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4. 19. 13:29
제목 없음

삼국지(三國志) (276) 버림받은 노신 순욱(老臣 筍彧)

 

조조를 위왕에 봉한다는 헌제의 결정이 있자, 조회(朝會)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리하여 대소 신하들이 조회가

파하자 조조의 앞으로 모여들어 축하의 말을 쏱아내었다.

"축하드리옵니다 !"

"경하드리옵니다 !"

"진작에 있었어야 할 일이온데..."

"응 !"

조조는 만장한 축하의 인사를 받으며, 당연한 일이었다는 듯이 대꾸하였다.

 

한편, 조회에 참석했던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曺植)이 장락궁 밖으로 나오자,  수행비서인 이주(伊周)가 수레

앞에서 그를 맞는다.

"공자 ?"

"응, 일이 잘 되었네. 크나 큰 경사야. 아버지께서 위왕으로 책봉 되셨다네."

"하 ! 경하드립니다 !"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으니, 어서 시회(詩會)로 가세 ! 기다리던 벗들에게도 이 낭보를 전해줘야겠네 !"

 

조조에게는 본래 다섯 명의 아들이 있다. 첫째 조앙(曺昻)은  조조를 따라 남양(南陽)의 장수(張繡) 정벌에

참전했다가 죽은 바 있으며(삼국지 93 ~ 94편 참조) 둘째 조비(曺丕), 셋째 조식, 넷째 조창(曺彰), 다섯 째

조웅(曺熊)이 그들이었다.

조조는 그중에서도 머리가 총명하고 시문(詩文)의 재(才)가 밝은 세째 아들 조식을 가장 사랑했다.

그런 조식이 조회가 끝난 뒤에, 궁밖의 시회에 참석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주의 대답은,

"어느 문으로 나가야 할 지 알려주십시오."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 이에 조식이 고개를 기울이며,

"무슨 차이가 있지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이주가 대답한다.

"동문(東門)으로 나가면 반 시진이 걸릴 것이나, 백마문(白馬門)으로 가면 바로 나갈 수가 있지요."

"그럼, 백마문으로 나가세 !"

조식은 이렇게 말을 한 뒤에 수레에 오르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주는,

"잠깐만요, 공자 !"

하고, 조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왜 그러지 ?"

조식이 돌아서며 묻자, 이주는,

"허지만, 천자의 수레가 아니면  백마문으로 출입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조식이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그건, 다른 대신들의 문제이지, 우린 백마문으로 나가세 !" 

하고, 자신만만하게 말하였다. 

 

그리하여 조식이 탄 수레는 그들의 앞에 있는 백마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문장에게 이주가 소리쳤다.

"문을 여시오 !"

수문장이 대답한다.

"천자의 수레가 아니면 백마문으로 출입할 수 없습니다 !"

이 소리를 듣고, 수레안의 조식이 호통을 내지른다.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 ? 어서 문을 열지 못할까 ?"

조식의 호통과 동시에 이주가 칼을 뽑아, 수문장을 겨냥하였다. 그러면서,

"당장 공자의 명을 따르거라 !"

하고, 호통을 질렀다. 그러자 수문장은 막강한 힘을 가진 조조의 아들 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데다가, 당장

눈 앞의 칼도 위협하므로 수문지기에게 명한다.

"열어라 !"

그리하여 백마문 앞으로 수레가 출발을 하려는데 누군가가 수레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조식이 탄 수레를 가로막은 사람은 늙은 몸을 이끌고 사가(私家)로 돌아가는 노신 순욱이었다.

"안에 탄 사람이 누구인데, 감히 백마문으로 나가려고 하는가 ?"

순욱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한 어조로 꾸지람을 하였다. 그러자 순욱을 알아 본 조식이 수레에서 내리며, 

"아 ! 순대인, 급한 일이 있어 나가야 하니, 좀 비켜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흥 ! 아무리 급하다 해도, 황실의 법도를 어겨서는 아니되지요."

순욱의 대답은 쌀쌀맞기 그지 없었다. 

그러자 조식은,

"위왕의 명을 받아 급히 나가야 하니, 어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조식은 당당히 말하였다. 

그러자 순욱은 코웃음을 치며,

"후후훗, 위왕의 명이라 ?...왕실의 법도는 천자께서 정하신 겁니다. 허니, 난 비킬 수 없소."

순욱의 고집은 완강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지나가고 싶다면 날 밟고 가시오."

하고, 말하기 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식이 핏대를 올리며.

"순대인 ? ..정말 이럴꺼요 ?"

하고, 반말 투로 말하면서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순욱이 조식을 무시하는 태도로,

"흥 ! 아비가 황실 법도를 어기며 막무가내니... 자식도 그리하는 게 아닌가 ?... 이게 무슨 추태인가 ?"

하고, 눈길을 흘기며 말하는 것이었다.

"순대인 !"

