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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2020. 6. 21. 16:29

초한지] 중국의 3대 악녀 중 하나인 '여태후' 그녀의 일생과 악행 그리고 사후 평가

박정주 추천 3 조회 1,768 13.12.06 01:04 댓글 6

 

본명 여치(?~BC180)

여기서 치라는 이름은 꿩 '치' 자이며 꿩처럼 억달진 성격으로 유명하다.

전한 고조의 황후이자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정식 황후

 

남편 유방의 부인으로 유명하기보다는 3대 악녀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녀는 유방과 결혼했을때 부잣집 딸래미였으나 천민 거렁뱅이 유방한테 시집을 가

혼자서 시집을 도맡는 억센 며느리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우 밑에서 몇년동안 귀빈포로 생활을 한다.

유방은 여치가 항우에게서 되돌려받았을 때에 이미 척부인과 그의 아들 유여의를 둔 상태였었다.

 

여치가 유방한테 매우 충격을 받았던 사건은 팽성전투에서 항우의 3만 병사가 유방의 60만 대군을 무찌르고 있을 때

유방이 퇴각하면서 자기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자기 아들, 딸을 마차에서 걷어차 버리려고 했던 점이다!

(다행히 호위무사인 하후영이 유방한테 너 미쳤냐? 목숨때문에 자식도 버리냐?

라고 끝까지 우기는 바람에 아들인 세자 유영과 노원공주는 살수 있었다.)

여치 입장에서는 유방의 바람끼와 매몰한 부정을 보고 매우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한 그녀에게 남편도 못믿고 오직 믿을건 권력 뿐이였다.

한 고조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한 제국을 건설하자 여치는 일등공신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

숙청 예상 대상은 바로 팽월과 한신, 장량, 경포 등이 포함되었으며

한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신과 같이 반란을 일으키면 곤란해지는 백전백승의 무장 '한신'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여치는 한신을 천거한 소하를 시켜서 한신을 죽이게 하는 방법으로 한신을 제거했다.

또한 양왕 '팽월'도 예외는 아니였다. 유방의 오해를 사 귀향을 가는 도중

여태후는 귀향 가는 팽월을도성으로 다시 불러들인 다음 유방한테 잔인하게 젓갈로 담가 죽이라고 부채질까지 했다.

그리고 여치는 장량의 존재에 대해 매우 껄끄러워 했다.

하지만 장량은 눈치가 빨랐고 제국이 통일되자 마자 정계 은퇴 선언을 한다.

하지만 여치가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장량에게 부탁하는 사건이 생긴다.

그것은 바로 유방이 태자 유영 대신 자신이 총애하는 아들 유여의를 태자로 만들려고 했던 것.

정치적 입지가 불안했던 태자 유영을 위해 어머니 여태후는 장량에게 사람을 보내어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장량은 "안알랴줌. 너님 짱시룸" 이라며 거절하자

여태후는 다시 한번 더 간곡히 부탁했다.

할수 없이 장자방은 상산사호라는 지식인 노인들을 태자 유영이 모시고 와서 조정을 위해 천거한다면

태자의 입지가 굳어질 것을가르쳐 준다.

하지만 경포 제거 과정에서 여치는 유방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는다.

경포의 반란을 유방이 태자 유영한테 진압하라고 했던 것.

경포란 장수는 팽월, 왕릉과 한의 3대 명장으로 뽑혔던 자로

경포와 맡서려면 아무래도 관록의 유방이 나가 직접 토벌하는게 백번 나았었는데

유방 본인은 잃을게 없었던 태자 유영한테 시킴으로서 유영이 경포를 토벌해주면 좋고

죽으면 총애했던 유여의를 태자로 삼을수 있었던 일거양득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즉각 태후는 정치적 세력을 형성해 태자의 출정을 반대했고 신하들도 경포의 무력을 감안하여 황제의 출정을 권고했다.

 

여치의 악행 '인간돼지'

경포와의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병이 도저 유방이 죽은 후, 여태후는 권력의 실세가 되었다.

 

먼저 척부인의 머리카락을 밀고 손발을 묶어 연자방아를 찧게 하였다.

척부인은 이에 자주 신세한탄을 하였고 이것이 여태후의 귀에 들어가 여태후 그녀는 풀업분노를 했다.

여태후는 조나라의 왕이 된 12살 된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장안으로 불러 독살을 시킨다.

또 죄수들이 갇혀있는 감옥에 척부인을던져넣어 죄수들로 하여금 욕보이게 한다.

죄수들로인해 욕을 당하여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척부인에게 독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고

눈을 불로 지지고 귀에 유황을 부어 듣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사지를자르고 코를발라 뒤집어 버린다.

