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월] 어린 단종의 애끓는 슬픔이 어린곳....청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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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y 우리나라 구경하기/강원도

2012. 6. 26.




 

 

예전에 비해 서울을 벗어날 기회가 많이 생긴건 사실이다.

어쩜 강원도 여행을 제일 많이 했을지도 모를정도로 강원도를 생각하면

으례히 바다를 떠올렸었는데, 그러다 문득 예전 역사시간에 배웠던

단종애사를 듣고서는 청령포에 대한 강렬한 궁금증과 함께

기회만 되면 언젠가 꼭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주말을 앞두고 문득 영월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해 자정을 넘긴 시간에 서둘러 영월가는 표를 예약하고

하루에 대여섯잔씩 마시는 커피탓이었을까?

밤새 꼬박 한 잠도 못이루고 버스 안에서 토막잠을 자면서 도착한 영월.

터미널앞에서 모래가 서걱거리는 올갱이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청령포로 향한다.

 

청령포로 들어가는 선착장은 새롭게 정비를 하는중이라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었지만

불과 물길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이었고, 생각보다는 작은규모여서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예전 그 어린 단종이 느꼈을 그 쓸쓸함과 두려움은 이 작은 공간조차

커다란 슬픔으로 느껴졌으리라..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버린 강을 걸어서 들어간다고 했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이곳은 국가 지정 명승 제 50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험한 암벽이 자리잡아 배를 이용하지않고서는

밖으로 나갈수 없는 곳이었다.

그 시절 누가 이런곳을 찾아내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예전 외부와 두절된 생활을 했던 단종에게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와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훗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세조의 명에도 불구

단종의 시신을 지게에 싣고 영월 엄씨의 선산에 몰래 묻어

지금의 장릉을 만든이가 엄흥도였다.

 



 

 

 

 

 

 

 



작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단종임금이 거처하던 곳, 단송어소와

그 시중을 들던 궁녀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과 나누어져있었다.

단종이 이곳에 머문 기간은 그리 길지않았는데

유배된 그 해 홍수로 인해 강물이 범람하여 이 곳이 물에 잠기자

영월 동헌의 객사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한다.

 

 



 

 

단종어소는 승정원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재현해 놓은것이라 한다.


단종은 1441년 문종과 현덕왕후사이에 원자로 태어나 8세때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10살이 되던해 세종이 승하하고 아버지인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되고

2년뒤 병약한 문종이 승하하면서 12살에 제 6대왕에 즉위하였다.

계유정난이후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이 되었으나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의 복위를 위해 일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으로 세조 3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단모재본부시유지비의 모습.

1763년 영조대왕의 친필로 써진 글이며, 단종이 이곳에 계실때의 옛터이라 라는 뜻이라한다.

 




 

 

 

 

 

이곳을 돌아보면서 한가지 신기한 것이 눈에 들어왔는데

우연인지 어떤 이유가 있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수많은 소나무들이 단종어소를 향해 기울어져있는 모습이었다.

 

 


 

 


그중 한 나무는 아예 담장에 기대어 눕다시피한 모습이었다.

 




 

 

 

 

 

 


 

 

 단종어소를 지나 망향탑과 노산대로 가는 길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 349호로 지정되어있는 관음송의 모습이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때 두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쳐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단종의 유배당시 모습을 보왔고 관(觀)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음(音) 하여 관음송이라 불린다 한다.

높이가 30여미터 둘레가 5미터이며  

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아주 커다란 소나무였다.

 

 


 

 

 


 

 

 망향탑과 노산대로 오르는길.

 

 

 

 

 

 

 

 

이 망향탑은 청령포 뒷산과 노산대 사이 절벽 가까이에 있는 자그마한 탑으로

단종이 유배생활의 근심과 한양에 두고온 왕비를 생각하며

쌓은 단종의 유일한 유적이라 한다.

아직은 어린 17세....얼마나 외롭고 무섭고 힘들었을지.......

 



 

 

  

 

 

 

  

 

  

 

 

 

노산대

어린 단종이 틈틈히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긴 곳이라한다.

 

 

 


 

 

 노산대에서 바라본 서강의 모습.

 

 

 


 

 

이 금표비는 단종이 유배되어 있던 청령포에

일반백성들이 출입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영조 2년(1726년)에 세운 비석으로 이곳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보존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수십년에서 수백년의 거송들이 우거져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는데

조그만 비석 하나가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과 소나무숲

그리고 단종의 슬픔이 어린 관음송을

현재의 우리가 볼수 있도록 지켜준것일지도 모르겠다.

 


 

 

 

 

 

 

 

 

 

 

 


청령포를 돌아 나오는 길.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 했듯이

단종의 복위를 꾸몄던 사육신사건이 일어나지않았더라면

그 어린나이의 단종이 상왕으로 지내면서 부인과 헤어지는 일도,

머나먼 영월 땅 절해고도같은 청령포에서 홀로 눈물지으며 지내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의 복위를 꿈꾸다 결국 서인으로 강등되고

죽임을 강요당해 영월 시내에 있는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는 애끓는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 무엇인지 모르는 묵직한 맘을 가득 안고 영월시내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