조식이 쌍심지를 켜고 눈알을 부라리며 노신을 꾸짖었다. 그러면서,

"그러면 어쩌라는 말이오 ?"

하고, 따지고 들자, 순욱은 대번에 다른 쪽 문을 향하여 손짓하며,

"당장, 다른 문으로 나가시오 !"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안색이 굳은 조식이 순욱에게 돌아서며 소리친다.

"이봐, 이주 ! 뚫고 가 !"

"예 !"

이순간, 수레 쪽으로 돌아선 조식의 앞에 조조가 나타났다.

"어 엇 ? 아버님 !"

조식을 비롯한 그의 수행원 모두가 급작스럽게 나타난 조조에게 예를 표해 보였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던 조조는 아들 조식에게 다가서더니, 다짜고짜 뺨을 후려 갈겼다.

아버지에게 한대 얻어 맞은 조식이 허리를 깊숙히 굽히며 말이 없었고, 이를 지켜 보던 순욱조차 말 없이

조조의 거동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조조가 주위를 돌아보며 묻는다.

"백마문 당직이 누구냐 ?"

"아뢰옵니다. 소장입니다 !"

수문장이 예를 표하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즉각 호위대장을 부른다.

"허저 ?"

"예 !"

"저놈을 데려다 참하라."

 

조조의 명은 냉철하였다. 조조의 호위 군사가 달려들어 수문장을 끌어내자,

"위왕 !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 살려주십시오 !"

수문장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군사들에게 끌려갔다. 그 모습을 본 순욱이 조조를 향하여,

"승상 !"

하고 부르자 조조는,

"난 위왕일쎄 !"

하고,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표현을 해보였다. 그러나 순욱은 역시,

"승상, 규율은 공자가 어겼는데, 어찌하여 수문장을 죽이십니까 ?"

하고, 말하니, 조조가 순욱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문을 열지 않았다면 식이가 왜 규율을 어겼겠나 ? 이건, 내 규율이네. "

"문을 연 것은 죽어 마땅하지요. 허면, 조정에서 승상께 왕으로 봉하도록 문을 연 백관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지

않나요 ? 예 ? ..."

 

순욱의 대꾸는 조조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조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순욱을 뚫어

져라 쳐다 본다. 그리고 순욱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으 헤헤헤 !...이보시오 순욱 !  우리가 삼십 년을 함께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날 거스르는거요 ?"

조조는 이렇게 말하며 허저를 부른다.

"허저 ?"

"예 !"

"저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

순욱은 잠시전에 수문장이 끌려 가는 것을 보았기에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조조는,

"으 헤헤헤 !... 이보시오, 순욱 ! 그런 염려는 마시오. 나는 공신을 죽인 적이 없소."

하고, 말하면서, 다시 허저에게 못다한 명을 내린다.

"허저 ? 당장 백마문을 철거해라."

"알겠습니다 !"

허저가 두손을 모아 올리며 명을 수령한다.

"이보시오, 순욱 ? 잘 지켜 보시오. 이제 저 백마문이 없어지고, 백주 대낮에도 누구든지 드나들 수가 있다면

당신이 말한 규율이 어디있겠소 ? 응 ?... 헤헤헤헤 !..."

조조는 이같은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홀연히 떠나 백마문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순욱은 조조가 떠나자 조조의 명으로 천자만이 드나들던 곧 부숴질 운명에 처한 백마문 현판을 바라보며 기침

을 해 대더니 노구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어지고 말았다.

아무도 그를 부축해 주지 않는 가운데...

"순대인, 순대인 !..."

 

그러나 한참이 지난 뒤에 그를 알아보고 부추켜 일으켜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시중소위(侍中小尉)로

있는 경기(耿紀)라는 사람이었다.

           ...

 

이후로 조조는 십이류(十二旒) 면류관을 쓰고, 금과 은으로 장식한 여섯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무시로 황궁

을 제 집 드나들 듯이 다녔다. 말이 왕일 뿐이지 사실상 천자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업군에다 천자의 황실을 능가하는 위왕궁(魏王宮)을 짓게 하였으니, 조조의 위세는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백마문 사건이 있은 며칠후, 조조는 순욱의 동태를 묻기 위해 정욱을 불러들였다.

"전하 ! 부르셨나이까 ?"

정욱이 위왕 조조에게 알현을 고하였다.

"백마문은 철거 했는가 ?"

"철거 했습니다."

"순욱이 훼방 놓지는 않던가 ?"

"그 사건 이후, 집으로 돌아가서는 바로 몸져 누워 며칠 째 굶고 있다 합니다." 

"에잉 ! 먹질 않아서야 되나 ? 거기 과일이 좀 있으니, 당신이 내 대신 가져 가서 들여다 봐."

"알겠습니다."

 

정욱은 조조의 탁자위에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삼단 찬합을 들고, 순욱의 사가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려, 상심과 울홧병으로 누워 있는 순욱의 앞으로 향한다. 

