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劍聖 2013. 10. 8. 09:17

여느 때처럼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어떤 아가씨가 있었다. 그런데 스크린에는 흘러나와야 할 영화 영상 대신에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남자친구 강도한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김리회의 프로포즈는 이렇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감동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프로포즈가 감동적일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영상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발레를 그만 두어야 할 정도로 김리회가 위태로운 순간에도, 강도한은 여자친구 김리회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에 더욱 감동적인 프로포즈가 될 수 있었다. 재활 후 <롤랑프티의 밤>으로 발레 팬을 만날 만발의 채비를 하는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리회를 27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 이번에 무대에 올리는 작품 <아를르의 여인>은 <지젤>과는 반대 지점에 서는 것 같아 보인다. 지젤은 비록 자신을 죽게 만든 남자 알브레히트를 망령들로부터 구하지만, 아를르는 지젤과는 반대로 프레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아를르의 여인>의 노래는 무용수가 연습하며 들어도 가슴이 뭉클한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다. 제가 연기하는 비베트는 해바라기처럼 순수한 여인이다. 비베트는 프레데리만 보지만 반대로 프레데리는 다른 여자도 함께 본다. 비베트는 약혼까지 하고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다른 여자를 쳐다보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지젤과 비슷한 면도 있으면서도 감성의 톤이 서로 다른 작품이다.”

 

- 롤랑 프티의 무용을 소화하는 입장에서 그의 세계관을 들려 달라.

 

“클래식 발레처럼 테크닉한 동작은 없어 보이지만 동작 하나 하나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안무를 지도 받을 때에도 의미 하나 하나를 중요시한다. 작품에 캐스팅이 될 때도 그 작품에 얼마나 어울리는 무용수인가를 본다.”

 

- 수석무용수답지 않게 <아를르의 여인>에는 비중이 작은 역할을 맡는다.

 

“그렇게 볼 수는 있지만 제가 어떻게 소화하고 표현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다른 배역보다 제가 더 잘 어울렸다고 생각했기에 배역을 주신 것 아니겠는가. 제가 맡는 비베트가 역할이 잘 맞는다. 무용수는 극 중 인물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며 발레를 소화한다. 죽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죽을 수 없기에 죽은 것을 상상하며 무용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를르의 밤>은 캐릭터를 상상하지 않고 제가 가진 느낌을 그대로 갖고 무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렇다보니 감정이입에 있어서는 예전 작품보다 편하게 임하고 있다.”

 

- 지금까지 공연한 작품들 가운데 감정 소모가 심한 작품이 어떤 작품이었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스파르타쿠스>와 <왕자 호동>이었다. 연습할 때에는 울지 않고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지만 본 공연을 선보일 때에 많이 울었다. 공연 중에는 무용수가 울면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는 가운데서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고 연기했다. 커튼콜 때도 계속 눈물이 났다. 제가 우는 모습을 본 팬 분들이 안타까워했다.”

 

- 18살에 80: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발레단에 입단한다.

 

“국립발레단에 정말로 들어간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김)주원, (김)지영 언니들의 공연을 보며 언제 저런 무대에 설 수 있을까를 꿈꾸며 국립발레단에 입단하는 것을 큰 희망으로 가지고 있었다. 국립발레단에 입단해서는 언니들이 연습하는 것을 넋이 나가라 하고 하루 종일 구경만 한 적도 있다. 쟁쟁한 언니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기했다.”

 

- 최연소 수석 무용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제가 그런 호칭을 받는 게 맞나 할 정도로 부담감이 있다. 어릴 적에 실수를 하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용서가 된다. 하지만 지금은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 작년 여름에 발레 시구로 유명세를 탔다.

 

“평소 야구를 볼 때 연예인이 시구하는 걸 보고 (발레리나도) 저걸 하면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발레리나가 연예인이 아니다보니 대중은 저를 모른다. 시구를 어떻게 하면 발레리나라는 걸 알릴 수 있을까를 여러 분들과 고민하기 시작한다. 검은 콘셉트의 복장인 투트는 영화 <블랙 스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시구는 포털 뉴스에도 노출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시구를 통해 대중에게 발레를 친숙하게 소개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발레 팬들만 알지 대중은 제가 발레리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구 후에는 길거리에서 ‘김리회 씨..’ 하며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 우연치고는 정영재 수석무용수도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다.

