퍼넬과 그의 동지들 외에도 갓 결혼한 마그리트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스칼렛 핌퍼넬은 자신의 아내마저도 믿지 못하고 만다. 함께 프랑스 사람들을 구하는 동지들 외에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영웅이 스칼렛 핌퍼넬이다.

 

<스칼렛 핌퍼넬>은 <두 도시 이야기>는 시대적 상황이 유사하나 이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대극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프랑스 대혁명 혹은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 상황은 왕정이라는 군주제가 사라진 자리에 있어야 할 자유 대신에 공포가 자리하는 암울한 시절이다.

    

<두 도시 이야기>가 공포정치에 맞서는 순수한 사랑을 담아낸다면 <스칼렛 핌퍼넬>은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담을 담으면서도 이를 웃음으로 풀어간다. 영웅의 이야기를 풀어가되 진지함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코미디를 담음으로 공포정치에 맞서는 허당 영웅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생사여탈권이 귀족에서 평민으로 넘어갈 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오의 법칙(Lex Talionis)이 자리한다. 귀족에게 당한 아픔을 평민이 기득권을 잡았을 때 고스란히 되돌려줌으로 말미암아 귀족이든 평민이든 누가 기득권의 자리에 앉더라도 받은 만큼 똑같이 돌려주는 피의 보복이 끊이지 않는 세계관이다.

 

하지만 <스칼렛 핌퍼넬>은 영국 귀족이 타국인 프랑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다. 기득권층인 귀족이 자신의 기득권을 남발하지 않고 돈과 시간을 들여 프랑스로 건너가 비밀결사대를 조직해서 프랑스 사람을 구하니 스칼렛 핌퍼넬은 변형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귀족이 아닐 수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미남 귀족 스칼렛 핌퍼넬이 허당이라는 가면을 쓸 때 벌어지는 유쾌한 웃음은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 혹은 박애주의가 어떻게 유머와 데이트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뮤지컬이다.

 

하나 더, 영국인이 이웃 나라 프랑스 사람을 구한다는 극 중 설정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을 보여준다. 알다시피 영국과 프랑스는 개와 원숭이의 사이처럼 유럽의 해양권과 대륙 제패권을 위해서라면 사사건건 부딪히고 싸우던 앙숙의 나라다.

 

앙숙의 나라라는 두 나라의 적대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프랑스 시민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영국 사람 스칼렛 핌퍼넬의 모험은, 헝가리 출신의 영국 작가 바로네스 오르치의 상상적인 산물이긴 하더라도 영국과 프랑스라는 두 앙숙 국가의 적대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상상적인 화해담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오마이스타)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