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1. 9. 11:15

삼국지(三國志) (191) 관우의 위기(상편)

 

화용도 협곡에서 관우의 오백 철기병으로 부터 무사히 벗어난 조조는 불과 이십 여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곡구(谷口)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눈앞에 강이 보이자 조조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에서 기사회생한 고난의 갈증으로 부터의 자기 위로였고 탈출이었다.

강물을 급히 손으로 떠서 몇 번을 삼킨 조조가 얼굴에 물을 뿌리고 돌아서며 쓰러진다.

"승상 !"
"승상 !..."
정욱을 비롯한 장요와 병사들이 조조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린 조조는,
"어서 다시 길을 떠나자. 관우가 나를 보내 준 것을 후회하고 다시 올 지 모른다. 이제 짐이 되는 것은 모두 다 버려라. 무기를 포함해서... 오늘 남군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성에 들어 갈 수 있다면..우리는 모두 살아나는 것이 아니겠나 ?... 그러니 이..깃발도 버려버려라, "

조조는 깃대 없는 군기(軍旗)를 목에 걸친 병사에게 손가락질을 해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병사는,
"저... 승상 !"

적벽에서 주유에게 대패하고 산길로 도망하던 오림 서쪽 의도(宜都) 북방에서 겪었던 군기 사건을 알고 있는 병사는 선듯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조조는 그때와는 다르게,
"버려라, 아까워 하지 말고. 남군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까짓 깃발 같은 것은 얼마든지 만든다.
일으켜다오. 어서 떠나야지..."
"조심하십시오."

조조의 부하들은 일제히 조조를 일으켜 말에 태웠다.

그러나 환갑을 목전에 둔 조조는 기진맥진하여 말 위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말 잔등 위에 엎어졌다. 그런 뒤, 앞서 말고삐를 쥐고 걷는 병사에 의해 강가를 떠나 남군으로 향했다.
떠나는 군마(軍馬)들의 발굽에는 조조가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라고 강조하던 군기가 땅바닥에 버려진 채 사정없이 밟히고 있었다.

한편 주유의 진영에서는 연이은 승전 보고가 주유에게 속속 보고되었다.

"대도독 ! 정보 장군이 적군 오만을 죽이고, 전마 삼천 필을 노획했습니다 !"

"좋아 !"

"보고합니다 ! 대도곡 ! 능통 장군이 지금 개선중입니다. 적군 칠천을 죽이고, 대량의 군량과 무기를 노획했습니다 !"
"와아 !... 하하하 !"
주유의 장중에 입시해 있던 장수들의 환호성이 연이어 이어졌다. 이런 보고를 받는 주유의 눈꼬리와 입은 기쁨으로 연실 꿈틀거렸다.

이때,  주유의 장막 밖에선 손권이 노숙과 호위 군사를 대동하고 주유를 찾아오고 있었다.
"손견과 손책 장군도 생전에 수차에 걸친 전투에서도 이런 눈부신 전과를 거둔 적이 없었는데, 대도독께서는 정말 대단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 대도독 같은 위대한 영웅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
주유의 심복 장수인 여몽이 좌중을 돌아보며 주유를 추켜세우는 말을 하였다.
"맞습니다 !"
"맞아요 !"
좌중의 장수들은 한 소리로 주유의 승전을 경하하는 말을 쏟아내었다. 그러나 주유는 제법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사소한 승리에 뭣 들 이런 호들갑이요, 솔직히 조조를 향한 소주공의 굳은 결의와 탁월한 책략과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찌 승리할 수 있었겠소. "
"맞습니다."
"그래요, 그럼,그럼 !"

좌중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자, 그때까지 주유의 장막 밖에서 장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던 손권이 안면에 미소를 띠며, 주유의 장막 안으로 들어섰다.
손권이 입장하자 이를 본 주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공께서 오셨다."
하고, 말하자, 시립해 있던 장수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보며, 입장하는 손권에게 예를 표하였다.

손권은 자리에 앉자 곧바로 묻는다.
"대도독, 조조는 어찌 되었소 ?"
"조조는 수군 함대를 모두 잃고, 기병 수십 명과 화용도로 도주 했으며, 제 예상이 틀리지 않는 다면, 제갈양의 매복에 걸렸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조조를 놓쳐버린 것이오 ?"
손권은 적벽싸움에서 조조를 대파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만족스러웠으나, 자신의 군대가 끝내 조조를 죽이지 못한 것은 아쉽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주유는 일말의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놓친게 아니라 일부러 유비의 진영으로 몰아넣은겁니다."
그 소리를 듣고, 손권이 의문에 찬 시선으로 주유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주유가 계속 말한다.
"조조가 유비의 손에 죽어야 우리에게 유리하니까요."