이렇게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된 척부인을 측간에 집어넣어평생 똥오줌을 받아먹게 만든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인간돼지'

그리고 나서 그의 아들이자 황제인 혜제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면서 깔깔대면 웃어댔다고한다. 레알 잔인하게 복수하는 악녀

혜제는 이때의 충격으로 인간의 잔혹함과 인생의 허무함으로 주색에 빠지고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여치의 정치

 

(소하)

 

그러면 여치는 폭군 처럼 정치를 다스렸을까?

정답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적에 대해 난폭했지만 백성의 정치에 대해서는 대신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선정을 베푸려고 노력했다.

소하 曰 : "저도 도가 지식인 노자한테 들은건데 선정이란 큰 나라를 다스리는것은 생선 굽는거랑 같다네요.

작은 생선은 불에 가만 둬야지 자주 뒤집으면 부셔지잖아요? 나랏일도 마구 벌여대면 진나처럼 망하게 된다구요.

그러니까 여후 너님은 나대지말고 가만히 있으란 말이죠."

그 후 여후은 무위의 철학으로 정치를 다스리기 시작하자 천하가 태평했다.

사마천이 작성한 사기의 여태후 본기에서는 '여태후가 다스리던 시절은 천하가 태평했다고 한다.' 라는 식으로 언급되었다.

그저 백성들은 자기 자신들의 삶이 태평하면 누가 권력을 잡던 말던간에 조정의 피바람 싸움따윈 관심없었던 것이다.

여치의 최후

'인간돼지'사건 이후로 충격받은 아들 혜제(유영)가 죽자 여치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있자 조정의 신하들은 그녀의 눈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때 장량의 아들 장벽강이 승상을 맡고있던 진평을 찾아와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던 아들이 죽자 여태후가 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지 아세요?

이유야 되게 간단한거 아니에요?

태후는 아들없이 대신들과 싸움을 하게 될까 두려워서에요.

진평 승상 당신이 먼저 태후에게 찾아가 대신들은 싸울 의사가없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이후 천하는 안정되었지만 여태후는 여씨 천하를 만들기 위해 숙청을 시작했다.

여치는 우선 유방의 나머지 자식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유방의 후손들을 하나 둘씩 제후의 자리에서 쫓아내기 시작했고 남은 유씨 왕들을 여씨와 정략결혼을 시켰다.

특히 유우는 정략결혼한 부인 여씨한테 고발당한후 여태후한테 굶겨죽는 형벌을 받고 죽는다.

유우가 죽고 12일째 되는 날, 일식이 일어나 세상이 온통 어두웠다. 여태후에 대한 천벌을 의미하는 것일까?

혜제가 죽고 여태후가 대권을 차지하고 8년 정도 경과되자

지방에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던 여태후는 길에서 무시무시한 짐승을 보게 되는데 그건 바로 거대한 검은개였다.

검은 개는 갑자기 달려들어 여태후의 겨드랑이에 들이받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후 여태후는 병을 얻게 되었고 곧 세상을 떠났다,

 

여태후 그녀는 중국 역사상 3대 악녀 중 한명으로 뽑힐 정도로 악녀였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폭군이였을까? 라고 하면 답은 아니다.

그녀는 적에게는 강했지만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푸려고 대신의 귀를 기울이면서

제국의 안정을 힘쓰려고 했던 것을 보면

여태후까기 인형 사마천 조차도 사기에서 여태후의 정치를 태평천하 좋은 정치라고 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역사의 승자였을까?

여태후의 악행을 보면서 그녀는 남편 유방때문에 독해진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차라리 서로 온고지순하게 사랑했던 패배자 항우와 부인 우미인을 보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본명 여치(?~BC180)

여기서 치라는 이름은 꿩 '치' 자이며 꿩처럼 억달진 성격으로 유명하다.

전한 고조의 황후이자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정식 황후

 

남편 유방의 부인으로 유명하기보다는 3대 악녀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녀는 유방과 결혼했을때 부잣집 딸래미였으나 천민 거렁뱅이 유방한테 시집을 가

혼자서 시집을 도맡는 억센 며느리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우 밑에서 몇년동안 귀빈포로 생활을 한다.

유방은 여치가 항우에게서 되돌려받았을 때에 이미 척부인과 그의 아들 유여의를 둔 상태였었다.

 

여치가 유방한테 매우 충격을 받았던 사건은 팽성전투에서 항우의 3만 병사가 유방의 60만 대군을 무찌르고 있을 때

유방이 퇴각하면서 자기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자기 아들, 딸을 마차에서 걷어차 버리려고 했던 점이다!

(다행히 호위무사인 하후영이 유방한테 너 미쳤냐? 목숨때문에 자식도 버리냐?

라고 끝까지 우기는 바람에 아들인 세자 유영과 노원공주는 살수 있었다.)