 

순욱은 머리에 수건을 감고 누워 있으며 정욱이 들어오자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문약(文若: 순욱의 字), 문약 ?... 좀 어떠시오 ?"

정욱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욱을 거푸 부르면서 정신차리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희미하게 눈을 떠 보인 순욱이,

"자네 왔는가 ? 승상께서 가보라고 하시던가 ?"

하고, 조조를 왕으로 칭하지 아니하며 물었다. 

그러자 정욱은 이렇게 대답한다.

"위왕께서 줄곧 염려하시다가 살펴보라고 하셨소. 그러시면서 과일 좀 들라고 보내셨소."

순욱은 이렇게 말하면서, 조금 전 들고 들어온 삼단 찬합에 눈길을 주었다. 

순욱도 정욱이 말한 찬합을 한번 쳐다 보더니, 몸을 반쯤 일으키면서,

"이제, 가 보게나."

하고, 말한다. 정욱은 이런 순욱의 태도로 보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며 순욱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그럼, 몸조리 잘 하시오."

정욱이 물러나가자 비로서 순욱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조가 보냈다는 과일 찬합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찬합 속은 비어있었다.

일단도, 이단도, 삼단도 ...

 

이것을 심각한 의미로 받아들인 순욱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낙심 천만한 얼굴이

되었다. 과연 조조가 보냈다는 과일을 담은 찬합통이 모두 비어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순욱은 조조가 빈 찬합 통을 보낸 의미를 곧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허탈한 웃음을 웃어 젖혔다.

"허, 허, 허, 헛 !...."

빈 찬합 통을 내려 놓은 순욱이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하여 허탈한 웃음을 웃어 젖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회한이 어린 눈으로 하늘을 향했다.

순욱은 청려장을 놓고, 좌대에 호신용 칼을 빼어들었다.

                ...

 

다음 날, 조조는 아들 조비를 데리고 순욱의 상가에 문상을 왔다. 순욱의 상가에는 이를 지키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조비의 손에는 이단 찬합이 들려 있었다. 조비는 순욱의 위패가 놓인 젯상 위에 가져온 과일을 찬합

째 올려 놓았다. 그런 뒤 향을 빼들어 아버지에게 올린다.

향에 불을 붙인 조조가 순욱의 위패 앞에서 독백하듯 중얼거린다. 

"이보시오. 문약(순욱의 字) ... 이제, 편히 쉬시오. 그거 아시오 ? 지나간 그때가 그립소. 순욱, 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날 나도 없었겠지... 그 옛날 당신은 서주의 도겸 정벌 때, 연주를 지키며 전심전력으로 군량을 공급해 줬

지...장막의 반란 때는 각 군현에서 들고 일어난 도당을 당신이 우리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주어, 우리를 살려주

었지, 건안 5년, 관도전투 당시에는 군량 부족으로 군심이 혼란하자, 장수들 모두가 후퇴하자고 했지만 당신만

은 끝까지 버티라고 권하며, 군량과 무기를 계속 보급해 주어, 요행히 원소군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게 해주

었지... 문약 !... 당신은 나의 장량, 장자방이었고, 나의 오른 팔이자 왼팔 이었고 또 나의 형제와 다름없었소.

애석하오 ! ... 애석해 ! 같은 길을 못가서..."

 

조조는 이렇게 말한 뒤에,

"비야 !"

하고, 아들을 부른 뒤에,

"가슴이 아프구나 !..."

하고, 말하였다. 

"예 ! 이해합니다. 아버님께선 보내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없이 보내신거지요. 더구나 순대인은 아버님의

지기였습니다. "

"들으셨소 ? 문약, 조비 말이 맞소. 당신은 내 허물없는 지기였지, 허나, 당신은 천하인들 처럼 나 조조를 잘못

봤소. 기다리시오, 시간이 증명할 것이오. 당신이 날 떠난 건 실수라는 걸... 크나 큰 실수 !"

이렇게 말한 조조는 향을 향로에 꼿고 그대로 돌아섰다.

             ...

 

*인물평

순욱(筍彧 : 자 = 문약(文若)) 163 ~ 212년.

조조의 모사(謀士), 본시 원소의 수하로 있었으나, 원소가 큰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되자 기회를 찾던 중 조조가

청주(靑州)에서 황건적을 칠 때 그의 막하에 순유와 함께 참여하였다. 

이후 조조는 군대와 국가의 큰 일을 모두 순욱과 더불어 계획하였고, 순욱도 조조를 위하여 평생을 바쳤으나,

그가 위왕(魏王)이 되어 천자 위에 군림하려 하자, 이를 반대한 이유로 조조의 노여움을 산 뒤, 위문 물품으로

빈 과일 찬합 통을 받음으로서, 순욱은 그토록 믿었던 조조와의 사이가 서로 마음은 없는 사이였음을 깨닫고

스스로 자결하기에 이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