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0. 12. 2. 10:26

삼국지(三國志) (150) 원씨 일문(袁氏 一門)의 파멸

 

한편, 조조는 관도 진지에서 원소의 잔당 토벌과 유비의 세력 몰살을 저울질 하던 중에, 유비 일행이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하러 고성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형주를 치려 하였다.

그러나 모든 책사들과 장수들이 그를 말린다.

"승상 ! 겨울을 앞두고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이롭지 못합니다. 회춘(回春)을 기다려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조는 그 말이 옳다 여겨, 군사를 돌려 일단 허도로 돌아와 버렸다.

 

해가 바뀌어, 건안 팔년 정월, 조조는 또다시 군사를 일으킬 생각으로 하후돈과 만총을 여남으로 보내어 유표

의 진출을 견제케 하고, 조인과 순욱으로 허도를 지키게 한 뒤에 자신은 기주를 치기 위해 대군을 몰고 관도

진영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런 조조의 움직임을  첩자로 부터 보고 받은 기주는 크게 동요되었다.

그리하여 원소의 아들 원담, 원희, 원상 등은 군사를 거느리고 관도 일대 까지 진출하여 조조군과 부딪쳤으나

조조군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도처에서 참패를 거듭하는 바람에 일단 관도 싸움을 포기하고 기주로 돌아

와 버렸다. 그리하여 다시 군마를 정비하기 위하여 원담은 청주로 내려가고 원희는 유주로 내려갔다.

 

그 사이에 원소의 셋째 아들 원상을 생산한 원소의 미망인 유씨는 아직 남편의 상사(喪事)를 세상에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남편이 사랑하던 다섯 명의 시녀(侍女)들을 후원에 끌어내어 사지를 갈갈이 찢어

죽였다.

그리고 전실 소생인 두 아들이 각기 자기의 영토인 청주와 유주에 내려간 틈을 타 남편 원소의 죽음을 세상에

공표함과 동시에 자기 아들 원상을 군주(君主)로 결정해 버렸다.

그런뒤 대장 봉기를 청주로 보내어, 장남 원담을 거기장군(車騎將軍)에 봉한다는 인수(印綬)를 내렸다.

원담은 인수를 받아 보고 어리둥절했다.

"이게 어찌 된 일 인가 ?"

 

"이번에 원상 장군께서 군주가 되시면서 장군께 내리는 벼슬입니다."

"당치않은 소리 !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맏아들이오 ! 아버지의 뒤는 응당 내가 이어야 할 것이어늘, 막내인

원상이 군주가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요 !"

원담은 크게 노했다.

"선군(先君)의 유언에 의하여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 부친이 돌아가실 때에 그 자리에는 나도 있었지만, 후사에 대한 말씀은 한 마디도 없었소!"

"유 부인께서 유서를 보관하고 계셔서 저희들은 관여할 바 못 됩니다."

"알았소. 그렇다면 내가 기주로 가서 유 부인과 직접 담판을 하기로 하겠소 !"

원담이 분개하며 즉시 기주로 달려가려 하자, 곽도가 손을 붙잡고 만류한다.

"주공 ! 지금 형제간에 싸우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목전의 조조를 쳐 물리치고 난 뒤에 해결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음 ... 그도 그렇소."

 

원담은 분노를 억누르고, 곧 군사를 정비하여 다시 조조군과 싸우기 위해 여양 벌판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번 싸움에도 원담은 계속 궁지에 몰렸다.

대장 봉기는 이런 기회에 형제간의 반목을 풀어 볼 생각에서 기주로 사람을 보내어 지원군을 급히 보내 주도록

원상에게 부탁하였다.

그러나 원상의 심복 장군인 심배(審配)가 반대한다.

"원담이 조조군을 물리치고 나면 기주로 돌아와 군주의 자리를 뺏으려 할 것이니, 지원군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조조의 힘을 빌어 원담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상은 그 말을 쫒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심부름을 갔던 자가 돌아와 사실대로 보고하자, 원담은 크게 화를 내며,

"상이란 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차라리 조조에게 투항하여 그와 함께 기주를 치겠다."

그 말이 원상에게 전해지자, 원상은 크게 두려워 몸소 군사 삼만을 거느리고 원담을 도우러 왔다.

