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원의 아침편지

건강이 2010. 1. 14. 11:25
저는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수간호사입니다.
병원에 입사한지도 어느덧 17년째입니다.

처음 응급실에서의 생명을 다루는 긴박함,
손이 잘려나간 안타까운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을 보며 마음깊이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때론 이러한 긴박감은
제 삶을 느슨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병원 밖에서는 무기력해지고 나태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올 여름부터 플루트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같은 부서의 동료가 다니는 교회의 문화센터에서
저렴하게 배울 기회가 생겨서
4개월 정도를 배웠습니다.

악보는 볼 줄 알지만
이미 손이 굳어버린 나이가 되니
실력이 잘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매주 화요일이면
레슨하러 가는 저를 보며
동료들은 "피리 배우러 가느냐?" 며 웃어주더군요.

그러던 중 간호사 송년회 밤이 있었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간호사들을 위해
음식과 함께 간단한 장기자랑을 준비하는데
글쎄 수간호사 중 장기자랑을 해야 할 사람이 없어
거의 떠밀리다시피 하여 동료와 함께
플루트를 연주하기로 하였습니다.

전날 출전통보를 받아서 연습도 못하고
어떤 곡을 연주할까 고민도 많았습니다.
제 친구는 연주를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초보임을 얘기하고
시작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 연주단의 이름을
'조마조마 연주단!'으로 명명했습니다.

송년회 당일 아침에
"연가"를 연주하기로 결정하여
잠깐 연습하고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의 떨림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괜한 짓을 하나 보다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저는 강단에 올라있었습니다.
다들 웃음 반, 걱정 반의 얼굴이더군요.

연주가 시작되는데 한소절도 불기 전에
일명 '삑사리'가 나서 웃음바다가 되고
저희도 웃음이 나서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서부터인지
"괜찮아!"를 외쳐주더군요.
박수와 함께 노래도 흥얼거려주어
저희는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어떤 간호사들은
"저분들은 웃기려고 나왔죠?" 라고 했다더군요.
원장님은 저희가 소리도 못 낼까봐
걱정하셨다고 하시고,
진료부장님은 저희곡이 끝날 즈음에
무슨 곡인지 아셨다고 웃으시더군요.

연주는 엉망이었지만
노력하는 우리를 응원하는 작은 외침
"괜찮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힘이 나고,
동질감이 느껴지고,
실패해도 괜찮겠다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누군가를 위해 힘차게 살아가고, 용기 내어 노력하고,
서로 격려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 김성례 (새벽편지 가족) -



"괜찮아!" 짧은 한 마디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때론, 어떠한 물질보다
한 마디의 말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기도 합니다.

- 괜찮아, 2010년에도 잘 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