손권은 그 말을 듣고서야  짐작되는 바가 있어, 주유를 향해 손을 들며 칭찬한다.
"대단하군요. 그런 지략을 쓰다니, 도독의 수(數)는 공명의 지략을 훨신 능가하는 일이요. 하하핫 !"

주유가 손권으로 부터 돌아서며 노숙을 향하여 입을 연다.
"자경, 마침 잘 오셨소. 선생은 지금 사구에 있는 유비의 진영으로 가서, 조조를 잡았는가 알아보시오. 또 간 길에 유비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아오시오."
"알겠습니다.

노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손권이 입을 열어 말한다.
"공근, 제갈양의 저의는 나도 알 것 같은데, 짐작되는 바가 없소 ?"
"그럼, 주공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주유가 순순히 물었다. 그러자 손권이,
"형주 ...저들은 틀림없이 형주를 취하려고 할 것이오. "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하였다.

한편, 유비는 책사 공명의 장중으로 몸소 찾아와서 그곳으로 답지하는 각군의 활약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화용도로 보낸 관우의 소식만은 전혀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유비가 근위병을 불러 물어 보았으나, 그 역시도, 새로 들어온 소식은 없노라고 아뢰는 것이었다.

이런 초조한 유비와는 다르게 향후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던 공명이 일순, 유비를 돌아보며 묻는다.
"주공께서 염려하시는 것은 관우입니까, 조조입니까 ?"
유비는 비로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공명을 향해 다가오며 말한다.

"당연히 관우 아니겠소. 익덕과 자룡은 돌아왔는데, 관우는 소식이 없질 않소 ? 조조는 선생이 예상한대로 패잔병들을 이끌고 화용도로 갔소. 운장은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조조를 잡겠다고 군령장을 쓰고 화용도로 갔으니 ..내 염려가 (어마무시) 크오."

"주공의 속이 타는 사정은 잘 알겠는데, 주공보다 더 속이 타는 사람이 있으니..."
공명이 말 끝을 흐리자 유비가 되묻는다.
"누구요 ?"

순간, 공명은 대답 대신에  작전도에 표시목(表示木)을 동쪽으로 올려놓았다. 그러자 유비는 단박에 눈치를 채고,
"주공근 ?..."
공명은 유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아니하고 미소만을 지어보였다.
그 순간, 연락병이 달려 들어오며,
"보고합니다. 주공, 노숙 대인이 오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명이 머리를 흔들며 말한다.
"아, 이 삼일 후에나 자경을 보내올 줄 알았는데, 공근이 이렇게 서두를 줄은 몰랐군요. 방법이 없군요. 객(客)을 맞이할 수밖에요."

그리하여 두 사람은 노숙을 맞아 장비까지 불러, 한 자리에 앉았다.
유비가 노숙에게 말한다.
"자경 선생, 동오가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맞아, 전무후무한 승리를 거둔 것에 경하드리오. 자, 우리 오후(吳后)를 위해 한 잔 드십시다."
유비가 술잔을 높이 들어 노숙과 공명, 그리고 장비까지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술을 한잔씩 마신 뒤에 노숙이 입을 연다.

"축하를 받을 분은 유황숙이십니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노숙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노숙의 말이 이어진다.

"조조가 대패한 후, 듣기로는 공명 선생이 미리 오림 일대에 미리 매복을 해 두었다니, 제가 볼 때에 조조는 독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유황숙께서 조조를 잡을 것이 분명한 것이고, 이는 후세에 길이 남을 큰 공을 쌓는 것이니, 천자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고, 조정에서도 그 공덕을 기릴 것입니다. 자, 유황숙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노숙은 이같이 말을 하고 술잔을 높이 들어보였다.
그러자 유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아니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고, 술 좋아하는 장비는 두 말 없이 대뜸 마셨으나, 공명은 술잔을 들지도 아니하고 어색한 웃음만을 지어보였다.

