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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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y 우리나라 구경하기/서울

2021. 11. 23.

 

 

 

 

 

개인적으로는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나름 찾는 편이다.

옛것에 대한 경외심과 

가끔은 번잡한 환경에서 벗어나 조용한 공간과 함께 하는 것이

나만의 작은 사치랄까....ㅎ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31년 12월 31일까지 상설전시가 되는

우리나라 국보 78호와 83호,

이제는 국보에 주어진 번호 대신 이름으로만 불리게 된다고 하지만,

오래전부터 볼수록 감탄하곤 했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전시물로 꼽히는

반가사유상 2점이 동시에 전시가 된다고 하니

방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는 누구라도 꼭 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비록 사진으로 담기에는 극악(?)의 환경이지만

반가사유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전시실 주변부터 느껴지는 알싸한 향기와

오래전 영화관 실내를 들어가듯 어두운 실내에 익숙해지기 위한

긴 진입로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불현듯 나타나는 최소의 조명으로 비추는듯한 반가사유상 2점이

커다란 공간을 꽉 채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전시장에서는 당연히 카메라 플래시 사용은 금지이며,

삼각대도 사용금지이다.

간혹 휴대폰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는 분들이 계셔서

박물관 관계자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클릭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사유의 방

museum.go.kr

 

 

 

 

 

 

지난 8/23~ 9/30일까지 반가사유상의 이름을 공모한 결과

대상은 나오지 않았지만

금상(3점)은 반디·반야, 해아림·별아림, 금비·신비

은상(3점)은 혜윰·나린, 혜윰·휘호, 보듬·다듬

동상(6점)은 반가미·반가온, 헤윰·자늑, 완이·온이, 반가온·사유람, 해달·연화, 화비미르·다비미르 

입선(9점)은 선미·음미, 일월무아상·염화미소상, 달사유·해사유,

해소·해연, 해달미소·연화미소, 화미·온미, 수려·유려, 온화·고요, 자미·은미 등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오른쪽 금동반가사유상 국보 83호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

 

제작연대와 어느 장소에서 발견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으나

오른쪽의 반가사유상은 1912년 이왕가 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에게 당시 2,600원이라는 큰돈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왼쪽 금동반가사유상 국보 78호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

 

왼쪽의 반가사유상은 1912년 조선총독부가 골동품 수집가인 일본인에게

4,000원을 보상해주며 구입했고,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

그 후 1945년 국립박물관이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인수하고 

이왕가박물관(덕수궁 박물관) 소장품은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었다 한다.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상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반가(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이며,

"사유(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뜻한다.

즉,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한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머리에 삼산관(三山冠) 또는 연화관(蓮花冠)이라고 불리는 낮은 관을 쓰고 있다.

또한 국보 78호와 달리 상반신에 옷을 전혀 걸치지 않은 채

단순한 목걸이만 착용하고 있다.

6세기 후반에 제작된 국보 78호보다 조금 뒷 시기인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대체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탑처럼 보이는 장식이 솟아 있는 이 보관은

태양과 초승달을 결합한 특이한 형식으로 흔히 일월식(日月蝕)이라고 하며

일월식의 보관 장식은 원래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관에서 유래했는데,

비단길을 통해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보살상의 보관으로 바뀌어 사용됐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두 반가사유상의 전시된 상태가 살짝 앞쪽으로 기울어

그 모습을 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어 있는것이

이전의 전시와는 다른 점이었다.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있던 공간에 새롭게 마련된

금동관음보살좌상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제작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이 공간에서도 아름다운 유물의 자태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날은 비록 흐렸지만 남산을 배경으로

힘차게 점프 사진도 찍어보고

아마도 두 반가사유상이 전시가 되어있는 동안

몇 번은 더 방문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