여치 입장에서는 유방의 바람끼와 매몰한 부정을 보고 매우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한 그녀에게 남편도 못믿고 오직 믿을건 권력 뿐이였다.

한 고조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한 제국을 건설하자 여치는 일등공신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

숙청 예상 대상은 바로 팽월과 한신, 장량, 경포 등이 포함되었으며

한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신과 같이 반란을 일으키면 곤란해지는 백전백승의 무장 '한신'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여치는 한신을 천거한 소하를 시켜서 한신을 죽이게 하는 방법으로 한신을 제거했다.

또한 양왕 '팽월'도 예외는 아니였다. 유방의 오해를 사 귀향을 가는 도중

여태후는 귀향 가는 팽월을도성으로 다시 불러들인 다음 유방한테 잔인하게 젓갈로 담가 죽이라고 부채질까지 했다.

그리고 여치는 장량의 존재에 대해 매우 껄끄러워 했다.

하지만 장량은 눈치가 빨랐고 제국이 통일되자 마자 정계 은퇴 선언을 한다.

하지만 여치가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장량에게 부탁하는 사건이 생긴다.

그것은 바로 유방이 태자 유영 대신 자신이 총애하는 아들 유여의를 태자로 만들려고 했던 것.

정치적 입지가 불안했던 태자 유영을 위해 어머니 여태후는 장량에게 사람을 보내어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장량은 "안알랴줌. 너님 짱시룸" 이라며 거절하자

여태후는 다시 한번 더 간곡히 부탁했다.

할수 없이 장자방은 상산사호라는 지식인 노인들을 태자 유영이 모시고 와서 조정을 위해 천거한다면

태자의 입지가 굳어질 것을가르쳐 준다.

하지만 경포 제거 과정에서 여치는 유방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는다.

경포의 반란을 유방이 태자 유영한테 진압하라고 했던 것.

경포란 장수는 팽월, 왕릉과 한의 3대 명장으로 뽑혔던 자로

경포와 맡서려면 아무래도 관록의 유방이 나가 직접 토벌하는게 백번 나았었는데

유방 본인은 잃을게 없었던 태자 유영한테 시킴으로서 유영이 경포를 토벌해주면 좋고

죽으면 총애했던 유여의를 태자로 삼을수 있었던 일거양득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즉각 태후는 정치적 세력을 형성해 태자의 출정을 반대했고 신하들도 경포의 무력을 감안하여 황제의 출정을 권고했다.

 

여치의 악행 '인간돼지'

경포와의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병이 도저 유방이 죽은 후, 여태후는 권력의 실세가 되었다.

 

먼저 척부인의 머리카락을 밀고 손발을 묶어 연자방아를 찧게 하였다.

척부인은 이에 자주 신세한탄을 하였고 이것이 여태후의 귀에 들어가 여태후 그녀는 풀업분노를 했다.

여태후는 조나라의 왕이 된 12살 된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장안으로 불러 독살을 시킨다.

또 죄수들이 갇혀있는 감옥에 척부인을던져넣어 죄수들로 하여금 욕보이게 한다.

죄수들로인해 욕을 당하여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척부인에게 독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고

눈을 불로 지지고 귀에 유황을 부어 듣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사지를자르고 코를발라 뒤집어 버린다.

이렇게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된 척부인을 측간에 집어넣어평생 똥오줌을 받아먹게 만든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인간돼지'

그리고 나서 그의 아들이자 황제인 혜제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면서 깔깔대면 웃어댔다고한다. 레알 잔인하게 복수하는 악녀

혜제는 이때의 충격으로 인간의 잔혹함과 인생의 허무함으로 주색에 빠지고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여치의 정치

 

(소하)

 

그러면 여치는 폭군 처럼 정치를 다스렸을까?

정답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적에 대해 난폭했지만 백성의 정치에 대해서는 대신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선정을 베푸려고 노력했다.

소하 曰 : "저도 도가 지식인 노자한테 들은건데 선정이란 큰 나라를 다스리는것은 생선 굽는거랑 같다네요.

작은 생선은 불에 가만 둬야지 자주 뒤집으면 부셔지잖아요? 나랏일도 마구 벌여대면 진나처럼 망하게 된다구요.

그러니까 여후 너님은 나대지말고 가만히 있으란 말이죠."

그 후 여후은 무위의 철학으로 정치를 다스리기 시작하자 천하가 태평했다.

사마천이 작성한 사기의 여태후 본기에서는 '여태후가 다스리던 시절은 천하가 태평했다고 한다.' 라는 식으로 언급되었다.

그저 백성들은 자기 자신들의 삶이 태평하면 누가 권력을 잡던 말던간에 조정의 피바람 싸움따윈 관심없었던 것이다.

