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고색창연함을 잃지 않았던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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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y 우리나라 구경하기/경상도

2012. 9. 15.




울진,영덕, 청송을 지나

인삼시장이 있는 풍기역 근처에서 여장을 푼 저녁,

여행길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려

질좋은 국내산 삼겹살과 맛깔스러운 밑반찬으로 한껏 포식을 한 후

다음날 아침 하늘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출발해 도착한 부석사.

카메라가방을 둘러매면서 혹시나 하는 맘에

작은 접이우산을 살짝 챙겨서 들고 나왔더랬다.

 

주차장에서 부석사를 향해 오르는 길,

며칠간의 여행길에 카메라 배터리가 거의 다 된듯 해

다시 차로 뛰어가 여분의 배터리를 챙겨들고온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지난 경주여행때 배터리 없어서 사진찍기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ㅎ

 

 

너무 이른 시간이었을까.

주차요금 징수원조차 출근하지 않은듯했고,

부석사로 오르는 길 매표소에는 이른 출근을 하신 어르신이 앉아계셨다.

 

 

 

가을이 되면 너무나 아름다웠을 은행나무길..

이번 여행길에는 초록색 물감 한가지만으로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상황같았다.

어딜가나 초록으로 물든 풍경 그림.

가을이 되어 화려한 색으로 그림을 그릴 수있는 기회가 다시 오기만 바랄뿐이었다.

그땐 좀더 멋진 사진을 담을 수있을거 같은 기대감..ㅎㅎ

 

 

 

한 두방울 떨어지는 빗방울.

야속하기도 하시지, 그래 어차피 내릴 비라면

쬐끔..쬐끔만 내려주세요~~

이쯤에서 짠하고 내놓는 우산..ㅋㅋ

나 준비성 좋은 여자야~~~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다다르기 전 왼편 중턱에 위치한

당간지주는 부석사 창건 당시 세워진 신라시대의 석조 유물이며,

지금은 한쌍의 돌기둥만이 남아 있었다.

 

 

 

 

 

 

 

 

 

 

 

 

나무, 돌, 흙을 좋아하는 내 성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이 곳 부석사는

이제껏 내가 가본 사찰 중 가장 으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거같았다.

특히 가을이라면 곳곳에 알록달록 단풍으로 어우러져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그림이 될거라는 확신이 드는 곳이었다.

부디 가을에 다시 올 수 있기를............

 

 

 

신라문무왕1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1박2일 프로그램에도 소개할 당시 멋진풍광과

예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지음)

라는 책자에 소개되기도 한지라

 

꼭 한번 오고싶었던 사찰이어서인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운 건축물과 풍광을 즐겼던거 같다.

 

 

 

 

 

 

 

 

 

따뜻한 느낌의 나무 기둥들을 지나니 왠지모를 포근함이 느껴진다.

 

 

 

 

 

 

저 멀리 영주시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않고..

 

 

 

 

 

 

 

 

 

 

 

 

 

 

 

 

 

 

부석사 안양루의 모습~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며,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라고 하는 배흘림기둥이 있어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알려져있다.

 

비가 오는 이른 아침, 경내에 울리는 스님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한껏 숙연해지는듯 했다.

 

 

 

무량수전 앞 석등도 국보 제17호였는데

통일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라한다.

현제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조각물로 지칭되고 있다 한다

 

 

 

잠시 무량수전안으로 들어가 마음속 기도를 하고 나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바라보는 소백산 풍경은 가히 절경이라고 하던데

쏟아지는 빗줄기탓에 시야가 흐린것이 아쉬울따름이었다.

 

 

 

 

 

 

무량수전 좌측에 자리한 부석(浮石)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부석사 창건의 설화가 실려 있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의상이 이곳에 절을 세우려고 했으나 이미 있던 도둑의 무리들이 방해하므로 곤경에 처하자,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가 큰 돌로 변해 도둑의 머리 위로 둥둥 떠다녔다.

그제야 도둑들이 겁을 먹고 도망갔고

의상은 뜬 돌의 공력으로 절을 짓게 되었다 해서 부석사라 이름 지었다 한다.

 

 

 

 

 

 

 

 

 

 

 

 

 

 

 

 

 

 

 

 

 

 

 

 

 

 

 

 

 

 

조사당 벽화 (국보 제46호)를 보기위해
무량수전 왼편으로 난 언덕길을 올라 봤지만 이곳에는 없고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부석사에 전하는 벽화 6점은 원래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것인데

현재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사원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일제 시대에 벽체에서 분리하여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현재는 보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의상은 절 창건후 입적할때까지 이 곳에서 제자를 길러냈다고 한다.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가져와 짚고 다녔던 지팡이를 꽂아놓아 나무로 자란

 선비화(골담초)철망에 갇힌채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닥 아름답지 못한 광경이라 씁쓸한 맘이 드는건 어쩔수 없었다.

 

 

 

이제 부석사를 돌아나가는 길.

한적한 산사에는 빗줄기만이 요란스레 들리고 있었다.

 

 

 

 

 

 

의상대사의 호법룡이 살았다는 우물 용정

 

 

 

점점 빗줄기는 거세지고 작은 우산 하나로 다니기엔 무리가 있어

잠시 처마밑으로 피신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쏟아지는 빗줄기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부석사.

내리는 비로 인해 동선의 제약이 있었지만

우중의 산사를 돌아보는것도 내겐 새로운 경험이 되는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