"허허헛 !...자경, 동오가 적벽에서 승리하지 못 했다면, 우리 주공의 이만 군사만으로 어찌 조조군을 대파할 수 있었겠소. 조정에서 공덕을 기린다면 마땅히 오후께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요."
"그보다 지금 이 순간까지, 조조의 생사가 불확실한데, 혹시 누가 화용도를 지키고 있는지요 ?"
노숙이 공명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염려의 말을 곁들인다.
"혹시, 조조를 놓치지 않을까 해서요...."

노숙의 말을 장비가 받아치고 나온다.
"걱정마슈, 우리 관우 형님께서 친히 화용도를 지키고 계시니 조금있으면 조조의 목을 가지고 돌아오실 거요."
이로써 공명이 대답할 필요도 없이,화용도로 나간 유비의 장수는 관우라는 것이 노숙에게 알려졌다.

노숙은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 관 장군이라면 조조도 끝장이겠군요."
하고, 대답하며, 반드시 조조가 죽었으리라고 믿는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노숙의 대답을 듣는 유비와 공명은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의리를 중요시하는 관우의 성품상, 예전에 받은 조조의 은혜로 인해, 그가 비록 군령장을 쓰고 출전을 하였으나, 조조의 목을 반드시 가져온다는 장담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유비와 공명은 다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노숙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문 밖에 관우가 슬며시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유비가 관우를 발견하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장비도 문밖에 망연히 서있는 관우를 발견하고,
"어,엇 ! 형님 ? ...'
하고, 달려나갔다.
"형님 ! 들어 갑시다 ! "
장비는 이렇게 말하며 관우에게 다가섰지만, 관우는 무표정으로 들어올 기색이 없었다. 관우는 장비의 손에 이끌려 장중으로 들어왔다.

그때, 공명은 조금 전에 마시지 않고 있던 술잔을 들고 관우에게로 다가갔다.
그리하여 장중의 가운데서 마주친 공명이 관우를 향하여,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셨으니, 경하드립니다. 한실의 역적을 제거하셨으니..."
하고, 관우가 조조를 죽였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어조로 말하면서 술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관우는 고개를 수그리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아니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공명이 다시 말한다.
"아, 관 장군. 혹시 제가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고 섭섭하셨습니까 ?"

그래도 관우는 고개를 수그리고 대답하지 않았다.
유비는 짐작되는 바가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아니하고 장중 가운데에 세 사람만을 건너다 보았다.
노숙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관우와 함께 들어온 마속에게 공명이 추궁조의 말을 한다.
"이보게 유상(마속의 字), 자네는 어째서 관장군이 개선하시는데 미리 고하지 않았던가 ?"

"그게..."
마속이 대답을 주저하자, 관우가 비로서 고개를 수그린 채로 입을 연다.
"아뢰옵니다, 주공, 군사 ...관우가 조조를 놓쳤습니다.

유비와 노숙은 물론 공명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제일 먼저 반응한 사람은 공명이었다.
"아, 아니 ?... 제 예상이 틀렸던 겁니까 ?"
공명은 관우에게 추궁하듯이 물었다. 그리고 관우의 대답이 없자, 잠시 기다린 뒤에 다시,
"조조가 화용도로 오지 않았던가요 ? "
하고, 물었다. 그러자 관우의 대답은 즉각 나왔다.

"아니오, 군사의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조조가 그 길로 왔지만 제가 무능해 놓치고 말았습니..."
관우가 말 끝을 맺지 못하자, 오히려 장비가 놀란다.

"어,엇 ?"
"이런 !..."
공명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관우로 부터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유비는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고 말 없이 관우를 건너다 보기만 하였고,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된 노숙은 망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장중의 세 사람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어조로,
"관 장군 ! 장군에게는 적토마가 있고, 청룡 언월도를 지니고 있어, 천하의 무적인데, 궁지에 빠진 조조를 어찌 놓친단 말입니까 ?"
하고, 격앙된 소리를 내뱉었다. 

그 순간, 공명은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자경 말씀이 맞소 !  관 장군 ! 장군은 분명히 조조의 옛 정을 잊지 못 하고, 죽이지 못 하고, 그냥 놓아 준 게로군요 ! 안 그렇습니까 ?"
공명의 추궁은 서릿발 같았다. 관우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대답한다.

"그렇소, 죽일 수 없었소..."
"엇 ?"
"아니 !..."

관우의 대답에 장비도 놀라고, 공명도 놀랐다. 특히 공명은 관우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유황숙 !"
관우의 대답을 옆에서 지켜보던 노숙이 상기된 얼굴과 핏발 선 눈으로 유비를 격한 어조로 불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