그와 동시에 원희와 고간도 각기 대군을 거느리고 합류하는 통에 조조도 간단하게 덤벼 올 생각을 못하였다.

그리하여 양군은 서로 대치한 채로 그 해를 보내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건안 9년 춘삼월이 되자, 조조는 다시 공격을 개시하였다. 원담, 원희, 원상, 고간은 모두 크게 패하여 여양성을

버리고 기주성으로 달아났다.

조조는 군사를 휘몰아 기주성 밖까지 추격하였다. 그러나 기주성은 워낙 견고한 성인지라 좀처럼 깨뜨리거나

타고 넘을 수가 없었다.

이를 보고 모사 곽가가 말한다.

"기주성은 워낙 금성철벽(金城鐵壁) 같아서 깨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오니 계략으로서 적을 자멸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씨(袁氏)가 장자(長子)를 폐하고 후실 소생인 삼자(三子)를 후사로 정한 까닭에 형제간에 

반목과 권세 다툼이 심할 것입니다. 마침 그들이 모두 기주성으로 쫒겨 들어갔으니, 우리가 공격하면 저희는

서로 나서서 기주성을 구하려고 할 것이로되, 그냥 내버려 두면 반드시 내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오니 공격

을 중단하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손실도 입지 않고 승리할 길입니다."

 

조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가후를 태수로 삼아 여양성을 지키게 하고, 조홍에게는 관도를 지키게 한 뒤에 자신

은 형주를 치기 위해 대군을 몰고 출정하였다.

원담과 원상은 조조의 군사가 물러난 것을 알고 적이 안심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후사 문제로 형제간에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 하였다.

"맏아들인 나를 무시하고 계모의 아들인 상으로 부업(父業)을 계승하게 한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

 

어느날 원담은 모사 곽도와 신평을 불러 노골적으로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에 곽도가 말한다.

"좋은 수가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원상과 심배를 술자리로 부르십시오. 그리고 군사들을 미리 매복해 두었다가

두 사람을 깨끗이 죽여 버리면 될 일 입니다."

"그거 참 좋은 방법이오. 그러면 술상을 차리고 그들을 곧 부르도록 하겠소."

원담의 초청을 받은 심배가 원상을 찾아와 말한다.

"주공과 나를 초청한 것으로 보아하니, 우리 두 사람을 없애려는 계략인 것 같습니다. 제게 원담쪽에 심어놓은

사람으로 부터 그런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래요 ? 그렇다면 우리가 당할 게 아니라 선수를 쳐야 하지 않겠소 ?"

 

원상은 크게 노하며 대군을 이끌고 원담을 찾아갔다.

원담은 이미 계략이 탄로난 이상, 어쩔 수 없이 아우와 싸움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두 형제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원담이 싸움에서 밀려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원상은 가차없이 뒤를 추격해 왔다.

"곽도 !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

원담은 달아나면서 곽도에게 물었다.

"일시나마 조조에게 투항하여, 그의 군사로 하여금 기주를 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원상이 패망을

하게 되면, 우리는 기회를 보아 독립하면 될게 아닙니까 ?"

"음... 그러면 지금 곧 조조에게 사신을 보내 투항의 뜻을 전합시다."

 

원담은 전세가 하도 급해, 구변(口辯)이 좋은 신비(辛毗)에게 서찰을 주어 조조에게 보냈다.

이때 조조는 형주를 공격하기 위해 하남(河南)에 가 있었는데 원담의 사자가 온다는 말을 듣고 신비를 곧 만났다.

신비는 원담의 서찰을 전하며 항복한다는 뜻을 밝혔다.

조조는 서찰을 본 뒤, 신비를 기다리게 하고 참모들을 불러 이 문제를 의논하였다.

정욱이 말한다.

"원담이 원상에게 공격받는 바람에 사세가 급하여 투항하는 것이니 경솔히 믿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자 장수들은 한결같이,

"승상께서 형주를 치려고 군사를 여기까지 몰고 오셨는데, 이제 유표를 도모할 계획을 버리시고 다시 기주쪽

으로 돌아가 원담을 도우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모사 순유는 정색을 하며 말한다.