 

“정영재 오빠랑 같은 학교를 나왔다. 단장님이 저랑 영재 오빠가 서 있는 그림이 예쁘다고 해서 함께 호흡을 맞춘 건 4-5년 된다. 콩쿠르에도 함께 나가 입상도 한다. 지금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어디로 움직일 것 같다는 느낌을 알고, 컨디션이 어떤지 말을 하지 않아도 보일 정도다.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언니’라고 부를 때가 가끔 있다. 남자가 아니라 파트너로 보어서 호칭을 언니라고 가끔 부른다. 각자 다른 짝을 만났지만 결혼하는 때가 이렇게도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예전에 영재 오빠랑 연습할 때와 지금 호흡을 맞출 때의 느낌이 다르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감정을 상상하며 호흡을 맞춘다. 하지만 지금은 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몰입의 강도가 다르다. 이런 점은 아마 오빠도 마찬가지로 느낄 것 같다.”

 

- 예비신랑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나.

 

“강도한 오빠가 현대무용을 조금 했다. 저와 오빠는 한예종 출신이다. 학교 다닐 때에는 인사만 하던 선후배 사이였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서로 어떻게 지냈는가를 몰랐다. 그러다가 작년에 제가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를 오빠가 보게 된다. 제 전화번호를 모르니 sns로 ‘공연 잘 보았다’고 올렸다. 별 감정 없이 ‘오빠도 잘 지내시라’는 맨션을 남겼다. 그 후 지인들 모임에 참석했는데 오빠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면서 만남이 시작되었다.”

 

- 만난 지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가.

 

“<라 바야데르> 할 때 대작이고 연습량도 많아서 굉장히 힘들었다. <라 바야데르>를 면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공부를 하다가 늦게 잠이 들곤 했다. 저 스스로 작품에 대한 해석이 되지 않으면 말 없이 무용으로만 표현한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빠가 급하게 전해줄 게 있다고 해서 만났다. 갑자기 손톱 두께만한 A4 뭉치를 건네주었다. 읽어보니 제가 캐릭터와 작품 분석으로 힘들어하는 걸 알고는 제 입장에서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한 글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걸 하나씩 출력해서 제게 가져다 주었다. 오빠에게 너무 고마웠다. 오빠가 무용을 해서 무용이라는 분야를 알기에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할 줄 아는 오빠를 만나게 된 게 감사했다.

 

3-4개월 동안 몸이 좋지 않다가 지금에야 무대로 복귀한다. 두 번째 다쳤을 때에는 발레를 그만 두어야 하는가를 고민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재활하고 회복하는 동안에 오빠가 병원 이곳 저곳을 일일이 수소문하고 병원 예약부터 병원의 모든 일정을 마치 자기 일처럼 세심하게 배려해주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지 8년 차다. 별로 쉰 적이 없었다. 힘들어하는 제 곁에서 ‘피로가 누적되어 쉬라는 사인을 받은 것’이라고 오빠가 위로해 주었다. 옆에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오빠, 정말로 힘들 때 든든하게 힘이 되어준 오빠에게 감사한다.

 

결혼을 생각한 건 ‘이 사람이 옆에 있어준다면 힘이 되고, 무대에서 춤출 수 있을 때까지 오빠가 함께 해주겠구나’ 하는 걸 알고부터다. 오빠 역시 무대에서 춤출 수 있을 때까지 춤을 추면 좋겠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강수진 선생님도 결혼 후에도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로 지금까지도 계속하여 춤을 춘다. 결혼을 하면 발레를 그만 두는 게 아니냐고 문의하는 분도 있는데 결혼하더라도 발레는 계속 할 예정이다.”

 

(오마이스타/사진: 국립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