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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聖 2013. 8. 8. 12:17

누군가가 자신이 쌓아놓은 명성을 뒤로 한 채 처음의 심경으로 돌아가 도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28일에 방영한 SBS 스페셜 ‘오래된 신인 이병헌, 그리고 할리우드’의 주인공인 영화배우 이병헌이 이에 해당된다.

    

대한민국에서 영화배우로 20여 년 동안 살아가면서 이병헌은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다. 그럼에도 할리우드라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건, 이병헌 자신에게 있어서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쌓아놓은 연기자로서의 경력을 망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병헌은 한국에서의 안주보다 새로운 영역인 할리우드에 4년 전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결과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캐릭터의 국적을 한국으로 바꿀 정도로, 혹은 영화 장면에 아버지와 함께 찍은 실제 사진이 삽입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우로 성장한다.

 

미국 할리우드라는 낯선 영역에서 단 세 작품만 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이병헌이 할리우드에서 이룬 영향력은 작지 않았다. 한국의 영화배우가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입성하기 위한 도전은 이병헌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는 이병헌이 처음이다.

    

90년대 메이저리그로 처음 진출한 박찬호 선수처럼, 지금 이병헌은 앞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할 미래의 한국 배우를 위한 초석을 닦고 있었다. 장차 할리우드에 진출한 미래의 한국 배우를 위해 이병헌이 지금 닦아가는 길이란, 얼마만큼 유명한 할리우드 인사와 함께 작업하는가 하는 인맥 구축이 다가 아님을 다큐멘터리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한 인물의 유명세를 부각하기 위해 그가 얼마만큼 유명한 사람과 막역한가 하는 방식의 인맥 구축에 다큐멘터리가 공을 들이기를 바랐다면, 다큐멘터리 초반부에 이병헌이 캐서린 제타 존스와 화보 촬영을 함께 한 것처럼 이병헌이 할리우드 배우들과 어떤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가에 공을 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신인 이병헌, 그리고 할리우드’는 이병헌이 얼마만큼 할리우드 인사와 인맥을 구축하는가 하는 것보다는 이병헌의 멘트를 통해 할리우드 스타들이 어떤 방식으로 스탭을 대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색다른 접근 방법을 시도한다.

 

이병헌은 함께 작업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상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단 한 번도 인상을 쓰는 일이 없었다는 멘트를 남긴다. 그러면서 이병헌 자신 또한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앞으로 후배 배우들에게 이런 인상을 남기는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미래의 자화상을 소개하고 있었다. 연기하는 연기력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주위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포용력을 닮아가고 싶어하는 이병헌의 인성을 소개하는 것을 다큐멘터리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지금 개봉 중인 <레드: 더 레전드>에서 이병헌이 출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다큐멘터리이지만 급조한 다큐멘터리는 아니었다. <자 아이 조>를 위한 녹음 작업 및 핸드프린팅 행사, 소아암 환자를 돕기 위한 기금 마련 행사 등 <레드: 더 레전드> 이전에 할리우드에서 이병헌이 그간 움직인 행보를 차근차근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병헌에 대한 인상, 이를테면 재미있거나 준비성이 철저한 배우라는 점, 혹은 프리미어에서 이병헌을 향한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소개하는 것처럼 이병헌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입성에만 다큐멘터리는 공을 들이지 않았다.

 

미국 일반 시민에게 이병헌의 사진을 보여주고 누구인지 알아보겠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남긴다. 간혹 스톰 쉐도우로 이병헌을 알아보는 미국 시민이 있어도 이변헌의 이름을 용.비.쿰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이처럼 아직은 미국에서 갈 길이 먼 ‘오래된 신인’인 이병헌이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안주보다 불혹의 안팎의 나이에도 할리우드라는 신세계에 새롭게 도전하는 이병헌의 도전정신을 높이 사는 다큐멘터리임에 분명하다.

    

이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동양인 스타 이병헌의 인간적인 면모를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컬투가 진행하는 보이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병헌은 돌연 낮은 곳으로 황급히 몸을 숨기는 의외의 모습을 제작진에게 보인다. 갑작스러운 공황 증세를 보인 탓이다.

 

한 인물의 성공적인 면모를 두각시키고자 하는 다큐멘터리라면 의당 이러한 모습은 편집하고 방영하지 않는 것이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는 이병헌의 이런 민낯조차 편집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내보였다.

 

이는 이병헌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입성기라는 전체적인 그림에 누를 끼치는 연출이기보다는,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한 약을 항상 소지할 정도로 인간적인 이병헌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임에 분명하다. 완벽하지 않음에도 할리우드를 향해 완벽을 향해 도전하는 영화인 이병헌의 도전정신을 높이 사는 다큐멘터리가 SBS 스페셜 ‘오래된 신인 이병헌, 그리고 할리우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진: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