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劍聖 2013. 10. 8. 09:49

통상적인 제작보고회나 프레스콜에서는 작품에 대한 견해나 혹은 연습을 하며 배우들이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배우들이 재미나게 담화로 표현하게 마련이다. 개인사 혹은 가족사를 밝히더라도 어느 정도 포장하기 쉽다. 그런데 <선녀씨 이야기>의 이재은은 달랐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말미암아 악다구니를 써야 하던 어린 시절의 불화를, ‘이렇게 지지고 싸우면서 사느니 이혼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토로하던 개인사를 솔직하게 발언하는 이가 이재은이었다. 이재은이 어려운 가족사를 어떻게 솔직하게 고백하게 되었을까. 이재은을 아트센터K 네모극장에서 만났다.

 

- 제작보고회 당시 가족사를 솔직하게 답변한 발언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가 꽤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나고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녀씨 이야기>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봄직한 에피소드가 많다. 그러다보니 대본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었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인 선녀씨의 입장에서 볼 때 많이 느끼는 점이 있다.

 

그건 ‘왜 선녀는 자식에게 올인했을까’ 하는 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어머니이자 작품이 아닐까 싶다.(웃음) 예전에는 <오구>처럼 이런 류의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식에게 모든 걸 다 바치는 어머니 선녀와 같은 정서를 모른다. 요즘에 다루는 어머니 이야기를 보면 자기주장이 강한 어머니 상으로 반영된다.

 

하지만 한 세대만 위로 가보면 다르다. 제 어머니만 보더라도 저에게 올인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무언가를 해보고는 싶은데, 자신보다 자식이 빛을 많이 보는 아버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극 중 종우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맨날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사느니 차라리 이혼하지? 왜 같이 살아? 엄마는 신세 한탄 하지 말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두들겨 패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릴 적의 아버지는 폭력적인 분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설 자리를 자꾸만 잃어가는 분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는 것으로부터 오는 자격지심이라고 해야 하나.

 

어릴 적에는 아무리 자격지심이라고 해도 왜 아버지가 자격지심을 통제하지 못하는가 하고 참으로 의아하기만 했다. 아버지가 밥상을 엎을 때마다 왜 엄마는 죄인이고 아버지는 가해자가 되어야만 했는가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단 하루도 울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기쁘지도 않으면서 나쁘지도 않다보니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제 나이가 서른을 넘기면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자격지심이 저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마음 속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남편이 안무가다. 한국무용에 있어서는 최고의 안무가였다. 그런데 남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무가라는 정체성보다 이재은의 남편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참으로 미안했다.

 

남편의 심정을 생각하고 이해하다 보니까 아버지도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기 시작했다. 딸 이재은이 잘나가는 건 좋지만 사업 제안을 받을 때 ‘딸이 돈도 잘 버는데 어떻게 해봐’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싶다. 아버지도 나름 잘 해보고 싶었을 텐데, 아버지의 심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 4살부터 연기를 해서 젊은 나이임에도 연기 인생 삼십여 년이라는 관록이 붙었다. 희로애락이라는 큰 감정 가운데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쉬운 감정이 있다면.

 

“연기하기가 쉬운 감정은 없는 것 같다. 모든 것들이 쉽게 넘어간다면 가슴으로 와 닿는 에피소드가 없지 않을까 싶다.(웃음)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가령 기쁘다는 게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기쁨의 종류라는 건 다양하다. 새로운 물건을 샀을 때 오는 기쁨일 수도 있고, 우리 남편에게 선물을 받아서 기쁜 감정일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다양하게 얽히고 얽히다보니 희로애락 가운데서 제가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나 감동할 수 있는 충분한 진정성이 있다면 제가 연기로 표현하기 이전에 이해되고 공감 받을 수 있는 연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연기를 어렵다고 생각하면 다 어렵고, 반대로 다 쉽다고 생각하면 다 쉬운 게 연기다.

 

나이대가 바뀌면서 인생에 대한 희로애락이 달라진다. 어릴 적에는 보여지는 연기가 다라고 생각했다. 서른 이후부터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속에 잇는 것이 제게 주는 메시지가 더욱 소중하다. 이런 부분으로 말미암아 어릴 적에는 놓치고 가는 부분이 있었다면 지금은 좀 더 내면을 들여다보려 하는 점이 이전 연기와는 달라진 부분이다.

 

제 얼굴이 동안이다. 그래서 연기로 많은 걸 표현하고자 해도 어려움이 있을 때가 있다. 엄마로 보여야하는데 동안이 엄마의 연기를 가릴 수 있다. 남들은 ‘좋잖아’ 라고 이야기하지만 동안이 콤플렉스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제는 동안에 스스로가 얽매이지 않고자 한다. 결혼하고 제가 바뀐 게 있다면 이전에는 하지 못한 생각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제 동년배는 아이 엄마나 초등학생의 엄마다. 저는 아이는 없지만 아이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들의 정서를 느끼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릴 적 저를 키우신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고 새삼 새롭게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소녀나 아가씨의 정서를 벗어나서 완숙된 엄마의 연기를 표현하고 싶다. 여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이런 정서의 변화가 결혼 전과 결혼하고 나서가 달라진 부분이다.”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