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6. 17. 09:45

삼국지(三國志) (311) 한중(漢中)에 태동하는 제위(帝位) 문제

 

얼마 뒤, 천자가 조비에 의해 폐위 당하고, 산양공으로 격하되어 임지로 가던중 배가 침몰하여 황후와 더불어

수장(水葬)되었다는 소식이 한중에 전해지자 너무도 놀라운 소식에 유비가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급기야 자리를

보전하고 드러누웠다. 

                 ...

 

유비는 곧이어 궁전 밖에 제단을 쌓고 헌제의 제사를 융숭하게 지냈다.

"신, 유비가 대행 황제(大行皇帝)께 절을 올립니다. 황제 폐하 !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어린 시절엔 역적들

에게 능욕을 당하고, 그 뒤에는 조조에게 억압을 당하시더니 결국, 이렇게 생을 마감하게 되시다니요... 피 맺힌

원한을 다 갚지도 못했는데 나라가 사라져버렸으니 원통할 따름입니다... 이 모두가 신의 잘못 이옵니다. 역적

을 토벌하고 한나라를 부흥시키라는 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

했습니다. 폐하의 바람을 저버렸으니 그 죄가 크옵니다. 으 흐흐흑 !..."

 

유비는 공명과 이엄, 손견, 마속 등 백관들과 조운, 위연, 등 장수를 총 망라한 대소 신료들을 대동하고 제단

앞에 꿇어 앉아 눈물을 흘리며 제사를 지냈다.

"유비가 하늘에 맹세합니다. 천자는 떠나셨지만. 한은 영원 할 겁니다. 신 유비가 한나라의 대업을 이어 받아

천하 역적을 소탕하고 한을 재건하겠습니다 !"

유비가 제단 앞에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자, 공명이 옆에서,

"주공, 한나라를 재건할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하고, 말을 하며 조운을 건너다 보았다. 그러자 조운이,

"주공, 천자께서 떠나시어 나라에 주인이 없는 상태입니다. 역적의 아들 조비가 제위를 찬탈했으니 한나라의

대업을 계승하고자 하신다면 주공께서 이젠 제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자 장군 위연이 말을 이어 받아,

"옳은 말입니다. 주공께서 황제가 되셔야 명실상부하게 한의 대업을 계승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머지 대소 문무 백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책사 선생과 장군의 말씀이 지당하옵니다. 대왕 ! 이제 제위에 오르십시오 !"

유비는 그 소리를 듣고 펄쩍 뛰며 놀란다.

"무엄하다 ! 제위를 찬탈한 조비를 역적으로 규명한 나에게 경들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이오 ? 그러면

나 역시 조비와 같은 불충한 인간이 되란 말이오 ?"

조운이 다시 나서며 아뢴다.

"대왕은 한실의 종친이 분명하신데 어찌 조비와 비길 수 있겠습니까? 한나라를 부흥시켜 자손 만대에 전하기

위해서 대왕께서 제위에 오르시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한나라를 계승할 수 있겠습니까 ?"

"경은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불충한 말을 들려주는가 ?"

"아닙니다. 대왕께서 제통(帝統)을 계승치 않는다면 한나라의 사직은 그대로 멸망하고 말것이니 대왕께서는

그 점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마속이 이어서 말을하니 유비는,

"나는 그만한 덕이 없는 사람이니 행여 그런 말은 말아 주시오."

하고,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내전으로 들어가 몸져 누운 후, 다시는 문무 대신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공명에게,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정무를 볼 수가 없으니, 나랏일을 살피라>는 명을 내렸다.

 

여러 날에 걸쳐 공명이 정사를 살피던 중 어느날 이엄에게 묻는다.

"이 대인 ? 대행 황제께 제를 올릴때, 모두가 주공께 제위에 오르시길 청했는데 어찌 가만히 있었소 ?"

"예, 아뢰옵니다. 그 날 여러 대신과 장군들이 주공께 간곡히 청했기 때문에 소인이 굳이 끼어들 필요가 없었

지요..."

이엄은 머리를 숙이며 정중히 말하였다. 

"으, 음 ! ... 앉으시오. 잠시 애기 합시다."

"네, 선생."

이엄이 자리에 앉자 공명이 다시 입을 열어 말한다.

"이 대인, 그대는 항상 나를 대할 때에 극도로 예를 갖춰 대하는데, 왜 그러는지 의문이 생기는구려."

"아, 그건... 선생을 존경하기 때문에 예를 다하는 것 뿐이지 다른 뜻은 전혀 없사옵니다."

"허허허허 !... 그럴 것 없소. 우리 모두는 대왕 전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서로 잘 지내야지... 허니,

너무 격식을 차리지 마시오. 그래야 모두가 편할 것 아니오 ?"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공명과 이엄의 대화는 따사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공명이 급박한 기침을 하며 가슴을 쥐어잡았다.

