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劍聖 2013. 7. 26. 11:15

지구온난화를 막는답시고 CW-7이라는 화학물질을 대기권에 뿌린 결과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CW-7로 촉발된 빙하기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상의 생명체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은 윌포드가 개발한 설국열차 안에서 추위라는 가장 큰 적을 잊은 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추위를 면하기 위해 설국열차 안에 탔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설국열차는 경제적인 계층에 따라 부유한 이들은 앞 칸에, 빈곤한 이들은 뒷 칸에 탑승한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가 비행기를 탑승할 때 누구는 퍼스트 클래스석에 타고 누구는 이코노미석에 탑승하는 상황을 영화적 설정으로 치환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현실 속 이동수단의 좌석 등급만 따온 게 아니다. ‘양극화’라는 경제적인 빈부격차를 설국영화 속 앞 칸과 뒷 칸이라는 설정을 통해 유비하기도 한다. 유산계층이 거주하는 열차의 앞 칸은 질병과 가난의 고통 없이 술과 환각으로 흥청대는 유흥을 일상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

 

반면에 뒷 칸은 군대마냥 군인들에게 정기적으로 검문을 당해야만 한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 앞 칸으로 차출당한다. 먹을 것도 모자라 대규모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은 언제든지 상존한다. 현실 가운데서 상존하는 경제적 양극화 현실을 앞 칸과 뒷 칸이라는 영화 속 설정으로 상징화한다.

 

이러한 경제적인 불평등 앞에서 뒷 칸 사람들은 혁명을 꿈꾼다. 열차 앞 칸의 군인과 총리가 자행하는 경제적인 차별대우를 스펀지처럼 한없이 빨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이 불평등을 해소하리라는 심리가 발현하는 가운데 혁명을 꿈꾼다.

 

영화 <설국열차>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뒷 칸 사람들이 부유한 앞 칸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혁명의 서사를 담는다. 열차의 엔진이 있는 객차를 뒷 칸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접수하기만 한다면 앞 칸 사람들의 차별대우와 작별인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진이 있는 객실을 거머쥐는 자야말로 설국열차의 패권을 거머쥘 수 있다.

 

그럼에도 <설국열차>는 경제적인 약자가 기득권자의 자리에 오르기만을 바라는 헤게모니 쟁탈의 서사만 담고 있지만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특이한 캐릭터는 애드 해리스가 연기하는 윌포드다. 윌포드는 다른 이들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차에 미친 사람이다.

 

열차로 5대륙(여기에서는 호주 대륙을 제외한다. 왜? 호주는 철길로는 건널 수 없는 대륙이라서다)을 횡단하는 꿈을 꾸던 사람이다. 윌포드의 야심찬 대륙 횡단 열차프로젝트는 빙하기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 닥쳤을 때 설국열차라는 21세기 버전 ‘노아의 방주’로 살아남은 생존자를 실어 나를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메시아나 미륵의 관점으로 보면 윌포드는 그야말로 구세주임에 틀림없다. 남들이 터무니없다고 치부하던 대륙 횡단 열차와 노선을 확보하고 그 꿈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혹한기라는 재앙 앞에서 속절없이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최후의 생존자를 추위로부터 구하는 구세주 말이다.

 

그런데 그냥 구세주가 아니라 교주처럼 보인다. 기득권층의 아이들에게 있어 윌포드는 추앙받는 신격화된 존재다. 반면 피지배층인 뒷 칸 사람들에게 윌포드는 착취의 아이콘으로 자리한다. 앞 칸 사람들과 뒷 칸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억압과 신격화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게 있어선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니던가. 열차 앞 칸 지배자의 복장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나 일본군 복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건 우연이 아니다.

 

사이비 교주는 환원주의적인 특성을 갖는다. 신자들로 진실을 보려 하게 하기보다는 ‘현상’에 집중하게 만드는 특성을 갖는다. 윌포드가 이런 인물이다. 본래 노아의 방주는 배 안에 있는 동물이 배 안에 그대로 있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배가 아니다. 육지에 물이 빠지면 사람과 동물들은 배를 빠져나감으로 방주는 그 임무를 다한다.

 

설국열차는 그 반대다. 열차 밖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버티고 있다. 몇 해 전에 설국열차를 박차고 나간 7명의 사람은 눈 밖의 신세계를 발견한 게 아니라 눈 속에서 꽁꽁 얼어붙고 결국에는 동사한다. 설국열차가 ‘노아의 방주’를 알레고리화한 것이라면, 열차 안의 아이들이 보는 7명의 동사자는 노아 설화에서 방주로 영영 돌아오지 않은 ‘까마귀’를 알레고리화한 결과물이다.

 

열차 밖을 나간다는 건 무모한 현실이니 제일 안전한 설국열차 안에 있어야 한다고 앞 칸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행한다. 그리고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5대주를 횡단하고 또 횡단한다. 21세기판 노아의 방주는 놓아주는 것에는 인색한, 설화 속 노아의 방주와는 정반대의 임무를 획책한다.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꼬리를 물고 도는 우로보로스, 혹은 뫼비우스의 띠를 도는 것처럼 전 세계를 횡단하도록 만드는 이가 윌포드니, 그는 열차 속 세인들의 목숨을 부지하게 만드는 구세주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존자를 놓아줄 줄 모르는 사이비 교주와도 같은 이중적인 캐릭터다. 설국열차의 탑승객으로 하여금 우민화 정책을 획책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박탈당한 경제권을 쟁탈하려는 없는 자들의 투쟁기, 혹은 설국열차를 개발함으로 마지막 생존자에게 추위와 식량을 해결하게 만드는 미륵 혹은 메시아적 사명을 띤 윌포드라는 캐릭터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건 환원주의다. 차창 밖 설원이 펼쳐진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설국열차 안에 있다는, 열차라는 현상에만 생존자가 주목하고 바라보게끔 만드는 환원주의자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파란 약과 빨간 약을 택일해야만 했던 것처럼 윌포드는 묻는다. 현상에 안주하고 복락을 누릴 것인가 혹은 아프더라도 진실을 추구할 것인가를 말이다. 하지만 설국열차라는 현상에 안주하는 걸 택하더라도 돈이 있어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된다. 돈이 없다면 앞 칸 군인에게 허구헌날 쥐어터지거나 배식을 구걸해야 하는 비루한 처지의 현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마이스타)

설국열차 더욱 기대가 됩니다~ㅎㅎ 얼른 개봉날만 오길 기대하고 있어요 +_+
이 영화 기대되네요..ㅎㅎ잘 보았습니다^^
의미심장한 영화가 될것 같아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