"승상 ! 유표는 도전과 모험을 하기 보다는 국경을 지키면서 안정만을 도모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 치지 않더라

도 위협이 되질 않습니다. 또 유비가 형주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그의 병력은 불과 삼천이 채 안되는데다가

유비가 유표를 부추켜 우리에게 공격을 계획한다 하더라도 소극적인 유표가 들어주질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씨 일가는 워낙 대국인데다가 군사가 수십만이나 있어서 형제가 합심하여 부업을 지키기로 한다면, 우리에

겐  여간 큰 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형제가 불화하여 원담이 투항해 온다면 이런 기회에 먼저 원상을

없애고 다시 기회를 보아 원담을 없앤다면 기주 천하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는 쉬운일 이 아니겠습니까 ?"

 

조조는 순유의 말을 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과연 옳은 순서로세 !"

조조는 원담의 사자 신비를 불러들여 따져 물었다.

"원담이 내게 항복하려는 것이 진심이냐, 거짓이냐 ?"

"조 승상께서는 저에게 진위(眞僞)를 물으실 게 아니오라, 형세를 통찰해 보시면 절로 판단이 내려질 것입니다.

보통때 같으면 원씨 일가는 이, 삼대로 망하지 않도록 강대합니다. 그러나 여러번의 싸움으로 현신(賢臣)들이

많이 죽은데다 지금은 후사 문제로 형제간에 골육지쟁(骨肉之爭)까지 벌이고 있어 이제는 내일의 운명을 가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승상께서는 이 점을 특별히 명찰하소서."

신비가 머리를 조아리며 원씨 일가의 허허실실(虛虛實實)을 있는 대로 아뢰자,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신비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신비 ! 우리가 서로 만난것이 너무도 늦은 감이 없지 않구려. 그러면 나는 공의 말대로 원담을 구원하기로

하겠소 !"

조조는 이렇게 말한 뒤에 그날 밤으로 기주를 향하여 대군을 몰고 출발하였다.

한편, 조조의 대군이 강을 건너 온다는 소식을 들은 원상은 크게 놀라, 기주로 퇴각하며 장군 여광(呂曠)과

여상(呂翔)에게 추격군의 뒤를 끊게하였다.

원담은 원상의 군사가 쫒겨가자 그들의 뒤를 추격하였다.

 

그러나 얼마를 못 가서 여광과 여상의 군사로 부터 좌우의 협공을 받았다.

원담은 말을 멈추고 두 장수를 큰 소리로 꾸짖었다.

"선친께서 생존해 계실 때 내 두 분을 소홀치 않게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 오늘날 어찌하여 나를 등지고 명분

없는 아우를 쫒으려 하오 ?"

여광과 여상은 그 말을 듣고 곧 말에서 내려 원담에게 항복하였다.

원담은 그들을 보고 말했다.

"두 장군은 내게 항복할 것이 아니라, 조 승상에게 항복하도록 하시오."

 

원담이 두 장수를 데리고 조조를 찾으니,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원담을 자기 사위로 삼을 것을 약속하고 여광

과 여상에게는 열후(列侯)의 작위를 내렸다.

곽도는 조조의 지나친 호의를 걱정하며 원담에게 말했다.

"조조가 주공을 사위로 삼겠다는 것은 기주를 점령한 뒤에 선친께서 장악해 오셨던 국토를 자기 영토로 삼으

려는 계획인 것 같습니다. 하오니 주공께서는 여광과 여상더러 만일의 경우 주공을 도와 조조의 근간에서 그를

없애도록 미리 내통해 두십시오."

 

원담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장군인(將軍印) 두개를 새겨서 여광과 여상에게 주면서 그 뜻을 통해 두었다. 그러

나 두 장수는 장군인을 받자 즉시 조조에게 그 사실을 고하였다.

조조가 그 말을 듣고 소리내어 웃는다.

"원담은 나의 힘을 빌어,원상을 없앤 뒤에는 장군들의 힘을 빌어 나를 없앨 계획인가 보구려. 철없는 자식 같으

니라고. 하하하 !..."

조조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원담을 죽여 없애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조조는 기주성을 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기주성은 워낙 튼튼하게 잘 쌓은 성인지라 공격하

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기전에 들어가게 되자 조조는 원활한 군수(軍需)를 실어 나르기 위해 수만의

인부를 동원하여 기수(淇水)의 물을 끌어 백구(白溝)까지 운하(運河)를 파게 하였다.