"선생 ! 왜 그러십니까 ?"

이엄이 깜짝 놀라며 공명 옆으로 달려들었다.

"숨을... 쉴 수가... 없소 !..."

공명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하였다.

"어서, 의원을 모셔오너라 !"

이엄이 밖을 향하여 소리쳤다.

                 ...

 

한편, 대행 황제 유협의 제사를 마친 유비는 공명에게 정사를 맡겨 놓고, 두문불출 하며 내실에 칩거하여 아들

유선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물평.

유선(劉禪) 207 ~ 271년.

유비의 아들로 그의 뒤를 이은 촉의 2대 황제로 어릴적 아명은 아두(阿斗)였다.

재위는 223 ~ 263년으로 감 황후(甘 皇后) 태생이다. 무능한 인물로서 제갈양에 이어 장완(蔣琓), 비위(費褘)

가 보좌하고 있는 동안은 나라가 평안했으나, 그들이 잇달아 죽은 뒤 유선은 환관 황호(黃皓)를 신임하여 부패

를 초래했다. 

이어서 위나라의 공격을 받아 성도(成都)가 함락됨으로서 3국 정립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위나라는 유선을

안락현공(安樂縣公)에 봉했는데 그는 죽지 아니하고 이렇게 된 것에 만족해 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의 세상 사

람들의 조소를 받았다고 한다. 그후 중국에서는 그의 아명인 <아두(阿斗)>는 무능한 사람을 가르키는 대명사

가 되었다. 그런 영향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슬기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르킬 때에는 <아둔(阿鈍)>

하다고 한다.

                      ...

 

유선은 유비의 바람에 못 미치는 인물이었다. 고래(古來)의 역사를 가르쳐도 잊기 일쑤였고 대답조차도 불명확

하여 이를 지켜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이런 것을 알고 있는 유비는 자신의 후사가 지극히 염려되어

마침내 아들을 붙잡고 몸소 교육에 나섰다. 그리하여 선조대의 일을 거론하며 이를 기억하고 있는지 물었으나

아들의 대답은 횡설수설하기만 하였다.

 

유비가 아득한 심정이 되어 버럭 화를 냈다.

"아두야 ! 고조 본기를 사흘 동안이나 읽었거늘, 어찌 모두 외우지 못한 것이냐 ! 이리 오너라 !"

유비가 아들을 앞으로 부르니 유선이 아버지의 손이 회초리로 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어,어, 엇 !"

"손을 내밀어라. 스무 대다. "

유비는 아들에게 손바닥을 내밀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 걱정했다.

(흠 !... 사내놈이 이까짓 회초리 가지고 저렇듯 놀라다니 !... 쯔 쯧 !...)

유비는 자신의 어릴적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쫄장부> 아들의 모습에 혀를 찻다.

유비가 아들의 손바닥에 회초리를 가했다.

"아 앗 ! .. 아,아 ! ..."

유선은 회초리를 맞으며 갖인 엄살을 부려댔다. 곁에서 이런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보던 손건(孫乾)이 나서며

만류한다.

"주공, 세자의 손이 부어있으니 그만 때리십시오."

유선은 어제도 아버지에게 한차례 손바닥 찜질을 당한 바가 있었다. 

유비가 회초리를 놓으며 아들에게 말한다.

"물러가라, 다시 검사 할 테니 더 열심히 해라."

하고, 말한다. 그러자 유선은,

"알겠습니다 !"

대답하곤 총총히 나가버린다. 

"허 !... 공오(恭悟: 손건의 字) 세자가 저리도 어리석으니 어찌 내 뒤를 잇게 할지..."

유비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그러자 손건이,

"주공... 세자께선 아직 어리시니 심려치 마십시오."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크면 나아져야 할 텐데 ... 공오, 날 따른 지 얼마나 됐지 ?"

 

유비는 화제를 돌려 손건에게 물었다. 

"주공을 중평 3년 (서기,186년)부터 모셨으니... 올해(서기, 221년)로 삼십육 년 째 입니다."

"허 !... 세월이 정말 빠르군. 벌서 삼십육 년이나 흘렀어 ?... 그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사람들은 이제 몇 남지

않았어... 허 !..."

유비는 새삼스럽게 인생무상(人生無常)의 감회가 밀려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자 손건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주공,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젠 제위에 오르십시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겁니다."

"혹시... 공명이 그리 하라던가 ? "

유비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자 손건은 고개를 흔들며.

"아닙니다. 신의 생각입니다. 주공께서 황제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옵니다. 또 이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고맙네, 생각해 보겠네." 

