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0. 12. 4. 14:35

삼국지(三國志) (151) 만용이 부른 허유의 죽음

 

조조는 원소와 수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기주성을 함락한 뒤, 거창한 격식을 차려 입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리하여 예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장수들과 휘하 참모들의 융숭한 영접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려 병사들이

좌우로 삼엄하게 도열한 기주 성문 앞을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조조가 취타대(吹打隊)가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성문 앞을 막 지났을 때, 성루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조맹덕 ! 조아만 ! ..."

( 조아만 = 曺阿瞞: 조조의 어릴적 아명(兒名)이다.)

 

"응 ?" ...

 

조조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소리가 들려온 성루를 올려다 보았다.

그 곳에는 술병을 손에 든 허유가 조조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술이 꽤 취한 상태였다.

"조아만 ! .. 이 허유가 없었던들, 이 기주성에 발이나 들여놨겠나 ?"

성루의 허유는 술에 취해 몸을 건들 거리면서, 조조에게 거침없이 하대(下待)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조를 호위하며 뒤따르던 장수들과 참모들이 눈살을 찌프렸다.

(엉 ? 저 자가 !...)

그러나 정작 조조는 허유의 외침에 화를 내기는 커녕,

 

"그럼, 그럼 ! 자네가 없었더라면 우린 기주에 발도 못 붙였지 ! 그렇지 않나, 엉 ? 하하하 !..."

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 말을 듣고, 한층 도도해 진 허유가 조조를 향해 손가락

질을 하며,

"아만 ! 내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되네 ! 응 ?"

하고, 조조의 다짐을 요구했다.

그러자 조조는 유쾌한 음성으로,

"암, 암 !... 선생의 오소 공로를 내 어찌 잊겠는가 ! "

하고, 대답하곤 다시 돌아서 발길을 옮겼다.

 

그러자 조조의 대답을 듣고, 허유는 수염을 내리 쓸며 거만함을 보였다. 이런 눈꼴 신 허유의 모습을 끝까지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조조의 심복 대장 허저였다. 조조의 뒤를 수행하던 그는,

성루의 허유를 향해 두고 보자는 듯한 눈길을 거두고 앞서 걸어다는 조조의 뒤를 바삐 따랐다.

...

 

허유의 오만방자함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기주성 내에서 술취한 모습으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도 누가 옆에 있건 없건, 조조에 대한 방자함을 되풀

이 하였다.

"이봐, 조아만 저 자식, 지금이야 위풍이 당당하지만 , 소싯적에는 나와 개구장이짓을 도맡아 했지.

도박에 술에..동네 닭과 거위를 서리해다가 개울에서 삶아 먹기도 하고.. 정말, 그 시절은 우리 세상으로 알고,

뽀대고 다녔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살맛나는 세상을 살았어 ! "

 

그러자 옆에 있던 수행원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선생, 목소리를 낮추세요. 승상의 귀에 이런 소리가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러자 허유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지껄인다.

 

"승상은 뭔 놈의 승상 ! 아만은 아만이지 ! 그 자식도 우리와 똑같아 ! 코 하나 눈알 두개, 그뿐인 줄 알아 ? 밥

먹고 똥싸고...히힛 ! 자네는 조아만과 가까이 한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아,아 ! 그런데 자네는 정말 모르는

남달리 뛰어난 재주가 아만에게 있는데, 그는 색골이야 색골(色骨) ! 그 녀석은 그게 아주 쎄거든 ! 우리 따위는

쨉도 안된다니까 !"

 

이렇게 술에 취해 말을 타고 가다말고 마상에서 허유가 떠들어대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그 바람에 허유는 더욱 목청을 높여서 떠들어 대었는데, 이런 모양을 뒤에서 다가오던 허저가 모두 들었다.

눈살을 찌푸린 허저는 아무런 말 없이 허유의 말 앞으로 다가와, 그의 말고삐를 들었다 놓았다.

그러자 말이 놀라며 요동을 치는 바람에 말 잔등에 타고 있던 허유를 떨어졌다.

 

"어이쿠 ! "

땅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허유가 몸을 일으키며 쏘아대었다.

 

"이 놈 ! 어떤 놈인데, 간도 크게 내 말을 집쩍대냐 ! 내가 누군지 아느냐 !"

허유는 허저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을 내질렀다.

 

그러자 허저는 조금도 미안한 기색없이,

"개만도 못한 자식이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

하고, 말했다. 그러자 허유가,

"이놈 보게.. 내가 네놈의 승상, 죽마고우 허유 선생이다 ! 아느냐 ?"

