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6. 7. 15:11
제목 없음

삼국지(三國志) (306) 핍박받는 천자(天子)

 

그 길로 태묘로 향한 천자 유협은 수행하는 시종도 하나 없이 단신으로 허둥지둥 계단을 올랐다.

그리하여 선조들의 위패 앞에 주저 앉아 통한(痛恨)의 눈물을 흘렸다.

"선조 대왕님들 ! 보셨습니까 !... 흐흐흑 ! 간신과 역적들이 권좌를 빼앗으려 합니다. 흐 흐 흑 ! ... 이몸이 무능

하여 이런 수치를 당합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 흐 흐 흑 !..."

 

이렇게 황제 유협은 조상의 위패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울부짖었다.

그때 등 뒤에서,

"황상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천자가 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그 곳에는 조조의 맏딸이자 자신의 부인인 조 황후(曺皇后)가 자신을

측은한 눈길로 지켜보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 순간, 천자는 악에 바친 소리를 내질렀다.

"조상님들은 너희 조씨(曺氏)를 싫어 하신다 ! 썩 꺼져라 !"

그러나 조 황후는 오히려 천자에게 다가선다. 그러면서,

"신 첩은 조씨이지만 지금은 유씨(劉氏) 집안 사람입니다. 황상께서 신첩을 황후로 세우셨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천자의 옆에 주저 앉았다. 그 순간,

"당장 꺼져버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

황제 유협은 조 황후를 그대로 밀쳐버렸다.

"어, 엇 !"

조 황후는 비명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어, 엇 ?"

천자 유협은 조 황후가 넋을 잃고 나뒹굴자, 순간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그리하여,

"황후, 황후 ! 다치지 않았소 ?"

하고, 조 황후의 안위를 걱정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조 황후는 오히려,

"황상 ? 황후라 하셨습니까 ?"하고, 고개를 기울이며 감격에 겨운 어조로 묻는 것이었다.

 

황제 유협은 조조와 함께 허창으로 오면서 조조의 강권으로 그의 맏 딸을 후궁(後宮) 귀비(貴妃)로 맞은 바가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의 국구 (國舅: 제왕의 장인) 동승(董承)의 조조 암살 미수사건을 계기로 동승을 비롯한

동귀비(董貴妃)를 무참히 목졸라 죽인 뒤,

그 자리에서 자기 딸을 불러 들여, 황후로 봉하도록 하였다. (관련글, 116편 동승 일족의 참살편 참조)

그런 뒤에 천자 유협은 조 황후를 <황후>라 부르지 않았었다.

그것은 조조의 대한 천자 유협의 유일한 반심(反心)의 표현이었다.

그러려니, 조 황후는 천자 유협과 함께 살면서도 제대로 된 격식(格式)의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남편 유협이 자신을 <황후>로 불러주는 것이 아닌가 ?

"황상, 황후라 부르셨습니까 ?"

조 황후는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감격에 겨운 어조로 다시 한번 남편에게 물었다.

"황후 ! 짐이 실수 했소. 심신이 혼란하여 황후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소. 괜찮으시오 ?"

하고, 울먹이며 물었다. 그러자 조 황후는,"모두 동생(조비를 지칭함) 때문입니다. 전 괜찮습니다.

이렇게 하시어 황상의 속이 풀리신다면 매일 맞아도 상관없습니다."

조 황후는 비로서 남편인 천자 유협에게 대접을 받는 것에 감격하며 말하였다.

두 양주(兩主)가 이렇게 소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태묘(太廟) 밖에서는 부산한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장군 조홍(曺洪)과 조휴(曺休)가 다수의 측근 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무엄하게도 무장을 한 상태로 태묘에 들이

닥쳤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느닫없이 나타난 이들로 인하여 긴장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하여 조 황후가 두 사람을 알아보고 그들을 향해 호통을 친다.

"조홍, 조휴 ! 여긴 무슨 일이냐 ! 이곳은 신성한 태묘이거늘 어찌 무장을 한 채로 들어온단 말이냐 !"

그러나 조휴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아니하고,

"폐하, 황후 ! 선양을 독촉하러 온겁니다 !"

하고, 대답한다. 그러자 조 황후가 발끈 성을 낸다.

"너희 둘은 조씨 가문의 자손이자, 폐하의 신하가 아니더냐 ? 선양 ? ... 무엄하구나 ! 너희들이 관여할 수없는

일로써 허툰 짓을 한다면 오늘 내가 너희들을 죽여주리라 !"

"그래요 ? 나를 죽일 생각이라면 어디 검을 뽑아보시오 !"

조홍이 장도(長刀)를 들어 보이며 말하였다.

"조홍 ! 무엄하다 ! "

황후가 소리쳤다. 그러자,

"흥 !"

하고, 코웃음을 친 조홍이 돌아섰고, 이어서 조휴가 말한다.

"황후 ! 이 일에는 관여치 마시오, 폐하 ! 가시죠. 만조 백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하고, 황후를 외면하고 천자만을 닥달하는 것이었다.

 

기세 등등한 장군들 위용앞에 쩔쩔매는 천자 유협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조 황후가 다시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조홍, 조휴 ! 선왕께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고 이를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감히 네놈들이 위왕을 도와 역모를

꾀하다니,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

그러나 두 장수는 자신들의 사촌 누이인 조 황후의 노여움에는 대답치 아니하고,

"폐하 ! 어서 조정에 드시지요 ! 아니면 저희들이 끌고 갈 겁니다 !"

하고, 천자 유협만을 닥달하는 것이었다.

천자가 이들을 따라 나서려 하자, 황후가 그의 옷깃을 잡으며,

"폐하 ! 저 놈들을 상대하지 마십시오. 폐하는 천자입니다. 저들이 감히 어쩌지 못합니다."

하고 말했지만, 천자는 고개를 가로 젖는다.

"흥 !... 천자 ? ... 손바닥 위에 천자 !... 픽박이나 당하는데 어찌 하란 말인가 ?"

 

이같이 말한 천자 유협은 황후의 손을 뿌리치고 조흥, 조휴에 앞서, 태묘를 나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