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劍聖 2013. 8. 30. 14:42

 

- <시카고> 초연부터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수많은 뮤지컬 중에서 가장 뮤지컬다운 작품이 <시카고>다. 뮤지컬의 세 요소는 춤과 노래, 연기다. <시카고>는 춤과 연기, 노래 모두가 많다. 반면에 무대 메커니즘이 없다. 하지만 배우로서 무대 메커니즘이 없다는 건 배우가 모든 걸 발산하기가 가장 쉽다는 걸 뜻한다.

 

1920년대가 시대적 배경인 <시카고>는 브로드웨이에서 요즘도 호응 받는 작품이지만 요즘에 맞게 변화한 게 없다. 그럼에도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건 돈이면 다 되는 물질 만능의 시대와 나쁜 짓을 하면 할수록 스타가 되는 현대 사회를 꼬집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행복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게 행복의 원천이라는 걸 이야기하기도 하는 작품이다.”

 

- 작년에도 무대에 올랐지만 매 번 공연할 때의 차이점이 있다면.

 

“내가 연습하고 생각하고 경험한 만큼 표현할 수 있는 뮤지컬이 <시카고>다. 무대 메커니즘과 의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캐스팅에 따라 매번 색깔이 달라진다. 상대방의 반응에 어떻게 반응하며 연기하느냐에 따라 매번 재미가 달라진다. 록시 역의 이하늬 씨는 보조개가 예쁘다. 보조개만 들어가도 여시같이 보인다. 처음 벨마를 연기하면 록시에게 ‘너 얄미워’ 하기 쉽다.

 

하지만 이하늬 씨의 록시를 보면 ‘그래, 너 참 예뻐’하는 벨마의 연기가 절로 나온다. 매번 작품을 분석하는 눈이 달라진다. 13년 전 초연 때의 대본에서는 보이지 않던 게 지금에서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올해 공연에는 풍자적인 요소를 많이 넣었다. 예전에는 록시에게 화가 나면 화나는 걸 그대로 연기했다면 지금의 벨마는 능글능글하게 화를 내며 쿨하게 연기한다. 관객이 보기에 ‘벨마는 웃고 있지만 화가 많이 난 상태야’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연기한다.”

 

- 젊은 록시를 연기하다 벨마를 연기해서 록시에 대한 질투가 촉발된 것이 아닌가.

 

“그 반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제가 젊었을 때에는 적(록시)을 연기했다. 한 여배우가 같은 작품에서 두 여주인공을 맡는 경우는 감사한 일이다. 록시를 연기하면서 느낀 건 록시가 감성적인 여자라는 거다. 화가 나면 버럭 소리 지르지만 자기가 좋으면 ‘사랑해요’라고 알랑거릴 줄 아는 여자다.

 

제 실제 성격이 록시에 가깝다. 기분이 좋으면 얼굴에 당장 표가 나서 포커페이스를 못한다. 화가 나도 금세 표가 난다. 재미있는 공연을 하면서 공연의 정서랑 안 맞는 책을 읽었다가 재미있는 대사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서 선배님에게 혼난 적이 있다. 록시가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데 솔직하다면 벨마는 반대다.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 여자다. 저는 너무 인기가 많지도 않은, 떡볶이도 편하게 먹으러 다닐 수 있는 지금의 제가 좋다.”

 

    

 

- 적당한 게 좋다는 본인의 이야기와는 달리 뮤지컬 1세대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닌다.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한 뮤지컬의 길을 27년째 걷고 있다. 지금 살아온 인생보다 더 많이 뮤지컬 무대에 설 예정이다. 뮤지컬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최고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손꼽는다고 해서 최고일까. 저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칭찬은 의미가 없다.

 

반대로 남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저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면 부끄러울 게 없다. 하루하루 공연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감사하다. 무대에서 공연하고 나면 힘들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저는 공연을 해야 행복한 사람이다.”

 

- 공연을 해야 행복하다면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기가 무료할 수도 있겠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커튼콜이다. 커튼콜 때 ‘최정원입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오고 뛰어나올 때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한 순간이다. 커튼콜 때 관객의 박수를 통해 큰 힘을 받는다. 관객의 박수가 제 몸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관객의 박수를 받고 충전된다. 하루 이틀 정도는 공연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한 달 이상 공연이 없으면 우울해진다.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고 ‘네’ 혹은 ‘아니오’라고만 반응하고 말이 없어진다. 제일 중요한 게 관객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똑같지 않다. 단 한 번도 똑같은 관객 앞에서 공연한 적이 없다. 어제 이 장면에서 관객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오늘 똑같은 반응이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관객과 새로 만나는 기분이라 매번 설렌다.”