유비는 최측근 손건의 말에 성의있는 대답을 하였다. 

그때, 이엄이 들어와 아뢴다.

"주공, 공명 선생이 갑자기 몸져 누웠습니다. 정무가 많으나 아무도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하고, 걱정조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유비가 몸을 일으키며 그 역시 걱정스런 어조로 말한다.

"공명선생이 몸져 누웠다고 ? ... 문병을 가겠으니 채비하게."

"예..."

이엄이 앞서서 유비를 인도하였고, 유비는 손건에게 함께 갈 것을 물었다. 그러자 손건은,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주공께서는 다녀오시죠."

하고, 대답한다.

"응 ..."

 

유비는 공명이 몸져 누웠다는 곳을 찾아갔다. 공명은 유비가 들어서자 병석에서 몸을 일으키며,

"아 ! 주공..."

하고,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만류하며,

"아, 그대로 누워계시오."

하고, 말하면서 공명의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이어서 물었다.

"어쩌다가 병상에 누운거요 ?" 

"가슴이 돌에 눌린 듯이 너무 답답합니다."

"어찌 그런 것이오 ?"

공명은 대답대신 화제를 돌려 말한다.

"화흠을 아십니까 ?"

그 말을 듣고, 유비가 눈을 깜빡이며 곧 대답한다.

"알지, 조비가 아끼는 신하이지 않소 ? 그 자가 천자에게 양위를 강요하여 지금 상국(相國)이 되었다고 들었소."

"화흠과 관용이 함께 수학(修學)한 적이 있는데, 고관(高官)이 지나갔답니다. 관용은 계속 책을 보았으나

화흠은 책을 던져버리고 구경하러 밖으로 나갔지요. 그러자 관용은 칼로 책상을 가르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너는 내 벗이 아니다."

"음 !... 관용과 화흠에 대한 애기는 나도 들은 적이 있소."

"지금 화흠은 고관 대작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으나, 관용은 관직에 나오지 않았습

니다. 주공, 관용과 화흠 중에 누가 더 나은 걸까요 ?" 

"말해 뭣 하겠소. 관용은 군자이고 화흠은 소인배이지."

"허나 조비는 화흠의 뜻을 받아들여 황제가 되었습니다. 신도 같은 청을 드렸지만 주공께서는 거절하셨습니다.

주공... 화흠이 소인배라 할 지라도 조비는 아닙니다. 보위를 찬탈한 것은 현명한 판단입니다. 주공과 천하를

다투려면 먼저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조비는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조비는 탐욕스럽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랐던 것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한나라의 위업을 계승하시려면 황제가 되셔야 합니다."

"선생,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지난날 한중왕이 되었을 때, 그때는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찌 이렇게 적극적인 것이오 ?"

"그것이 궁금하셨군요. 진작 물어 보셨으면 됫을 것을 ... 어찌 마음에 담아 두셨습니까. 그때 그리하지 않았던

것은 혹여나 병사들이 자만심에 빠질까 염려되었던 것입니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변했습니다. 황제가 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조비가 황제 자리를 굳히게 될 것입니다. 한의 조정이 사라졌으니까요. 주공께서

인의를 앞세워 황제가 되지 않으시려 한다면 머지않아 인재들은 주공 보다는 조비에게 의탁하려 할 것입니다."

"음 !... 조조가 강한 군사들을 지녔고, 천자와 제후들을 끼고 천하를 호령했으나 죽을 때 까지 황위를 찬탈하지

는 않았소."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기저기서 군웅이 활개했기에

조조가 황제를 칭한다면 스스로 황제를 칭하는 자들이 많았을 겁니다. 조조가 가장 경계했던 사람은 바로 주공

이었겠지요. 그러니 황제가 되는 것을 포기한 겁니다. 천자를 손에 쥐고 권력을 휘두르면 됬으니까요. 허나 지

금은 한 황실이 무너져버린 상황이니, 한나라를 재건 하시려면 이젠 주공께서 황제가 되셔야 합니다. "

"제위에 오르길 거절한 것은 비난이 거세질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오."

 

공명이 몸을 일으키며 안타까운 어조로 말한다.

"아 ! 정당하지 않을 때에는 그렇지만 한나라가 없어진 명분이 있는데 뭘 걱정하시는 겁니까. 지금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 만이 길입니다." 

유비가 대답을 주저하며 공명을 꼼꼼히 살펴본다. 그러면서 공명에게 의미심장한 어조로 물었다.

"이제보니 선생이 아프다고 한 것은 꾀병이었구려 ?..."

공명이 그 말을 듣고, 파안대소를 한다.

"하하하핫 !... 주공께서도요 ?..."

"허허허허허 !..."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한소리로 웃었다. 

 

                                         <계속>