여치의 최후

'인간돼지'사건 이후로 충격받은 아들 혜제(유영)가 죽자 여치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있자 조정의 신하들은 그녀의 눈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때 장량의 아들 장벽강이 승상을 맡고있던 진평을 찾아와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던 아들이 죽자 여태후가 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지 아세요?

이유야 되게 간단한거 아니에요?

태후는 아들없이 대신들과 싸움을 하게 될까 두려워서에요.

진평 승상 당신이 먼저 태후에게 찾아가 대신들은 싸울 의사가없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이후 천하는 안정되었지만 여태후는 여씨 천하를 만들기 위해 숙청을 시작했다.

여치는 우선 유방의 나머지 자식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유방의 후손들을 하나 둘씩 제후의 자리에서 쫓아내기 시작했고 남은 유씨 왕들을 여씨와 정략결혼을 시켰다.

특히 유우는 정략결혼한 부인 여씨한테 고발당한후 여태후한테 굶겨죽는 형벌을 받고 죽는다.

유우가 죽고 12일째 되는 날, 일식이 일어나 세상이 온통 어두웠다. 여태후에 대한 천벌을 의미하는 것일까?

혜제가 죽고 여태후가 대권을 차지하고 8년 정도 경과되자

지방에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던 여태후는 길에서 무시무시한 짐승을 보게 되는데 그건 바로 거대한 검은개였다.

검은 개는 갑자기 달려들어 여태후의 겨드랑이에 들이받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후 여태후는 병을 얻게 되었고 곧 세상을 떠났다,

 

여태후 그녀는 중국 역사상 3대 악녀 중 한명으로 뽑힐 정도로 악녀였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폭군이였을까? 라고 하면 답은 아니다.

그녀는 적에게는 강했지만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푸려고 대신의 귀를 기울이면서

제국의 안정을 힘쓰려고 했던 것을 보면

여태후까기 인형 사마천 조차도 사기에서 여태후의 정치를 태평천하 좋은 정치라고 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역사의 승자였을까?

여태후의 악행을 보면서 그녀는 남편 유방때문에 독해진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차라리 서로 온고지순하게 사랑했던 패배자 항우와 부인 우미인을 보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블벗님 휴일 잘 지내셨지요. 저는 산청 동의보감촌에 다녀왔습니다. 그 언젠가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을 다룬 MBC 일일드라마 허준의 생존연대(1539~1615)가
유이태(1651~1715)의 생존연대보다 112년 앞서는데 허준의 스승이 된단 말인가?

소설과 사극에 묘사된 유의태는 실존 인물 유이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흥미 본의의 드라마를 위한 가공의 인물이었을 뿐…또한, 민중의 의사로
묘사되는 허준의 모습 가운데 태반이 유이태에서 가져온 것이라는데,

역사적 사실을 떠나서 산청군이 허준과 류의태를 브랜드화하여 홍보하는
것은 인류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함으로써 한 번쯤 찾아볼 만한 곳이지요.
언제나 고운 걸음 하시어 감사하며, 고운 블방 즐감하고 갑니다.~♥석암 曺憲燮♥
석암님 안녕 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석암님 블러그에 가보지 오랜동안 출입을 안 해서인지 방명록과 댓글 안삿말도 남길수가 없더군요.
사모님과 건강하신 모습 보기 좋습니다.
늘 강녕 하세요.
블벗님! 추석 황금연휴 잘 지내시길 바라면서~ 개판이란! 사리에 어긋나거나
앞뒤 순서가 헝클어져 엉망이 되었을 때 하는 말이지만, 우리 선조가 성스럽게
이어져 오던 계불의식(稽紱儀式)이란 말에서 잘못 표현된 것이었다네요.

옛날 삼신님께 죄를 지은 황궁이 죄(罪)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제단에 나가
하늘에 속죄해 줄 것을 비는 것을 계불의식이라 하였는데, 이처럼 속죄하는 마음이
있으면 계불이 있고, 그 마음이 없으면 계불이 없었다고 하여 계불이 개뿔로 되고

“개뿔도 없다”라고 하였고 개불의식을 한 장소가 판이 되어 개판으로 폄하되고
우화로까지 비약되었다고 하네요‘개판 오분전’이란 동물인 개를 말하는 게 아니라
6.25 때 피난민들 배식을 위해 솥뚜껑을 열기 전 개(開)판 오분전이라고 외친 것이 유래…
올 추석은 코로나19로 어수선하지만, 마음만은 즐건 중추절 되시길 바랍니다.♥석암曺憲燮♥
모르던 역사적 사실을 배워봅니다.
어머 ~
귀한 걸음 감사 합니다.
코로나 잘 피해가시고요.
늘 건강 하십시요.
안녕 하시지요
포스팅 잘봤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화욜 되십시오 금강 님 !
허접한 블방 부끄럽습니다.
볼것도 별로 없구요.
암튼 방문 너무 감사 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시구요.
건강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