 

- 공연의 정서랑 맞지 않은 슬픈 책을 읽다가 공연 중 눈물이 나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면 공연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뒷담화는 피할 것 같다.

 

“맞다. 배우가 갖춰야 할 덕목 가운데서 노래와 춤, 연기를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기부하려 노력하는 마음가짐은 좋은 배우가 되는 지름길이다. 뮤지컬 배우가 되어 제일 먼저 한 것이 나쁜 음식과 습관을 버린 일이다.

 

누군가는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심지어는 콜라도 안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런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 목소리가 좋아지고 호흡이 걸어지고 건강해졌다.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우유를 마신다. 탄산음료를 마시면 무대에서 트림하기 쉽다. 선행과 기부를 많이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게 공연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하다.”

    

- 배우들과의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배우로 알고 있다.

 

“제가 주연을 하지만 나이가 들면 후배를 받쳐주는 조연이나 앙상블을 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건 제가 무슨 역할을 하던 관객과의 교감이 가장 크기 때문에, 많이 출연하고 많이 노래하는 게 다가 아니다.

 

잘 하는 배우를 보면 저 배우와 함께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라이벌 의식이 들지는 않는다. 더블로 연기하면 둘 중 호흡이 잘 맞는 배우가 있다. 그럴 때에는 호흡이 잘 맞는 배우와 빨리 연기하고 싶어진다. 무대 밖에서는 선후배지만 무대에 오르면 다 같은 동료다.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건 어머니의 공이 가장 크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음식을 하면 빈대떡 하나를 만들더라도 온 동네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나눠줄 만큼 만들었다. 어머니는 목욕탕에 가더라도 그냥 목욕만 하지 않았다. 목욕탕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진다. 찾아보면 동네 할머니의 등을 밀어준다. 어떤 때에는 열 명 이상의 등을 밀어주고 녹초가 되신 적도 있다.

 

그럼에도 콧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즐거워하셨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저는 이런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제가 크고 보니 어머니를 닮아간다. 목욕탕에 있을 때 혼자 있는 분을 보면 젊은 아가씨라도 ‘등 밀어드릴까요’ 하고 먼저 물어본다.

 

등을 밀어주면 제 등을 민 것보다도 더 시원해진다. 엄마가 좋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는 걸 나이 들어서 이제야 안 거다. 함께 나눌 때 느끼는 행복이 혼자 느끼는 행복보다 크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원아, 비싼 옷은 깎더라도 시장에서 깎아달라는 말은 하지 말자. 어려운 사람에게는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되고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깎아도 된다’ 아파트에서 청소 용역을 하는 분을 보면 어머니는 가만히 놓아주지 않는다. 꼭 커피라도 타서 대접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 뮤지컬 1세대가 바라보는 지금의 한국 뮤지컬 시장은 어떤가.

 

“제가 뮤지컬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관심을 받는 장르가 아니었다. ‘정원아, 왜 뮤지컬이라는 걸 하려고 해?’ 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런 반응이 나올 때 제가 ‘뮤지컬이라는 게 뭐냐 하면 내가 만든 거야’라 장난쳐도 ‘정원이 네가 만든 거구나’ 하고 받아들일 정도로 뮤지컬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던 때였다.

 

요즘은 연예인이 ‘뮤지컬에 출연하게 되었다’ 혹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옛날, 아무도 뮤지컬을 택하지 않던 시대에 뮤지컬이 정말 좋아서 배우가 되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상이 힘들 때 위안을 줄 수 있는 매개체가 옛날에는 책이었다면 지금은 문화예술이다.

 

‘선구자로 앞서 갔구나’ 하는 생각에 제 자신이 기특하다. 뮤지컬은 유행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유행이 바뀌어 뮤지컬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창작뮤지컬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한국영화가 외국으로 수출되는 것처럼 우리가 만든 창작뮤지컬이 외국으로 수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마이스타/사진: 신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