그로써 군량과 군수를 실은 배가 허도에서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원상이 그 소식을 듣고, 장군 심배에게 물었다.

"조조가 군량을 백구로 옮겨오고 있으니 조만간 우리를 치려하는 것이 틀림없소.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

"무안(武安)에 있는 윤해(尹楷)를 시켜, 우리 군량을 운반하는 도로를 지키게 하고, 저수(沮授)의 아들 저곡(沮

鵠)을  한단을 지키게 하고, 주공은 평원으로 진군하여 원담을 치도록 하십시오. 먼저 원담을 친 뒤에 조조를

쳐야 합니다."

 

원상은 그 말이 옳다 여겨, 진림(陳琳)과 심배로 하여금 기주성을 지키게 하고 자기는 마연(馬延)과 장의,

두 장수를 선봉으로 그날 밤으로 대군을 거느리고 평원을 향해 떠났다.

그리하여 원상이 원담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자, 원담은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였다.

조조가 급보를 받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는 반드시 기주를 손에 넣으리라 !..."

하고, 말한 뒤에 조홍에게는 기주를 공략토록 시키고, 자기는 일군을 거느리고 윤해를 치러 갔다.

 

조조가 무안에 이르자 윤해가 마주나오며 덤벼든다.

"허저는 나가서 저자를  취해 오라 !"

조조의 명령이 내리자, 허저는 쏜살같이 달려나가 윤해를 한칼에 베어 버린다.

"이제라도 항복하는 자에게는 사면령을 내리겠다 !"

조조는 도망가는 적들을 향하여 특사령을 내렸다.

그로 인해 투항해 오는 병사가 부지기수였다.

 

조조는 크게 승리를 거두고 그 길로 한단을 치러 나섰다.

적장 저곡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적하러 나왔다.

이번에는 장요가 달려나가 어우러져 싸우기를 사,오합  저곡이 수세에 몰리면서 말을 돌려 도망치자 장요가

활을 쏘아, 저곡을 말에서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저곡이 거느린 군사들은 대장을 잃고 뿔뿔히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렇게 연전 연승을 이룩한 조조는 여세를 몰아 기주성으로 달려갔다. 기주성은 조홍이 이미 포위를 하고 있

었다. 그러나 기주성은 아무리 공격하여도 함락할 수가 없었다.

조조는 성밑으로 땅굴을 파서 기주성으로 들어갈 통로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전에 공손찬을 멸망시킬 때 땅굴을 파서 그의 성을 함락시킨 경험이 있었던 심배는 성밖에 흙이 쌓

이는 것을 보고, 적이 땅굴을 파고 있음을 감지하고 성내의 물을 끌어들여 땅굴에 집어넣는 바람에 땅굴을 파

던 조조의 군사 삼백여 명이 지하에서 생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아아 ! 심배는 과연 천하의 명장이로다 !"

조조는 심배의 계략에 감탄해 마지않으며 기주성 공격을 일단 단념하고 이번에는 양평에 있는 원상을 치려

하였다.

원상은 평원의 원담을 치다 말고, 무안의 윤해와 한단의 저곡이 조조에게 패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군사

를 돌려 기주로 돌아오는 도중에 조조의 군사가 기주성을 치기 위해 몰려갔다는 보고를 받자 양평에 진영을

구축하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첩자를 기주성으로 몰래 들여보내어, 심배를 만나게 하며 계략을

알려주었다.

 

"주공이 군사를 이끌고 기주성 안으로 들어오려면 여간 비상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게다가 많은

군사들이 일시에 성안으로 몰려들면 양식이 부족할 것이니, 성안에 있는 노약잔병을 비롯하여 여자들과 어린

애들을 일시에 내보내 조조에게 항복을 시키면 어떻겠소 ? 그러면 조조가 방비를 안할 것이니, 우리는 그 백

성들 뒤로 군사를 딸려 보내 조조군을 기습하도록 합시다."

"그것 참 좋은 계책이오 !"

심배는 곧 성문에 백기(白旗)를 매달게 했는데, 그 깃발에는,

<기주 백성 투항(冀州 百姓 投降)>

이라는 여섯 글자가 쓰여 있었다.

 

조조가 그 깃발을 보고 좌우에게,

"성안에 있는 백성들이 양식이 떨어져 항복을 하는 모양이나 그들 뒤로는 반드시 군사들이 뒤따라 나오며 기

습하려 할 것이다."