하고, 호통을 치자, 허저가 손가락을 들어, 허유의 목을 가리키며 위협한다.

"자꾸 헛소리 하면, 목을 따버린다."

"으응 ? 하하하하 ! ... 하긴, 이런 머리 빈 놈들이 있었으니, 하하하하 !..."

허유는 허저를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로 대꾸하며 한 소리를 더 질러대었다.

"네 놈은 빠지고 조승상이나 데려와 ! 머리가 비었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 이 허유의 목을 따겠다구 ?

따봐 ! 옛다 ! 모가지를 빼줄 테니 말이다. 재주 있으면 따다가 승상께 바쳐봐 ! 실컷 한번 따 보셔 ! 어서 ! ...

그럴 용기 없지 ?"

 

허유는 허저가 아무런 대꾸를 못하고 있자, 더욱 의기양양 해 하면서 호통을 질러댔다. 그러면서 저자 거리에

서 자신의 목을 길게 빼내고 허저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 순간 허저는 자신의 부장에게 손을 내밀어 창 끝에 달린 반원도를 건네 받았다. 그리고 허저는 아무런 대꾸

없이 번개같이 칼을 내리쳤다. 칼은 순식간에 허공을 갈랐다.

 

"휘잉 !..."

<뎅겅 !>

허유는 선자리에서 허저가 휘두른 반월도에 <악 !>소리 한번 못하고, 그대로 머리가 잘려나갔다.

 

"개 자식 !"

허저가 입을 악다물며 말했다.

...

 

허저는 그 길로 허유의 수급을 보자기에 싸 가지고 조조를 찾아갔다.

그리고 피에 젖은 보자기를 조조의 앞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뒤이어 무릅을 꿇고 코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였다. 조조가 난데 없는 보자기와 허저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허저 ! 또 사고를 쳤느냐 ?"

허저가 그 말을 듣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번쩍 들면서 볼멘 소리로 외쳤다.

"허유가 사람들 앞에서 주공을 모욕해서, 내가 닥치라 했더니, 자기는 승상의 죽마고우라며 목을 내밀면서

배짱이 있으면 베라지 않소 ! 못 베면 내가 제 손자라고 ! 그래 성질이 나서 놈의 목을 따 버렸소."

 

허저가 걸걸한 소리로 외쳐대자 자리에 함께 있던 순욱과 조비를 비롯한 장수들이 화들짝 놀라며 조조를 응시

하였다.

"뭐라 ? 허유의 목을 따 ?"

 

조조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탁자에 한쪽 발을 올려 놓고, 단하에 꿇어 앉은 허저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허유의 목을 베었어 ? 엉 ? 정말이야 ?"

하고,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자 상반신을 일으킨 허저가,

"네 !"

하고, 벌을 각오한 뚜렷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조조의 말이 이어진다.

" 나의 오랜 벗이며 원소를 치는데 공을 세운 허유의 목을 쳐 ? 네가 지금 제 정신이냐 ?"

조조의 힐난은 추상같았다. 그러자 허저는,

"내 목을 내놓으면 되잖소 !"

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그러자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조가 외치듯 명한다.

 

"그래 ! 허저를 끌고가 참수하라 !"

"네, 주공 !"

 

조조 측근의 호위 무사가 단박에 대답하며 허저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러자 조비가 깜짝 놀라며,

"아버님 ! 허저는 수차례 공을 세웠으니 부디 용서하세요."

하고, 무릅을 꿇으며 아뢰었다. 조조가 한 팔을 저어 보이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안 돼 ! 군법도 천리도 거슬렀으니 허유를 당장 끌고가 참수하라 ! "

하고, 매몰찬 명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버님 !"

"승상 !"

"일시적인 충동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조비를 비롯한 측근 장수들이 허저를 감싸며 조조에게 변론하였다.

"충동이 아니었소."

허저가 조비와 자신을 변호하는 장수들의 말을 부정하며 입을 연다. 그리고 이어서,

"진작부터 죽이려 했소 !"

