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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2016. 8. 20. 06:00

<그리움에 관한 시 모음> 목필균의 '잘 지내고 있어요' 외


+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움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묻게 한다.

물음표를 붙이며
안부를 묻는 말
메아리 없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전하게 한다.

온점을 찍으며
안부를 전하는 말
주소 없는 사랑이다.

안부가 궁금한 것인지
안부를 전하고 싶은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묻고 싶다가

잘 지내고 있어요.
전하고 싶다.
(목필균·시인)


+ 미루나무 한 그루

하늘 푸른 날
미루나무 한 그루
강변에 서 있다

저도 그렇게 서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게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보다
아름다운 꿈은 없지
(김시천·시인)


+ 당신을 기다리는 하루

하루 종일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내 눈과
내 귀는
오직 당신이 오실
그 길로 열어졌습니다
(김용택·시인, 1948-)


+ 먹어도 먹어도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는 농심 새우깡처럼,
아무리 그리워해도 나의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고,
바삭바삭 금방 무너질 듯 마른기침을 토하며,
그리워 그리워해도 그리움은, 질리지 않고,
물 같은 당신께 닿으면 한꺼번에 녹아버릴 듯,
왠지 당신의 이름만 떠올려도 불길처럼,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는 그리움은,
(이대흠·시인, 1968-)


+ 바로 당신

아침에 유리문을 여니
분홍빛 매화가 송이송이 부끄럽게 웃고 있습니다
언제 그리 꽃송이를 많이 피워놓았는지
비누방울처럼 뭉게뭉게 방울방울 톡톡 터질 것 같아요
지금 내 안에서도 그래요 가끔은 아주 가끔은
보고파서 보고파서 톡톡 터질 것 같아요, 바로 당신
(홍수희·시인)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희성·시인, 1945-)


+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출렁거리는
억 만 톤의 그리움
푸른 하늘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혼자 차오르고
혼자 비워지고
물결 하나 일지 않는
그리움의 저수지
머리에 이고
물길을 찾아갈 때
먹장구름은 후두둑
길을 지워버린다
어디에서 오시는가
저 푸른 저수지
한 장의 편지지에
물총새 날아가고
노을이 지고
별이 뜨고
오늘은 조각달이 물 위에 떠서
노 저어 가보는데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주소가 없다
(나호열·시인, 1953-)


+ 민들레 꽃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시인, 1920-1968)


+ 등꽃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
등나무 아래
혼자 서 보자.

등꽃
하나하나에
피어나는 얼굴

또르르 또르르
눈물방울로
떨어져 떨어져 내려
안기우는 얼굴

누군가 못 견디게 부르고 싶을 때
등나무 아래
혼자서
휘파람 불어 보자.

등꽃
하나하나에
켜지는 이름

뽀오얀
가슴밭에
굴렁쇠 되어

또르르
또르르
굴러가는 그 이름.
(손월향·시인)


+ 비누방울

누나가 그리운 날이면
담 밑에 기대앉아
조용히 비누방울 날린다.

비누방울에 어리는
칠색 무지개
매달려 어리광부리던
누나의 치맛자락.

잡으러 따라가면
금방 소리 없이 사라지는
그리운 치맛자락.
(강소천·아동문학가)


+ 사랑, 그 천 개의 무색 그리움

아 ! 이슬 되어, 바람 되어
마음 하나 심장 깊숙이 심어
허구헌날, 온통 그리움뿐
휘젓고 돌아치고 달궈지고 몰아세우는
너는 누구더냐.

잊고 살자 다짐해도
혼절의 무게로 다가와
버릇처럼 세포마다 문신 새기고
내 안에 오직 너로만 퐁퐁 샘솟게 하는,
너는 대체 누구더냐.

눈멀어 귀멀어
붉은 꽃물 모다 모아
옴팡지게도 스미게 하는 너
사랑하고도 외롬을 질끈 동여맨
사랑, 그 천 개의 무색 그리움.

무딘 침묵의 어깨를 넘어
담장의 넝쿨 장미, 오지게도 달게 피듯
사랑, 그 천 개의 그리움
붉은빛으로 가슴팍에 빙빙
허구헌날, 나를 놓아주질 않는구나.
(양애희·시인)


+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내 청춘의 가지 끝에
나부끼는 그리움을 모아 태우면
어떤 냄새가 날까

바람이 할퀴고 간 사막처럼
침묵하는 내 가슴은

낡은 거문고 줄 같은 그대 그리움이
오늘도
이별의 옷자락에 얼룩지는데

애정의 그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사람아

때없이 밀려오는 이별을
이렇듯 앞에 놓고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그대를 안을 수 있나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그대 사랑을 내 것이라 할 수 있나
(유안진·시인, 1941-)


+ 그리움

꽃은 죽어서
하늘로 날아가고
나비들은 죽어서
땅으로 내려온다

사람은 죽어서
하늘에 자신의
그림자를 적시고
새들은 죽어서
땅 위에
자신의 날개를
퍼덕퍼덕 남긴다

그리움 때문일까
살아서
못다 한 그리움!

땅 위의 목숨은
하늘로 날아가 목숨을 이루고
하늘 위의 목숨은
땅 위에 내려와
목숨을 이룬다
(김준태·시인, 1948-)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