조조는 그렇게 말하며 장요와 서황으로 하여금 각기 오천의 군사를 동원하여 성문 양편에 매복을 하도록 명한

뒤에 자기는 몸소 성 아래로 다가갔다.

이윽고 성문이 넓게 열리면서 백성들이 손에 손에 백기를 들고 몰려나온다. 그러나 그들의 뒤에는 무장한 기주

성의 병사들이 아우성을 치며 밀려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조조가  눈을 부릅뜨며 지휘도를 휘두르며 소리치자, 이번에는 성밖 좌우에 매복해 있던 장요와 서황

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적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성에서 나오던 군사들은 혼비백산하여  성안으로 도망쳐 들어가며 급히 성문을 걸어잠근다.

조조가 급히 성안으로 휘몰아쳐 들어가려 하자, 이번에는 성 위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온다.

조조는 기주성을 쉽게 함락시킬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번에는 방향을 돌려 양평에 있는 원상을 공격하였다.

 

원상은 조조에게 크게 패하여 몇몇 측근만을 거느리고 중산(中山) 방향으로 도망쳐 버렸다.

조조는 원상을 섬멸하자 다시 기주성 공략을 개시하였다.

이번에는 장하의 물을 끌어들여 수공(水攻)할 준비를 하였다.

성안에 있는 군사들은 기와와 공포에 싸여 있었는데, 원담의 사신으로 왔다가 조조에게 머물러 있던 신비(辛

毗)가 원상이 도망치며 버리고 간 깃발과 의복등을 창끝에 꿰어들고 성앞으로 다가가 흔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성안의 제장 제졸들은 여기 보시오. 여러분의 군주 원상은 이미 이 모양으로 완전히 패망하였으니, 공연히

항전하지 말고 모두들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토록 하시오 !"

 

그러자 성 위에서  이를 내려다 보고 있던 심배가 크게 화를내면서, 신비 일가 친척 팔십여 명을 모두 죽여서

그들의 시체를 성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

신비는 그 광경을 보고 호곡(號哭: 소리내 크게 울음)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리고 절친인 심배의 조카, 심영에게 은밀히 서찰을 보내었다.

 

<아직도 성안에는 수많은 병졸이 남아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들 모두가 기주의 백성이 아니오 ? 지금까지 전황

(戰況)보아, 필시 원씨 일문이 멸족(滅族)을 면하기 어려울 것인데, 그들로 인해 수 많은 생명이 희생되어서야

되겠소 ? 공(公)은 심사숙고 하셔서 기주의 백성을 살릴 방도를 모색토록 하시오.>

 

심영은 신비의 서찰을 받아보고, 답서를 써주었는데,

<오늘밤 삼경에 서문(西門)을 열어 줄 것이니 군사를 들이치라>고 하였다.

그런 기회를 놓쳐 버릴 조조가 아니었다. 이날 밤 조조는 심영이 말한 대로 기주성 서문으로 들이쳐서 원씨의

본성(本城)인 기주성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심배는 최후까지 잘 싸웠으나 마침내 사로잡히는 몸이 되었다.

조조는 심배의 지략(智略)을 몹시 아껴서,

"자네는 이제라도 마음을 돌려 나를 도와 줄 수는 없겠나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심배는,

"나는 살아서는 원씨의 신하가 되고 죽어서는 원씨의 귀신이 될 것이니, 두 말 할 것 없다. 패군 지장이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냐 ! 어서 나를 죽이라 !"

하고, 호기롭게 외쳐댔다.

 

조조는 심배의 뜻을 굽힐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형장에 끌어내 참하게 하였다. 그런 뒤에는 그의 충의를

애닮게 여겨, 기주성 북방에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었다.

한편, 중산으로 도망친 원상과 원희는 요동까지 도망하였으나, 요동 태수 공손강(公孫康)은 이들 형제의 머리

를 쳐서 조조에게 보내왔고, 원담은 거짓으로 조조에게 투항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그 흉계가 탄로나는 통에

조홍과 싸우다가 그의 칼에 목이 달아났다.

 

이로써 한때, 하북 일대를 풍미하던 원문 일가(袁門 一家)는 완전히 파멸 하였으니, 

때는 건안 십일 년 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