조조가 그 소리를 듣고 더욱 노하며,

"그래 ! 그렇다면 반역이 아닌가 ? 끌고나가 어서 참수하지 않고 뭐하느냐 !"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모사 순욱이 나서며 ,

 

"승상 ! 아룁니다. 허저에게 죄는 있으나, 허유가 지껄인 망발은 소신도 들었사온데, 분명 승상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허유는 원소를 멸하는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니 허유의 장례를 치룬 후 천자께 상주하여 허유를 제후

로 추서하시옵고, 허저는 엄히 벌하시되 죽은 허유 무덤 앞에 사죄토록 하소서."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허저를 참하라는 명을 내리고 뒤로 돌아서 있던 조조가 순욱을 향해 돌아서며,

 

"순욱 !...사람들은 허유가 내게 큰 공을 세웠는데, 기주성에 들어오자마자 그를 죽였다고 할게 아닌가 ? 그러면

백성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나 ? 엉 ? 도량이 좁은 놈이라고 할 게 아닌가 ? 내 욕 좀 했다고 해서, 수하를 시

켜서 죽여버렸다고 ! "

"아무도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허유가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다니는 망나니였기 때문이죠"

"허유가 망언을 일삼는 망나니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어찌 증명한단 말인가 ?"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신이 승상의 공덕을 찬양하고 허유의 망발을 비난하는 글을 쓰도록 진림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진림의 문장이라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이해할 것 입니다."

"진림이 안 쓰겠다고 하면 ?"

"소신이 직접 그를 만나 설득하겠습니다."

"음 !...."

조조는 그제서야 노여움을 풀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다면 진림은 누구인가 ?

진림은 원소의 수하에 있던 당대의 대 문장가로서 원소의 명으로 역적 조조토벌 격문을 썼던 대문호였다. 그가

쓴 격문은 이미 조조도 직접 읽어보고 감탄을 거듭한 바 있거니와 이제 원씨 일문을 멸족시키고 기주성을 함락

한 조조가 부탁한다면 진림이 거절할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으나 , 문인이란 자들은 의례 자기 주관이 확

실한 고로, 본인의 견해와 다른 글은 목에 칼이들어와도 쓰기를 거부하다는 것을 조조도 알고 있는 지라, 진림

이 그런 글을 써주리라곤 확신할 수가 없었지만, 순욱이 나선다고 하니 믿음이 생긴 것이었다.

 

이렇게 조조가 순욱의 간언을 무언으로 승인하고 허저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연다.

"허저 ! 너는 내 오랜 벗을 죽여 용서할 수 없으나, 단지 취중에 실수했다 여기고 목숨만은 살려준다. 허나,

오늘 이후부터 보졸(步卒)로 강등하고 , 마굿간에서 말이나 지켜라. 그리고 백일 동안 금주(禁酒)하고 허유

무덤앞에 가서 머리숙여 사죄해라 !"

 

조조가 허저에 대한 처분을 내리는 중에 <백일 동안 금주>의 대목에 이르러 허저가 <깜짝>놀란다.

술이 인생의 절반인 허저에게 <금주>란 물 없는 물고기요, 속알 머리 없는 빈 껍대기 만두가 아니던가 ? 그

리하여 허저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하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조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장수들은 모처럼의

조조의 관대한 처분에, <썩> 나서서 대답하지 아니하는 허저가 안타까웠다.

 

그리하여 장수들이 허저의 팔을 잡고, 등을 찌르면서 어서 대답하라는 재촉어린 성화를 해대었다.

"빨리 승상께 감사드리시오 !"

"어서 !"

조비까지 나서서 허저의 팔을 잡아 끌자, 허저는 마지 못해 두 손을 반쯤 올리며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

조조는 허저의 투박하고 떨떠름한 대답을 듣자 즉석에서,

"가봐 !"

하고, 명하였다.

 

기주부 계단을 내려가는 순욱의 뒤를 허저가<총총총> 따라 나오며 부른다.

"순선생 !"

순욱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자, 허저가 빠른 걸음으로 순욱의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올려 보이며,

 

"헤헤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고, 조금 전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치사의 말을 하였다. 그러자 순욱은 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면서,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런데 선생 ! 제가 승상 앞에서 있으면서도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었습니다."

"뭐가 의아했다는거요 ?"

"보십시요. 조금 전에 승상께 죄를 추궁 당할 땐, 조 공자가 아무리 빌어도 꿈쩍도 안하시더니 순선생이 말씀

하시니 윤허하셨죠. 왜 그런겁니까, 예 ?"

"세자는 아직 어려서 승상이 원하는 것을 잘 모르지만, 난 늙어서 조금 알지요."

 

"그래요 ? 잘 됐수다 ! 선생, 하나만 더 부탁합시다."

"왜 ? 또 무슨 사고를 쳤는가 ?"

"에이~ 아니오, 술 말이오. 보졸로 강등되고 말지기도 다 괜찮고, 또 허유에게 백번이라도 절하겠는데, 석달씩

이나 술을 못 마시다니, 이거야 말로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이오."

허저가 순욱을 붙잡고 승상이 자기에게 내린 금주령이 너무하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러자 순욱이 기막힌 표정으로 웃어젖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