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劍聖 2013. 9. 27. 09:07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장옥정의 오빠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뮤지컬 배우가 있다. 고영빈 배우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캐릭터의 색깔을 뚜렷하게 살릴 줄 아는 팔색조 배우다. 뱀파이어면 뱀파이어, 동성애자면 동성애자 등, 맡은 연기를 감칠맛 나게 만드는 고영빈이 이번에는 변학도를 연기한다.

    

그런데 이 변학도, 기존 사극에서 보던 심술궂고 수청만 강요하는 변학도가 아니다. 되레 춘향을 아끼는 로맨티스트 변학도인지라 <인당수 사랑가> 가운데서 변학도가 가장 인기가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인당수 사랑가>에서 변학도를 연기하는 고영빈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났다.

 

- 기존의 변학도와 <인당수 사랑가> 속 변학도가 다르게 해석되는지라 이몽룡보다 멋있게 두드러지는 민폐 캐릭터로 등장한다.

 

“아무 조건 없이 마음만 움직이는 사랑과, 세상에서 안전지대로 이끌고 싶어 하는 변학도의 보호해주고 싶은 사랑 두 종류의 사랑이 작품 안에 담겨 있다. 1막에 담긴 후배 배우들의 풋풋하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질투가 나는 사랑 때문에, 연습하면서 ‘2막에 들어서서 나이 든 사람들이 나와서 찬물 끼얹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지만 (변학도를) 좋게 보아서 감사하다.

 

누구나 바라는 로망을 반영하는 이가 변학도다. 삶의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변학도이면서, 사랑하는 마음까지 확인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 자신을) 맡기고 싶게 만드는 인물이 변학도라 사랑받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 라이선스 뮤지컬은 만들어진 틀 안에서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인당수 사랑가> 같은 창작 뮤지컬은 배우의 해석을 캐릭터에 풍부하게 덧입힐 수 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두 가지 경우다. 어떤 메시지를 주겠다는 작품의 방향성이 정해져 있으면 인물이 바뀔 염려는 없다. 이 같은 경우에는 인물을 연기함에 있어 퍼즐 맞추듯 끼우면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요즘 트렌디한 작품이 많다. 배우의 개성이나 능력을 작품에 최대한 녹일 수 있는 작품이다.

 

후자와 같은 자품을 만나면 배우에 따라 캐릭터가 다르게 나온다. <인당수 사랑가> 같은 경우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하기 때문에 인물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인물의 깊이와 같은 면은 배우에 따라 차이가 생길 것 같다.”

    

-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가 고영빈이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호흡을 맞추는 작업이다. 호흡 안에 감정이 있으니 호흡을 주고 받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인당수 사랑가>는 배우의 감성과 감성이 부딪히는 감성으로 연기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랑의 떨림이 객석에 전달될 수 있을 정도로 배우와 배우가 맞춰가며 연기해야 한다.”

 

-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뻔한 캐릭터 연기는 경계하는 게 눈에 보인다.

 

“대본을 보면 평범하지 않은 쪽으로 상상을 한다. 공연 초반에는 약간의 무리수를 두는 연기를 할 때도 있다. 무대 위의 제 연기에서 긴장이 해소되면 제 캐릭터 해석이 재미있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제 방식으로 연기를 해 본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상상도 많이 한다.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대본에는 보이지 않던 상황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 <장옥정, 사랑에 살다>처럼 드라마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는가.

 

“드라마를 세 편 가량 찍었다. 2008년에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하고 있을 때 선배의 지인인 PD 분이 제 공연을 보고는 저에게 단막극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무대에서 라이브로 연기하는 것이 좋고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는 게 살짝 두려웠다.

 

두려운 마음 때문에 굳이 찾아가서 대중적으로 저를 알리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대중에게 알려지는 게 운명이라면 제가 ‘거부를 해도 그 길을 가겠지’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스케줄 조율에 있어 1순위는 무대라 그 후로 드라마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도 지인 분의 소개로 오디션이 있다는 걸 알고 오디션을 보았다.

 

예전 같으면 캐릭터나 기간을 문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제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씀하는 것 같았다. 오디션을 보았는데 다음 날 작품에 합류해도 좋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뮤지컬 공연 중이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횟수를 채우지 못할 것 같다, 양해만 해 준다면 드라마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뮤지컬 팀에 양해를 구하고 드라마를 촬영했다.”

 

- 드라마에서 장옥정 오빠를 연기함으로 대중에게 얼굴이 많이 알려졌을 것 같다.

 

“사극이고 수염을 붙이고 출연하다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무대 밑으로 내려와도 알아보지 못하는 뮤지컬 팬도 많다. 분장을 하고 연기하는 모습과 평소 제 생활로 돌아왔을 때의 모습이 달라서일까. 제가 좋아하는 칭찬 중 하나는 ‘무대에서 빛이 난다’는 덕담이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무대 밑으로 내려오면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웃음)”

    

- 드라마에 참여한 경험이 무대 위에서는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궁금하다.

 

“드라마 작업에서는 손발을 사용하지 않고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표정 연기를 소화해야 한다. 또 하나, 무대에서 연기를 하면 대본을 펼쳐놓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대본을 덮지 않는다. 매일 와서 펼쳐보고 인터뷰하기 전에도 대사를 맞춰보아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한 번에 좋은 걸 보여주어야 한다.

 

많은 연기를 연구하는 대신에 많은 경험과 순간의 집중력이 필요했던 장르가 드라마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에도 많은 스태프에게 미안해서 ‘다시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한 번에 끝마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연기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 데뷔 햇수로만 15년을 넘는다.

 

“1994년 대학 2학년 때 연극이 좋아서 오디션을 보았는데 연극이 아니라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이었다. 얼떨결에 합격을 해서 무대에 오른 1994년을 기준으로 보면 데뷔 19년이 된 것 같다. 당시 매 해마다 탤런트 시험을 보러 다녔는데 카메라 테스트에서 떨어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당시 가수로 추천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 당시 MBC 관현악단에 있는 분이 제 소스를 받고 계약을 하자는 제의를 한다. 계약금을 받고 연습을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합숙을 했다. 원래는 듀엣인데 당시 대세가 3인조 가수인지라 래퍼를 한 명 더 구했다. 턱시도에 탭 구두를 신고 영국 신사 콘셉트로 데뷔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다가 스폰서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데뷔를 눈 앞에 두고 모든 결제가 막히니 가수 데뷔를 하지 못했다. 만일 가수가 되었다면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나쁜 일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아이돌로 끝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1999년에 세종문화회관에 정식으로 입단해서 뮤지컬 인생이 펼쳐졌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데뷔는 1999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삼십대 중반이 넘어서 좋은 작품에 많이 출연할 수 있었다. 크게 이슈몰이는 하지 않지만 제 자리에서 조용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오마이스타/사진: 창작컴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